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전 회사에 큰 변동이 생기면서, 나는 새 조직으로 옮겨가게 됐다. 이때, 이직된 것과 맞먹을 정도의 변화였다. 내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무실, 노트북, 업무 시스템 그리고 심지어는 업무용 계정까지 새로 발급받았다. 하루하루 새로운 것들을 습득하는데 바빴고, 새로운 메이커스와 업무 호흡을 맞추고 적응하는데 정신없던 나날이었다. 3개월쯤 지나자, 이곳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시작했고, 6개월쯤 지나서 내가 담당했던 프로젝트가 드디어 오픈했다. 오픈된 뒤에도 안정시키며,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어느새 이 곳에서 1년이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점심 먹을래?"
딱 그즈음, 직전에 함께 일하던 팀장님께 연락이 왔다. 점심 먹자고.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10명이 넘는 팀장님을 거쳐왔지만, 이 팀장님은 내가 좋아하는 분 중 한 명이었다. 팀원들 사이에서도 호불호는 있었지만, 명확한 업무 전달과 사소한 데에서 간섭하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나는 극호였다. 또한, 내 강점을 알아봐 주시고 내 업무에 집중 할 수 있게 확실하게 밀어주시던 분이었다.
가볍게 근황 토크하러 사무실에 방문했던 나는, 금방 '이 점심 식사가 그냥 성사된 자리가 아니구나'를 느끼게 됐다. 점심을 먹으면서 팀장님이 현재 담당하는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과 어떤 담당자가 필요한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 역할이, 딱 내가 앞서 팀장님의 팀에서 했던 역할이었다. 서비스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하는 중이었고, 그 과정을 시작부터 끝까지 리딩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영역이었고, 그래서 팀장님은 내게 그 역할을 제안해 준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업무의 전체 사이클을 내가 리딩해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설렘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저런 걱정이 떠올랐다. 차라리 새로운 환경에서 아예 모르는 사람들과 일해야 한다면, 뭣도 모르고 뛰어들기라도 할 텐데... 내가 알던 환경으로 돌아가 이전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 다시 일 하려고 하니, 좋았던 기억보다 부정적인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보다 좀더 경직된 분위기였는데 다시 거기서 어떻게 일하지?
팀장님은 좋지만 그 위 리더는 나랑 잘 맞았었나?
기존에 일했던 메이커스와 썩 좋은 호흡이었나?
결국 회사에서 일은 나 혼자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과거에 일할 때, 상위 리더의 애매모호한 의사결정에 일주일 넘게 대기하기도 했고, 먼저 작업했다면 뒤늦게 결정된 방향에 따라 다시 재작업하기도 했다. 메이커스와 의견을 나누며 프로덕트를 함께 성장시켜 나간다는 느낌보단, 외주 맡기듯 개발되거나 개발이 어렵다면 정확한 사유 전달 없이 거절당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내가 즐겁게 일했는가를 떠올려 보면 내 대답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나는 팀장님네 조직으로 이동하지 않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업무 제안을 받아 그 곳으로 이동하게 됐다.
두 번째 제안도 내가 앞으로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다. 기존에 담당했던 프로젝트들은 새로 만들거나, 있던 것을 리뉴얼하는 업무를 맡았었다. 이제는 기반이 마련된 곳에서, 프로덕트를 고도화하고 성장시키는 업무를 담당하고 싶었고 그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함께 일할 메이커스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함께 일해본 경험은 없었지만, 다른 슬랙 채널에서 종종 봐왔던 사람들이며 커뮤니케이션이 매끄러워 보였다. 그들 중엔 다양한 프로덕트를 경험해 본 분도 있어 내가 배울 점도 많아 보였다.
결정적으로 내가 마음을 먹었던 것은 리더 면담 때 해준 말 때문이었다. 이 팀에서 내가 담당할 역할이 새로운 챌린지가 되어 한 단계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주었다. 또한, 새 팀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자신이나 개발 리더가 함께 서포트 해줄 것이라며 내게서 심적인 부담도 덜어주었다. 특히 두 번째 이야기에 자신감을 얻고 결국 제안을 수락하게 됐다.(사실 두 번째 제안을 준 사람이 내 현재 리더이기 때문에 업무를 바꾸는 과정이 좀 더 수월하기도 했다)
내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에 항상 감사한다. 그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은 내 몫이지만, 이를 위해 주변 환경과 함께 하는 사람들도 무시할 수 없다. 다행히 지금은 옮겨온 팀에서 잘 적응하는 중이다. 이번에 주어진 기회가, 다음에 새로운 기회의 도전 발판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일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