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이야기하던 내가 건강을 잃었던 시간
이번 포스팅의 퍼소나 독자
- 회사에서 다루는 콘텐츠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고민이신 분
- 기술(디자인, 개발)보다 콘텐츠를 풀어가는 주요 역할을 하시는 분
- 헬스케어, 식품 업계 종사자로서 내 삶은 건강하지 않아 고민이신 분
*이 포스팅은 회사에서 다루는 콘텐츠가 전공인 사람으로서 느꼈던 부분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회사 별로 다른 환경, 분위기가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너 영양 공부했으니까 샐러드만 먹겠다.
회사에서 건강한 음식 이런 것도 많이 줘?"
하하.. 그러게
스타트업에서 일하기 전 나는 식습관 관련 수업과 영양상담을 진행했었다.
그리고 대학원 연구 주제 역시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하기 위한 행동경제학 방법들을 적용하거나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 두 가지 방법이 성에 차지 않았다.
오프라인 수업이나 영양 상담을 하면 그 순간만 이야기될 뿐,
그 어려운 식습관 문제를 해결하려면 러닝 메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를 진행하려면 그 앞에 거쳐가야 할 리서치, 선행연구 과정이 그때는 길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식습관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었고
IT, 앱, 큐레이션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초기 멤버로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
우리는 MVP를 만들기 위해 처음 8달을 정말 달렸다.
'이것만 해놓으면 그다음은 수월해지겠지.'
그리고 MVP를 바탕으로 그다음 베타 테스트 버전을 만들 때도 달렸다.
' 처음은 그럴 수 있어. 이번에 하고 나면 더 나아질 거야.'
그렇게 몇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다니다 문득 어느 날 내 생활을 보는데
하루에 미팅이 3,4개라 점심은 삼각김밥으로
오늘 마무리 지어야 내일 회의가 가능하니까 회사에 남은 음식으로
생각이 끊이지 않아 습관적으로 술 한잔씩 하고 잠들고
등등
우리가 밖으로 내뱉는 말과 서비스를 만드는 우리의 삶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는 순간이 왔다.
회사가 건강한 식생활을 다루고 내가 식품영양을 전공했는데,
우리가 회사원의 식습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데 이러고 있다고..?
그때부터 나는 혼란스러웠다.
발표를 하거나 고객들과 이야기할 때 거짓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우리의 미션과 비전을 떳떳하게 이야기해도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입사 후 10개월에서 1년 사이 즈음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의 고민은 크게 2가지였던 것 같다.
1. 관련 전공자의 입장에서 회사의 미션과 실상의 갭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2. 작은 초기 스타트업에 일하면서 '건강'과 '열정' 사이에서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나.
역시나 존버 정신과 번아웃은 그렇게 착하지 않아서 나에게 바로바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나 역시 내가 소진됐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몇 번의 경험을 거치면서 차츰 해결하게 되었고, 나는 이렇게 풀어나갔다.
1. 관련 전공자의 입장에서 회사의 미션과 실상의 갭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1-1) 나와 회사를 분리시켰다.
어떤 이상향을 가지고 방향대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 열정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면서 이상적인 모습까지 있다면 문제가 조금 발생할 수 있다.
당시 나는 내가 원하는 회사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회사의 성공이 곧 나의 성취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회사원을 위한 건강한 음식 딜리버리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일하는 우리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align', '내부 브랜딩' 등
잘 만들겠다는 마음에 너무 모든 것을 잘 맞추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론 맞추면 좋지만, 사실 일하는 사람은 이것을 사용하고 싶은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잘 쓸 수 있도록 '일'을 하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와 회사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1-2) '콘텐츠 이해도는 내가 제일 높아'는 큰 그림 중 하나의 덕목일 뿐이다.
콘텐츠를 잘 이해하는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팀일 것 같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초기 내가 다녔던 회사는 관련 전공자가 나 혼자였다. 그래서 ux와 사업 기획 방향을 주니어 기획자이지만 만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실수도 많이 했다.
'회사'와 '연구'는 같은 부분도 있지만 엄연히 해야 할 일이 다른 점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초기 스타트업 회사는 회사의 생존 문제가 근본적으로 가장 중요할 것이고.
돌이켜보면 나는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이 좀 과했다.
과거에 피트니스나 체육 관련 업무를 했거나 영양사, 의사, 간호사 등 그 필드 일을 했더라도 IT를 다루는 곳으로 넘어왔다면 IT 회사의 마인드를 장착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우리가 전달하려는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고 사용자에게 끝까지 잘 전달 되게 만드는 것은 콘텐츠 경험치나 이해도와 또 다른 문제라는 걸 단계를 밟을수록 몸소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관련 전공자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내려놓았다.
2. 작은 초기 스타트업에 일하면서 '건강'과 '열정' 사이에서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나.
2-1) 한 번쯤 아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너무 크게는 말고)
처음부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알 수 없다. 회사에 처음 들어간 주니어는 열정이 넘친다.
그래서 시키면 더 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달라고 한다.
밤새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내 모습에 좀 취할 때도 있었고 (이제 와서 말하지만)
일하는 게 재밌기도 하니까 그렇게 달렸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좋을 수는 없었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생각보다 맡은 일의 양은 많은데 내가 달라고 했기 때문에 물릴 수 없어서 오버하다가 결국 나가떨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입사하고 6개월, 10개월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현타가 왔었는데 그걸 겪으면서 배운 게 많았다.
' 아.. 이런 일은 도맡으면 안 되는구나. 혹은 맡을 때 기한을 정해야 하는구나.'
' 내 몸에서 이런 사인을 주면 과로했다는 뜻이구나. 좀 쉬어야겠다.'
이렇게 경험하면서 업무량을 조율해나갔던 것 같다.
2-2) 항상 열정적이지 않아도 되고 남한테 말 못 해도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하자고 마음먹었다.
스타트업을 택했기 때문에 열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바쁘다. 정말 바쁘게 돌아가고, 하루라도 놓치면 업계 관련 기사 내용을 몇 번 스크롤해야 하는지 모른다. 다들 일 끝나면 스터디하고, 정보통은 어찌나 빠른지 바빠야만 할 것 같다.
무언가 꼭 해내야 이 도전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주변에 다른 회사가 커가는 것을 보면 나도 지치지 않고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도 생긴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항상 열정적일 수 있겠는가.
조직 분위기에 따라 그것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할 수 있지만 적어도 스스로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쳐지는 이유가 있다고 스스로라도 이해해줬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런 나를 자책하며 자기 개발서나 강연 등으로 너무 동기 유발하려고 했다. 패스트캠퍼스로 틈틈이 개발 언어도 공부하려고 했고, 조직문화, OKR, 기획에 프로토타이핑 툴까지 기획자로써 부족한 게 많아서 업무량도 벅찼지만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스터디가 가끔은 독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힘들다면.
지금 내가 평소보다 예민하고, 부어있거나 살이 빠지고, 신경이 곤두서서 일상이 틀어졌다면
열정의 페달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먼발치서 한번 봐주면 좋겠다.
건강은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한계 이상으로 하고 있는지 캐치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나를 돌이켜보고 케어할 수 있어야 이 재밌는 곳에서 더 길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