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함이 자존심과 불안함만 앞세웠다.
*이 포스팅은 회사에서 명확한 연봉협상 기준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첫 연봉협상을 대표님과 직접 진행한 주니어가 느낀 관점에서 작성했습니다. 회사 별로 다른 환경, 분위기가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연봉협상을 처음 할 때 생각이 난다.
솔직히 말하면 그 자리는 퇴사를 이야기하러 간 자리였다. 내가 생각한 직장을 다녀야 하는 3대 조건(동료, 연봉, 성장)이 모두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스톡옵션, 주식, 연봉협상 방법, 협상의 방법 등 밤새도록 찾아보고 발표하듯 정리해간 기억이 난다. 대표님 앞에서 메모지 가득 채워간 글을 읽어나갔다. 모양새는 빠졌지만 민망한 것보다 해야 할 말을 못 하는 게 더 싫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회사는 6개월마다 연봉협상을 했기 때문에 3차례 더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조금씩 나아졌다.
회사에 들어온 주니어 팀원들이 연봉협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물었던 적이 있다.
오늘은 그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겪은 연봉협상과 준비 과정, 아쉬운 부분을 보완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나만의 연봉 산정 기준'은 무엇인가요?
어렵고 부끄러울수록 명쾌하게 알려고 덤벼들어야 한다.
일할 때는 힘들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하면, 성과를 내면 오르겠지라는 기대감으로 일을 하게 된다. 잘하고 열심히 하면 알아서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연봉은 수학 공식이 아닌 협상인데.
웃긴 건 당시에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자기 몫은 스스로 주장해야 된다는 포스팅을 보면서 정작 현실에서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가끔 사람은 머리로 알아도 행동 못할 때가 있다.
돈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웠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본 경험도 없었고, 옆에서 본 경험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PR 하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낯설었다. 내가 협상을 잘못해서 손해 보면 억울할 것 같아서 며칠 전부터 자료 찾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힘이 잔뜩 들어간 채 비장하게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협상 자리에서 대표님은 느긋해 보이셨다. 내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적으셨고, 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주장했던 게 생각난다. '생각했던 액수보다 조금 더 높여서 불러볼까? 똑바로 얘기하는 게 맞나?' 그런 의심 가득한 생각들로 첫 대화가 끝났다. 그리곤 다시 이야기하기까지 시간이 있어 주변에 오픈해서 물어보고 블로그 주인에게 쪽지도 보내며 조언을 구했었다.
입사 전에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때 나는 '돈'이야기를 하는 걸 불편해하지 않아야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끼게 되었다.
협상을 할 때는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협상 자리가 불편했던 이유는 회사는 나에 비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 했던 실적, 평균 직무 연봉, 유사 연차 팀원의 연봉 등을 사실 내가 잘 몰랐던 거다.
회사도 자금을 운영하기 위해 치열하게 갖은 돈을 분배해야 하니 서로가 납득할만한 근거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내용은 꼭 작성해서 가지고 있고 재계약 기간이 올 때마다 개편했으면 한다. 그리고 연봉 누설 금지 조항이 있지만, 팀원에 따라 필요하면 물어볼 배짱도 있어야 했고 주변 친구들, 직장동료 등에게 물어볼 용기도 가지면 좋겠다.
*퇴사할 무렵 읽었던 책인데 꼭 이직하지 않아도 직장을 다니면서 가져야 할 마인드를 다지기 좋은 책이라 추천한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알아야 할 것
- 업계 평균 연봉을 회사 규모마다 찾아볼 필요가 있다.
정확한 수치가 아닌 대략적인 범위여도 괜찮다. 로켓펀치, 원티드, 블라인드, 잡플래닛 등에서 검색하는 것도 좋지만, 직무 별 커뮤니티 혹은 구글에서 '스타트업 직무+연봉협상' 식으로 쳐도 찾아볼 수 있다. 선후배도 좋고.
- 회사의 연봉 관련 특징을 물어보자.
회사 운영에 유리하기 때문에 급여보다 성과급 지급을 이용하는 회사도 있고, 지분이나 스톡옵션을 급여 외 제시할 수 있다. 성과급은 경험이 없지만 지분을 이야기할 경우, 주식 증여 시 세금, 업무 기간 조율을 상세하게 협의할 필요가 있고 스톡옵션은 회사가 외부 투자에게 주식을 공개할 정도로 클 가능성이 있어 보일 때 고려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회사가 투자받을 계획이 있다면 그전에 확정 지어야 더 유리하다.
2. 기본적인 협상 룰, 용어에 대해 인지하고 들어가자.
+ 감정 다툼하지 말자!
부끄럽지만 나는 첫 연봉협상 때 세전/세후에 따라 연봉협상 결과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 다른 팀원과 이야기하다 계약서를 받고 알았던 것 같다. 성과급, 스톡옵션, 주식 증여 등에 대해서도 대충은 알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협상을 하기 전에,
- 연봉으로 언급하는 숫자가 세전 금액인지 세후 금액인지 짚고 넘어갈 것
- 우리 회사의 성과 평가 방식이 있는지, 연봉과 어떻게 관련 있는지 알아보고 없다면 회사에 늦어도 재계약 3~4개월 전에 명확히 요청할 필요 있음. 만약 늦어진다면 다른 회사 자료 몇 가지를 벤치마킹해서 가져와도 좋음.
- 회사가 내가 들어온 후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파악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한 일을 파트별로 정리해서 가져갈 것. 정성, 정량 모두 결과물을 내면 가장 좋음
정도 생각해보고 들어가면 좋겠다.
그리고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는 마음이 나도 대표님도 들 수 있다. 회사는 투자 일정이 미뤄지기도 하고, 초기 자본금이 떨어져 데스벨리를 거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고정비가 많이 나가서 긴축재정을 하는 상황도 생긴다. 물론 이런 상황인 것과 별도로 내가 일한 부분에 대해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탓을 한다거나 감정적인 이야기가 섞이게 되면 힘든 과정을 견뎌나가는 모두에게 시한폭탄이 되어서 작은 문제가 돌이킬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그래서 어렵지만 감정이 화두로 떠오르면 분위기 쇄신을 해야 한다!
3. '계약'이다. 내가 납득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확정 짓지 않아도 된다.
계약서는 서명하는 순간 계약이다.
그렇기 때문에 찜찜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작은 회사일수록 대표님도 나도 처음이라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검토를 요청하는 건 상대를 못 믿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혹시 모를 상황에 나를 보호하는 방패막이 튼튼한지 확인하는 차원이다. 회사가 당신의 입장에서 검토받듯 우리도 우리 입장에서 검토를 받을 필요가 있다. 회사가 계약서를 받으면 바로 서명하지 않기보다 바뀐 조항이 있을 경우 설명을 요청해야 하고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물어봐야 한다. 검토 요청할 수 있는 노무법인 나 법무법인이 있다면 계약서 검토를 요청하면 가장 정확하다. 나 역시 스톡옵션이나 계약서를 받고 공유 오피스와 연계된 법무법인과 노무법인에 요청을 해서 검토를 받았었다.
엄마 아빠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부만 열심히 해.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었는데, 요즘은 그 말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를 경험하며 경제관념을 탑재하기 시작한 (나를 포함한) 주니어들. 대학원 때 프로젝트비 따고, 장학금 받을 때와 집 계약할 때도 어려웠는데 갈수록 돈 이야기할 일이 자꾸만 많아지는 게 현실이었다.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스타트업 연봉협상이 버겁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조금씩 직면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연봉을 비교하는 순간도 오고, 열심히 하면 돈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없는 살림이지만 대표님은 나에게 무언가를 더 주려고 하시기도 했다.
냉정하고 차가운 연봉 협상이지만 어려운 만큼 배울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그 과정에 임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