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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지는 별 Jan 01. 2024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책 후기

2024년 새해를 맞이하기 하루 전 신림동에 사는 딸이 남자친구과 함께 식사를 하자며 찾아왔다.  올해 22살인 딸은 1년 동안 직장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면서 23년을 고전분투했고 그리고 드디어 살아남았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제법 컸다고 딸은 나의 근황을 물어 왔다.  잘 지내고 있다고, 근심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장성한 딸을 보며 감사히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잘 지낸다는 말에 새삼 감사함이 새록새록 스며들어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한 때 삶보다 죽음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시간을 되돌아보니 더욱 그러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미약한 상태에서 세상에 나아가 적응하며 살아남으려 애쓰던 노력과 애처로움나의 상황  또한  현재 진행형이어서 그런지  딸과 나누는 한 잔의 술이 더욱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삶에 정착하기 위한 이유와 연결고리는 나의 가족, 나의 지인들임을 간과하던 긴 시간들에 대해 깊은 반성이 들었다.  

이 세상에 이유 없는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이후부터 모든 인연과 주변의 일들은 내게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며 칠 전의 일이다.

이른 아침 건강검진을 마치고 검진센터 옆 가게에서 식사를 하려고 들어는데 마주칠 일이 만무한 지인과 그이의 딸을 만나게 되었다.  그곳은 그이가 사는 동네와는 무관한 곳이었고, 심지어 그이는 평소  일할 시간이었 더욱  놀라워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이 놀라운 우연에 둘 다 무척이나 황당해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쉬워 함께 차를 마시러 카페에 갔다.  작은 아이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로 만나 피차 한부모가정으로 처절한 시간을 끈끈한 정으로 지탱해 가며 지냈던 사람이기에  남다른 정이 있었지만 서울로 이사를 가고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이렇게 마주할 수 있었기에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었다.  


그이의 근황을 천천히 들었다.  3년 전에 급작스러운 일로 친정어머니를 잃었고, 그 일로 마음에 늘 어두움이 있으며 그리움으로 매일매일이 무겁다고 말했다.  거기에 더해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더욱 삶의 무게는 말할 수 없이 무겁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힘든 일은 홀로 오지 않는가 보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정과 책임감이 강한 그이의 취업은 곧 이뤄지리라 확신했기에 응원과 격려의 말을 전했다.  그 어렵고 막막했던 시간도 옆에서 지켜본 나였기에 감히 그렇게 확언할 수 있었다.  그이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든든함으로 마음이 한결 가볍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는 다시 만나자며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삶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단잠과 같은 죽음의 나른함이 속살거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해 내며 나는 늘 삶이라는 버튼을 선택해 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내 생애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삶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비겁한 도망자로 평생을 살았지만 결코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갑작스럽게 이별할 일이 얼마나 그들을 아프게 할지를 알기에 나의 죽음을 하루하루, 한 달, 일 년을 유보했던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죽음을 지연시켜 지금에까지 오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삶은 누구에게나 버겁고 두려운 것이지 않을까 싶다.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과업이 삶이지 않을까?


한 달을 벌어 한 달을 먹고사는 일이, 늘 빠듯하고 넉넉하지 못 한 삶을 견디며 살아내는 일에 누군들 호기롭게 맞설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무게를 다들 견뎌내며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 어찌 용기 없이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24년 새해 덕담을 나누며 나의 소중한 지인들과 시작한다.  삶의 큰 파도 앞에서 두렵지만 버틸 수 있게 하는 나의 소중한 가족과 나의 사람들.....

나는 아직 그들과 이별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서로를 보듬어 주며 삶을 버텨나갈 것이다.  



 61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간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가 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글을 끝으로 마무리해 본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134-

조금 덜 통제하고 더 신뢰하길 바랍니다.  뭐든 다 알아야 한다는 압박을 조금 덜 느끼고, 삶을 있는 그대로 더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에게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니까요.-167-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항상 가질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 필요한 것은 항상 가질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랬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제가 욕구를 채우려는 집착을 버릴 때마다 그 욕구가 더 쉽게  충족되었습니다. -183-

삶을 뜻대로 휘두르려고 노력하는 건 끊임없이 흐르는 물살을 맨손으로 붙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변화는 자연의 속성입니다.-186-

우리가 사는 우주는 모든 것이 임의로 이루어지는 차갑고 적대적인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오지요. -242-

저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직 삶을 멈출 준비는 되지 않았습니다. -252-

존재는 공명합니다.  우주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의도에 반응합니다.  우리가 내보낸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275-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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