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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Gwon Apr 02. 2024

이제 맞춤 완화의료를 생각할 때

의대 병원실습과 해외 완화의료 실습에서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소아 완화의료를 참관하지 못한 것이다. 소아 완화의료라니. 귀여운 아이도 죽을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호스피스 완화의료라 하면 성인 환자만 떠올렸다. 그러다가 실습을 하면서 소아 말기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리고 소아 완화의료라는 분야와 전문 병원이 따로 있을 정도로 소아 말기 환자가 많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유족 돌봄에서도 성인 환자의 유족과 소아 환자의 유족은 느끼는 바가 다르고, 환자 자체도 성인과 소아 환자는 신체와 정신적 특성이 다르다. 그래서 국내외에서 대부분 성인과 소아 호스피스 병동을 따로 운영하고 있었다. 뒤늦게 소아 완화의료 기관에 참관신청을 해보았지만 늦어서 결국 참관은 하지 못하고, 의료진 인터뷰와 성인 완화의료 실습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성인은 완화의료 대상 환자 대부분이 암환자인데 비해, 소아 말기 환자에는 암보다 선천질환, 유전대사질환, 신경근육질환과 같이 암이 아닌 질환이 많다. 소아 환자는 말기이지만 여전히 몸과 마음이 자라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질환으로 인한 여러 증상을 관리하면서도 몸과 마음의 발달 과정도 고려해서 병원 내 유치원이나 학교수업을 병행하거나 진료가 필요하다. 또한 형제자매가 있을 경우 가정 내에서 건강한 형제자매가 느낄 소외감과 죄책감에 대한 돌봄도 필요하다. 하지만 성인에 비해 소아는 완화의료 환자 수가 적다 보니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기도 한다.


누구나 죽는다. 귀여운 아이도 말기 환자가 될 수 있고, 유명한 사람도 말기 환자가 될 수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말기 환자가 될 수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의료현장에서 직접 마주했을 때에야 비로소 머리에서 마음으로 와닿았다. 살아가는 동안 온갖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에서 여러 사회, 경제, 문화, 의료적 다양성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생애 말기 돌봄도 다양한 사람의 요구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소아, 치매, 신부전, 성소수자, 신앙인 등 연령별, 성별, 질환별, 종교별, 인종별 맞춤 완화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완화의료를 다양한 측면에서 맞춤 제공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문화적 다양성에 맞춘 완화의료를 예로 들어 보겠다. 우리나라도 다문화가정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완화의료에서 문화적 다양성도 고려해야 한다. 통증은 신이 내린 형벌이므로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화도 있고, 죽음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는 문화도 있고, 의사결정 주도권이 가족에게 있는 문화도 있다. 진통제로 통증을 조절할 수 있단 걸 환자와 가족이 알면서도 일부러 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환자 본인은 더 적극적인 치료를 하고 싶지만 가족들이 힘들까 봐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환자와 가족이 어떤 문화 속에서 살아왔는지 알아보고 이를 존중하며 그에 맞는 돌봄이 필요하다.


말기환자는 대부분 한 부위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위에 암이 전이가 되어있든지, 여러 증상이 겹쳐있다. 그래서 어떤 의학적 처치를 하면 좋을지 결정할 때 여러 과에서 담당의사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논의 과정에서 각 과별로 의견이 다른 때도 있는데, 그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할 때 환자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잘 반영되려면 환자에게 귀 기울여 그를 대변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완치를 목적으로 치료하는 과 의사들이 정신사회적 부분을 모두 아울러 고려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영국과 미국에서는 완화의료팀에서 환자의 정신사회적 돌봄을 맡아서 평균적으로 사망 전 6개월부터 사망 후 3개월 정도까지 약 9개월 정도 환자와 유족을 돌본다.


개별 맞춤 완화의료가 활성화되려면 의료진이 환자에게 맞춤의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미리 자신의 말기 케어에서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정해두는 것도 중요하다. ‘나 사용법’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이 바로 사전돌봄계획(Advanced Care Planning, ACP)이다. 일본에서는 치매로 인해 기억력이 점차 흐려지는 환자의 주체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전돌봄계획이 많이 쓰이고 있다. 작성 항목은 크게 3가지로 지금까지의 삶, 생활, 서비스이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긴 것, 내 삶에 관한 생각, 앞으로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음식을 먹지 못할 때의 대처, 임종 돌봄을 받기 원하는 사람, 식사 메뉴와 빈도,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 심폐소생 여부, 의사 표현이 불가능해질 때 의사 결정 대리인 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노인 요양 시설에 입소할 때 대부분 사전돌봄계획을 갖고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환자와 가족이 충분히 삶의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나중에 의료진과 상의하는 과정도 수월해진다.


사람마다 삶의 마지막 시기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다르다. 누군가는 가족, 누군가는 반려동물, 누군가는 종교, 누군가는 업적, 누군가는 무소유, 누군가는 책임감이 중요할 것이다. 획일적으로 어떤 가치가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심리치료법 중 하나인 로고테라피(logotherapy)에서는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보고 그 의미를 발견할 때 인간은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고 한다. 여태까지 잊고 살거나 발견하지 못했던 각자 고유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삶의 마지막 시기에도 중요하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의미가 다른 만큼, 삶의 마지막을 자신답게 보낼 수 있도록 완화의료 또한 그에 맞추어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생애 말 완화의료에서도 몸과 마음 모두에 개별 맞춤 돌봄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면 삶의 방식이 다양한 만큼이나 삶의 마무리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은가? 아니,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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