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vs. 스타트업 커리어 속에서 불안해하다

잘 선택한 걸까? 수없이 되뇌었던 질문

이번 포스팅의 퍼소나 독자

- 20대 중후반에 소셜벤처, 스타트업을 첫 회사로 시작하는 사회초년생

- 회사의 미션, 비전과 자신의 생각이 일치한다고 생각해서 들어간 기획자 (혹은 유사 직종)

- 스타트업 커리어가 혼란스러운 분




내가 구체적으로 관심 가진 문제를 어떤 회사가 서비스로 만들고 있을 때 만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그런 곳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회사가 설립된 지 얼마 안 됐을 경우 정체성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우리도 내가 가진 생각을 무릎 탁 치게 표현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회사가 나타난다면 기쁜 마음에 지원서를 쓰게 된다.

나 역시 전 회사에 내가 전공했던 인지심리와 식품영양학을 적용하여 습관 설계를 할 수 있는 초기 스타트업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와 합류하게 되었다.


그. 런. 데.

내가 생각한 수준은 이게 아닌데..?
들어올 때는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왜 자꾸 바뀌지?
내가 일하려 한 포지션은 이게 아닌데
등등

추측할 수 없었던 일들이 발생하였다.

그렇게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고, 입사 전에 몰랐던 대기업의 장점도 같이 보이니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동안 불안함이 증폭되었다.

(특히 마지막으로 대기업 신입으로 지원해볼 수 있는 나이의 마지노선 같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회사를 택할 때, 연애랑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처음 내 눈에 들어온 몇 가지 단서로 마음을 주지만, 실제 연애가 시작되면 내가 착각한 점도 보이고 새로운 모습도 보게 되 듯 회사도 마찬가지다. 불안함이 엄습하는 시기가 올 때가 있다.


처음의 패기는 어디로 가고 자신감이 사라지는 순간이 오면

무엇을 위한 선택이었을까..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만 할까?


오늘은 첫 커리어를 초기 스타트업으로 택했을 때 겪었던 상황돌이켜 봤을 때 장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상황 1. 아직 서비스의 방향성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혹은) 방향은 정해졌지만 세부 기획까지 진행되지 않았다.

(혹은) 기획이 정해졌지만 구현하면서 문제점에 부딪히며 크고 작은 피보팅이 진행된다.

1) 처음 회사의 방향이 A라고 신입 ot와 면접 때 이야기했는데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그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회사가 흘러가는 것 같아.
2) 신나서 기획대로 진행하려고 보니 우리 회사 규모로 만들 수 없다고 하네...?

당황스러웠다.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변화가 잦을수록 기준을 못 잡을 것만 같았다.

(물론 당시에는 사업, 스타트업의 개념을 잘 모르고 들어가서 회사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컸다.)

일단 지나고 알게 된 점은 제쳐두고,

이 과정 속에서 내가 얻은 건 회사에서 방향을 정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일의 근본적인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며 일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이 고민을 일찍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큰 틀을 작은 문제가 뒤엎을 수도 있고, 상상이 현실이 될 때 오류가 나올 수 있다. 정말 초기, 제로 베이스에서는 직무, 연차와 상관없이 모두 덤벼들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이게 실제 필요한 서비스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빈번히 시장 조사, 사용자 인터뷰를 해야 했고 밤샘 토론 끝에 결론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든 최종 의사결정권자처럼 행동해야 했고 의사결정권 자여야 했다.


그래도 의사결정은 운영진이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내가 다닌 회사도 그랬다. 하지만 내가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자리들도 생긴다. 초기 스타트업은 다양한 루트로 자본금을 끌어온다. 정부지원금부터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지원금을 주는 자리, 경진대회 등 중복으로 지원하게 되면 교육을 들으러 가야 하고 회사에 대해 발표도 해야 한다.

그럴 때 운영진으로 인원 수가 모자라서 내가 회사를 대표해서 서비스를 심사관에게 설명하는 일들이 생긴다. 내가 회사에서 어떤 직급, 직무라도 그 자리에서 만큼은 대표다. 서비스를 디펜스 해야 하고 장점을 부각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책임감 있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대하게 된다.

나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처럼 일의 가치관을 고민하게 된다.


상황 2. 팀원 수가 적다. 즉, 한 명이 두세 '파트'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부분이 필요한데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나서서 해야겠다 싶었어. 근데 당연시되는 건 아닌데..?
원래 기획만 이야기했었는데 다른 직무에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것 같아.

'꿈을 펼쳐볼 수 있는 곳. 세상에 있는 문제들 중 하나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곳. 복지가 혁신적이고 수평적으로 의사 결정하는 곳. 그곳에서 내가 잘하는 것을 펼칠 거야!'


는 열망과 달리 당시 나는 회사 인턴 경험이 있거나 경영학을 공부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어떤 부서가 있고, 직무가 있으며,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잘 몰랐다. 일을 하다 보면 부서별로 연계된 것도 많으니 '프로젝트가 곧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더 그랬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재밌어 보이지만 안 맞을지 고민되기도 하고.

그럴 때 초기 스타트업은 최적의 장소다. 내가 지난 회사에서 했던 일을 돌이켜보면 기획, UX, PM, 운영, 조직문화 형성, 성과관리, 채용, 영업 등 다양한 파트를 해본 것이 지금 큰 자산이 되었다. 과거 나의 경험으로 생각하지 못한 내 적성들도 있었던 것이다.

경영학이나 회사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현장을 알 수 있는 기회였고, 파트별 부서 간의 관계를 경험하면서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절로 느껴졌다. 다능인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첫 회사로 초기 스타트업 합류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3. 나의 직위와 직책이 나의 성장 속도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아직 난 팀장, 매니저를 할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언제 내 뒤에 이렇게 많은 팀원이 들어온 거야.
내가 잘 못하는 게 들통나지 않을까?
제대로 모르면서 후임들을 가르치고, 팀을 매니징 하는 것 아닐까?

스타트업에서 회사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 속도감이 느껴진다. 프로덕트를 몇 개월 만에 만들어서 시장에 검증하고, 운이 좋게 외부에서 우리 서비스를 검색해서 사용하다가 입소문을 타면 '어.. 어.. 어???'

하다 갑자기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어제 초안을 마무리했는데 오늘 500부 출판해서 내보내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회사의 속도가 그러니 팀원의 속도도 빨랐다. 나 역시 입사하고 한번 미팅에 참여한 다음 그다음 주부터 외부 디자인팀과 미팅, 사용자 인터뷰를 주관하였고 초반부터 프로덕트 매니저의 역할을 겸하며 앱 기획을 했다. 6개월 후에는 채용을 전담해서 프로세스, 핵심가치를 만들었고 약 1년 9개월이 되니 12명의 팀원 중 나의 위치가 두 번째가 되었다.

일이 많아서 사람을 채용하고, 바쁘게 하루하루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내 의사결정 자리가 내 경험에 비해 너무 높아져버린 것이다.


무서웠다. 사람들을 뒤에 태우고 액셀을 밟으며 달려가는 차 속에서 내가 운전대를 잡아도 되는지, 방향은 똑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을 하니까 고민이 많았다.

'이게 맞아?', '우리 미션에 부합해?', '안 해봤는 건데 어떡하지...' 등등

불안함에 잠 못 든 밤도 많았다.


하지만 지나고 돌아보니 나는 그 경험 덕분에 굉장히 빠르게 일 하는 습관과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불안했던 과정을 다 감수하거나 감당한 게 아니다. 때로는 끌려갔고 때로는 편협한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결정을 잘하려고 노력하면서 그에 대한 중압감도 같이 경험하게 되고, 본인만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덕분에 높은 직책에 대한 환상이 많이 사라졌고(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조금 더 당당하게 높은 분들을 대할 수 있는 태도가 생겼으며 마지막으로 협업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스타트업은 사람이 들고 나는 속도도 빠르고 빈도도 높다. 서비스 방향이 정해지면 필요한 사람은 많아지고 분야도 세분화되어야 일이 돌아가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상대적으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직책이 자꾸자꾸 올라간다. 반대로 나의 영혼을 갈아 넣었는데 투자와 함께 총괄 책임인 C급들이 파트별로 들어오면서 다시 바뀌는 경우도 보았다. 상황이 빠르게 바뀌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많기 때문에 힘들지만 그 노력 덕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나 역시 회사를 다니면서 대기업을 다니다 온 분들이나 친구들과 비교하며 불안한 점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아래 3가지 마음이 있었다.

1) 체계를 경험해보지도 못한 내가 이런 큰 일들(조직 구성, 서비스 방향 등) 해도 될까? 소꿉놀이 같은데.. 이래도 된다고?
2) 다른 친구들은 큰 물에서 일하면서 많은 인맥을 만들고 돈도 많이 버는데 여기서 도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3) 우리 회사를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내가 일하는 곳을 부모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니 어렵다.


하지만 결국 내린 결론은 어디서 출발하든 본인이 하기 나름이다라는 것이었다.


대기업의 체계를 내가 경험해보지 않아서 아쉽다. >>> 충분히 공유 오피스나 일 하면서 만난 분들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그분들에게 나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여쭤보면 된다.

물론 백 퍼센트 만족할만한 답변이 나오지 않지만 듣고 우리 상황에 적용하다 보면 간접적이지만 반영할 수 있다. 내가 판단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이라면 사람 대 사람으로서 기본적 예의를 갖춘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무례하다고 무시하지 않으셨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서슴없이 모두 손을 내밀어 주셨다.

그리고 스타트업이 사업 자금을 따기 위한 경진대회, 국가 지원금 사업 등을 하면서 큰 덩치 회사와 일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럴 때 그들의 시스템을 보고 차용할 부분은 차용하면 된다.


큰 데 가서 좋은 인맥을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다. >>> 내가 좋은 사람이면 스쳐가는 인맥도 나를 기억해준다. 그리고 나 하기 나름이었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협업은 불가피하다. 특히 다른 업체와 제휴하면서 마주칠 수 있는 계기도 많은데 그분들이 다 나의 네트워크였다. 거기다 같은 직종을 만날 수 있는 트레바리, 문토 등 워크숍을 가면 많은 크기의 회사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고 콘퍼런스에 가서 연사분들과 명함 교환하며 많은 분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음.. 그런데 입사하고 명함을 몇백 장씩 받고 나니 인맥에 대해 느낀 바가 있다.

처음에는 네트워킹을 한다는 게 나의 능력과 상대의 능력을 견주어보고 관계를 확장시키면서 나중에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초특급 영향력을 가진 인사가 아니기에, 누군가가 다시 나를 찾고 나도 다시 그 사람을 찾는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는 사람이 좋고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다니는 회사를 설명하고 다니기가 어렵다. >>> 내가 회사를 믿고 투자할 가치가 있다면 시간을 벌어줄 방법들을 찾아보면 된다.

설명했지만 상대방이 시시하게 생각하거나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스스로 숙성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솔직하면 좋지만, 가끔은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감당 못할 상황은 사전에 차단하는 건 가치롭다고 생각한다.

이 방법이 극단적이라면 몇 가지 '우와~!' 할만한 정보만 먼저 소개해도 된다. 작은 인터넷 기사에 났다던지, 내가 속한 영역에 잘 나가는 회사 정보를 공유한다던지, 우리 회사 관련 좋은 정보를 보이는 정도로 충분하다.

(나 역시 처음에는 회사 인터뷰, 회사가 속한 공유 오피스를 공유하면서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려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꿈을 가지고 처음 회사에 들어가서 인간관계로 답답하고 내 결정이 옳은지 고뇌하며 보내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다. 그런데 혼자서 울며 답답한 시간을 견디고 있을 주니어 기획자분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삶을 살면서 천국에서만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어려운 시간을 지내본 사람은 비슷한 경험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주변에 많이 물어보시고 책과 글들을 찾아본 끝에 내린 자신의 선택을 믿으시면 좋겠다-!


p.s. 혹시 소셜벤처, 스타트업 첫 회사 입사 관련으로 고민을 나누고 싶은 주니어분들이 있으시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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