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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Oct 18. 2015

"재회 (2001년 04월)" - 8

여덟번 째 이야기

실내 공기청정기의 공기배출구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가, 비행기 내에서 들리는 엔진소리와 외부 바람소리가 합쳐진 그것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아보신 분들이 있을까요? 가끔 사무실에서 이 소리가 나면 마치 항공기 안에 있는 듯한 착각을 잠시 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 소리가 가진 공통점은 공기 또는 바람의 소리입니다. 뉴욕에 거의 20년을 살면서 항공기 여행보다는 자동차 여행을 하고 다녔기에, 그 당시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타게 된 국제선 항공기의 소리는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의 빈도로 뉴욕과 서울을 왕복하지만, 그 때와 같은 희열은 느끼지 못하지요.


지금은 전자기기의 기내 사용이 허용되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해졌지만, 그 당시에는 주어진 headset 과 radio, 그리고 전체 승객에게 보여주는 영화 2~3편이 entertainment 의 전부였을 뿐, 게다가 지금보다 더 오래 걸렸던 여행시간이 쉽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13시간정도가 지난 시점, 화면에서는 항공기가 러시아와 일본의 경계선을 비행하고 있다는 지도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 이 현실로 느껴지지 시작했으며 혜련이 또한 이제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동해안을 지나, 강원도의 산맥을 처음으로 본 기억, 그리고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 그렇게 짧은 거리라는 것을 처음 느끼고 나니, 비행기는 서해안 인천 앞바다에서 선회를 하기 시작하였고, 속도와 고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멀리 보이는 인천 공항 - 상공에서도 이 새롭게 만들어진 공항의 멋진 광경은 놀라왔습니다. 아마도 서울 쪽으로 보이는 하늘은 그날 맑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뿌옇게 보였습니다. "아직도 서울 공기가 그리 깨끗하지는 않은가봐 . . . " 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 제가 탄 비행기는 runway 에 착륙을 하였습니다. 거의 20년만에 다시 돌아온 한국의 땅 . . . 시간은 4월 1일, 오전 6시경이었습니다.


한국 지사에서 보내 준 직원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었지만, 아마 제가 영어만 사용한다는 말이 있었는지, 그의 첫 말은 이러했습니다:


"It is nice to meet you, Mr. Min. Please follow me to our car, and welcome to Korea."


영어로 준비한 인사말에 한국어로 답하는 무례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저도 영어로 답을 하고 그를 따라 pick up area 로 나갔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이 준 첫 인상은 매우 강렬했습니다. 그 규모와 시설의 정도, 그리고 깔끔함에 바로 매료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가 저를 이끈 Pick up area 에는 검정색 sedan 이 있었고, 그 당시에는 미국에서가 아닌 다른 국가에서 수입한 고급차로 추정했지만, 그 날 오후 그 차는 국산차인 Equus 였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공항에서 88고속도로까지의 길은 참 시원했습니다. 참 많이 변해버린 한국의 모습과 더불어, 혜련이가 사는 공간에 나도 같은 시간에 같은 공기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했습니다. 저를 마중나온 사람과 여러 차례의 영어로 된 대화를 나눈 후, 조심히 한국어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이 많이 변했군요. 자랑스럽습니다."

"아, 한국말을 하시는군요! 이런, 제 영어가 많이 답답하셨나 봅니다!"

"아, 아니어요. 잘 하시는걸요. 미리 알려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오히려 다행입니다. 앞으로 5일간 같이 할 분인데, 의사소통 걱정이 되었거든요!"


지사에서 저와 내일 모레 올 직원들을 위해 mobile phone 및 한국생활에서 필요한 몇가지 중요한 기기 및 물품들을 준비해 왔음을 보고 그 준비한 손길들에 참 감사했습니다. 그가 건네준 전화의 겉면에는 "Anycall" 이란 글귀가 있었고 flip 을 열어 보니 한국어로 된 메뉴가 가득 찬 스크린이 보였습니다. 한국어의 생소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mobile phone 에 적힌 한국어 메뉴는 이상하게도 이런 느낌을 주었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30분, 숙소는 소공동 Hotel Lotte 17층이었습니다. Front desk 에 에 이름을 주고 "이혜련" 이란 사람이 저를 찾으면 전화를 돌려 달라는 말을 한 후 저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17층으로 올라왔습니다. "17층입니다" 라고 흘러나온 여성의 낮고 고운 목소리, 안내 메세지였습니다. 미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엘레베이터 안에서 흘러나온 층 수 안내방송이 매우 색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예전 일본인들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에서 동경의 엘레베이터에는 멋진 목소리의 여성이 각 층 수를 알려준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더군요.


제 일정은 4월 1일부터 4월 5일로 되어 있었고, 다시 귀국 후 필요에 따라서 다시 한국에 올 수도 있는 계획 하에 있었습니다. 딜을 성사시키려고 온 대상 기업은 5개 회사들로, 5일간의 제 임무는 제가 속한 팀과 타겟 회사 담당들과의 첫 베이스를 형성하는 업무였습니다. 여유로운 일정이 아니기에 혜련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창문 밖에 펼쳐진 서울 사람들의 아침 출근 모습을 내려다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 오전 9시, Front desk 였으며, "이혜련 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라는 직원의 음성과 함께,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원아, 혜련이야. 잘 왔어? 많이 피곤하지?"


아, 이 아이의 정감어리고 사랑스런 목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저도 반가움에 즐겁게 인사를 했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눈 후 제 전화번호와 약속장소를 전해주었습니다.


"혜련아, 우리 만나는 시간은 12시로 그대로 하고, 그리고 호텔 lobby 에서 볼까?"

"아니야, 12시는 괜찮은데, 내가 차를 가지고 가니까, 호텔 앞으로 나와."

"차를 가지고 오는구나. 하하, 재미있겠는걸, 나 서울 구경 시켜주게?"

"응, 강남에 멋진 곳이 있어. 내 차는 흰색 차야. 내가 차 옆에 서 있을테니까 놓치는 일은 없을거야. 난 보라색 스카프를 하고 있어. 정원아, 그런데 나 너무 떨린다! 우리 정말 만나는 거니?"


결국 그렇게 우리는 정말 3시간 후에 만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3월 1일, 불과 30일 전 그 날, 혜련이의 편지가 제게 도착한 이후, 150여통이 넘었던 편지와 100번이 넘었던 전화통화들 . . . 그리고 4번의 크고 작은 소포들 이후 우리는 만나게 되었습니다. 약속시간인 12시 정오를 기다리는 동안 두 손 끝이 모두 그리고 약간 떨리고 있었으며, 너무나 긴장했는지, 혹시 안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계속 편지로만 우리 연락하며 지내면 안 되었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11시 쯤 되어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그리고 1층 cafe 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 그날 밤에 영수증을 보니 네 잔을 마셨더군요 - 12시가 되었습니다.


Lobby 를 지나 hotel 의 정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그 날 검정색 정장에 옅은 파랑색 셔츠에 자주색 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맑지만 약간 hazy 한 하늘, 차량 진입로 쪽을 보았습니다. 들어오는 차량은 없었고, 오른쪽을 향해 보니 30m 정도 멀리 대기차량이 두 대 서 있었고, 그 중 뒤에 정차되어 있던 버스 앞에 주차되어 있던 한 대의 승용차가 흰 색이었습니다 . . . 그 순간,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주변 모든 것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느낌까지 들더군요. "저 차가 그 애의 차일까?" 전화로 그 애가 알려 준 트렁크 상단의  "XG" 라는 마크까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애는 어디에 있을까?"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고 난 후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혹시 나를 놀라게 해 주려고 호텔 안에 들어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다시 lobby 로 들어가서 혜련이를 찾았으니, 그녀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다시 정문 revolving door 를 통해 나와 보니, 그 버스와 혜련이의 차 사이에서 보라색 스카프의 끝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모습을 나타낸 한 여성 . . . 흰색 블라우스와 아이보리 색 정장바지를 입고 있는 여자 . . . 혜련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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