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Pain)에서 나아가 고통(Suffering)을 이해하기
한방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하던 중에 만성 통증 환자를 인터뷰하는 연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진료실이나 병실에서 짧은 진료 시간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보통 의학적으로 통증을 평가할 때 통증 점수와 빈도 같이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을 조사한다. 그런데 인터뷰를 해보니 환자가 겪는 고통은 신체적인 통증보다 훨씬 크고 다양했다. 어느 삼차신경통(얼굴을 지나는 신경이 손상되어 통증이 발생하는 질환) 환자는 운전하다가 갑자기 번개 치듯 얼굴에 통증이 나타나서 눈도 뜨지 못할 정도라 사고가 날 뻔했다. 그 이후로는 운전도 못한다고 했다. 가만히 있다가도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심한 통증이 발생해서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위축된다고 했다. 혹시나 신경이 자극될까 봐 양치도 아주 조심스럽게 한다. 그런데 통증이란 것은 상처나 피처럼 겉으로 보이는 증상이 없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아픈 줄도 몰라서 주변의 배려도 못 받고 심지어 꾀병이란 말을 들어서 억울하다셨다. 통증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데 만성적인 통증이라 가족과 관계도 틀어졌다. 이 통증은 난치성이라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도 컸다. 이런 고통은 숫자로 나타내기 어렵지만 환자는 실제로 겪고 있는 큰 고통이다. 이런 줄 알았더라면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더 좋은 주치의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 이후로는 병실 밖에서의 환자 모습을 알기 위해 종종 환자분께 건강할 때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앞으로 이렇게 아플 날이 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사진 속에서 속없이 환하게 웃는 모습과 지금 몸져누워있는 모습이 달라 이질감이 느껴지곤 했다. 사진 속 모습은 나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라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이래서 그렇구나 싶었다. 지금은 환자복을 입고 있는 나의 수많은 환자 중 한 사람일지 몰라도 밖에서는 선생님, 사장님,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자각하게 된다. 환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다. 암환자인 경우 암 진단을 받기 전의 삶, 진단까지의 과정, 진단 후 치료 과정, 악화 호전이 반복되는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처럼 그 분다움을 이루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 인간으로서의 그분을 보다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보통은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증상이 어땠고 치료는 어떻게 한다 정도의 이야기만 하니 환자분께서 겪는 삶 여러 영역에서의 고통(suffering)은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내 외과 실습을 돌 때 그날 수술 예정이었던 유방암 아주머니 환자의 회진을 돌았다. 그런데 환자분이 팔 안쪽으로도 여드름 같은 오돌토돌한 게 만져진다면서 이것도 암인 것 같다고 하셨다. 교수님께서 만져도 보시고 초음파도 해보시고는 아무래도 암이 의심되어서 오늘 수술을 취소하고 내과에서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쉽게 말해 전신에 전이된 상태이니 완치가 아니라 완화의료를 한다는 것인데 환자한테 설명하는 것이 문제였다. 교수님은 완화의료라는 단어는 쓰지 않으시고, 유방 절제 수술을 해도 팔에 덩이가 남아있으니 괜히 몸만 더 힘들다고 하셨다. 지금은 수술보다 약을 먼저 쓰고 줄어들면 그때 수술을 하자고 달래셨다. 거기에 생략된 말은 약을 써도 줄어들지 않았을 땐 방법이 없다는 것이 들어있었다. 환자도 그걸 알아들었던지 담담하던 분이 결국은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아픈 거 티도 잘 안 냈는데… 오늘 수술한다고 애들한테 오라 했던 거 오지 말라고 해야겠다.' 하셨다. 환자가 차라리 화를 냈다면 마음이 덜 아팠을 텐데 의사들 편을 들어주셨다. 교수님께서 힘들게 이야기를 꺼내실 때 교수님을 오히려 감싸주시면서 '이런이런 말씀이시죠? 네 알겠습니다. 아유 선생님은 다 낫게 해주시려고 하시는 거죠. 아유 감사합니다.' 하고 연신 말씀하시는데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진료가 끝나고 환자분은 병실로 돌아가야 하는데 휠체어를 타고 계셔서 휠체어를 끌어줄 이동수를 기다리셔야 했다. 그동안 환자분 곁에 아무도 없었는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등을 두드려드리는 것뿐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환자 뒤에서 양 어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눈물을 훔치시느라 날 올려다보지도 못하셨고 그저 내 토닥임을 가만히 받으며 훌쩍이셨다. 휠체어를 옮겨주실 분이 데리러 오자 그제야 나를 올려다보시고는 고맙습니다 하고 가셨다. 그날 그분 병실에 올라가서 맞은편 환자 상처 소독을 참관하다가 그 환자분이 통화하시는 것을 들었다. 간병인 신청했던 걸 취소하는 전화였다. 취소하면서도 '네 수술하려고 했는데 못하게 됐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하면서 우시는데 마음이 아렸다. 이 와중에도 남에게 피해 주는 게 더 미안한 분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면 혼자 침대에 계시면서 추슬러야 하는 게 걱정됐다. 그렇다고 의료진이 계속 옆에서 다독이고 있을 여유는 현실적으로 없다. 이러한 고통은 교과서에서도, 논문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일본에서 루게릭 환자의 가정 방문 진료를 참관했다. 루게릭 병은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다가 수년 뒤에는 결국 호흡 근육이 마비되어 사망하는 병인데 정신은 온전하다. 24시간 상주 도우미가 있어야 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기본적인 식사, 배뇨, 배변부터 모든 걸 다른 사람 손에 의지해야 한다. 몸에 모기가 앉아도 눈으로는 보이는데 잡을 수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의 1/10도 못한다고 하셨는데 얼마나 답답하실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루게릭을 겪어보지 않은 내가 아무리 환자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는 환자분들끼리 모여 그룹치료를 하도록 권하기도 한다.
완화의료 분야에서는 유족과 암환자 그룹치료가 있는데 일본에서 참관할 수 있었다. 그룹치료는 정신과 의사, 임상심리사, 간호사도 참여하고 의료진이 큰 방향성을 제시하고 진행해 나갔다. 한 자궁경부암 환자는 자궁경부암이 성관계를 통해 걸리므로 이혼한 남편을 원망한다 했고, 어느 대장암 환자는 장루를 할지 말지 고민이라고 하자 장루를 해본 다른 환자가 장루하고도 온천 여행을 다녀왔고 어떻게 관리하면 좋은지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또 다른 분은 원래 부정적이고 남을 잘 믿지 못해서 자기 이야기를 진료실에서 잘하지 않았는데 그룹치료에서는 마음을 열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런 그룹치료가 아니면 암환자가 다른 암환자를 만나기도 어렵고 만나더라도 말을 걸기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환자들끼리 만나서는 올바른 정보가 아니라 근거 없이 편향된 정보가 공유되기도 쉽고 이야기의 방향도 건설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의료진이 이끄는 그룹치료에 만족도가 높았다.
유족 그룹치료에 참여하는 분들은 사별한 지 기본 6-7년이 된 분들이셨고 10년이 넘은 분도 계셨다. 외국인인 나를 처음 보시고는 밝게 인사를 먼저 해주시고 아는 한국어가 있다며 살갑게 다가와주시던 분이 계셨다. 그런데 돌아가신 가족 이야기를 할 때에는 아까 밝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누군가는 사별한 지 4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돌아가신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이 난다 했고, 누군가는 사별 후 혼자 있으면 식사를 잘 챙겨 먹지 않아서 영양실조가 왔다고 했다. 누군가는 죽은 아내가 좋아하던 온천에 못 가다가 이번에 용기를 내어 다녀왔다고도 했다. 의료진에게 시시콜콜 말을 하긴 어렵지만 자신의 삶에서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고통에 대해 환자들끼리 툭 터놓고 나눌 수 있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있었다.
이처럼 환자는 Pain(통증)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다양한 방면에서 Suffering(고통)을 겪고 있었다. 몸과 마음은 이어져 있어서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지 못하면 신체적인 통증 또한 조절이 힘들다. 그래서 진료하면서 환자가 겪는 마음의 고통 역시 덜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환자가 아프기 전 건강할 때 사진을 보면서 느낀 것은,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환자도 의사인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겸손한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환자에게 겸손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환자가 여기저기 불편하다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거나 환자를 가르치려 들기도 했다.
나의 오만함을 고백하며 어떻게 하면 진심으로 겸손한 의사가 될 수 있을지 일본 S 병원 종양내과 의사 M께 여쭈었다. 그러자 ‘정상입니다. 저도 그래요. 처음엔 멋진 의사를 목표로 했으니까. 물론 지금도 나보다 공부 못한 사람에게 지적을 받으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이전보다는 나아요. 그것이 인간다움이 아닐까 합니다. 최고는 한 사람 밖에 못하지만 최적을 목표로 하면 모두가 목표를 이룰 수 있어요. 더 좋은 장소를 목표로 하면 좋아요. 최고를 목표로 하면 누군가를 아래로 보게 되지요. 하지만 나는 늘 1등이 될 수는 없단 걸 알았고 1등이 되지 않아도 이룰 것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인생의 목표를 이루면 되는 거예요.’라고 답해주셨다. 환자와 나는 개별 인생 목표를 향해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므로 누가 더 높은 것도, 낮은 것도 아니고 겸손하게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나와 마주하고 있는 환자는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고 지금 내 앞에서 보이는 아픈 모습은 그의 인생에서 여러 부분 중 작은 부분에 불과함을 꼭 기억하길. 그를 그답게 만드는 여러 측면을 고려할 수 있는 의사가 되어 내 환자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의사가 되길. 내게는 그 환자가 수많은 환자 중 한 명이지만, 그 환자에게 나는 하나뿐인 주치의라는 걸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