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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형 Apr 14. 2019

소크라테스, 끝없는 질문으로 양파를 까다

철학의 식탁 여덟 번째 이야기

한때 멕시코 음식점에서 주방 보조를 한 적이 있다. 멕시코 음식에는 코를 자극하는 재료가 많이 사용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주방 사람들을 괴롭히는 재료가 바로 ‘양파’였다. 동선을 줄이기 위해 최소화된 주방 통로(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사장님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에 양파 냄새가 가득 차면, 너도 나도 실연한 사람처럼 눈이 빨개지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양파라는 놈을 까다보면 생각나는 철학자가 한 사람 있다. 세계 4대 성인의 한 명이며, 온 생애를 통해 애지愛知를 실천한 그분! 악처 크산티페와의 일화로도 유명한 그분! 그렇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소크라테스’다.


양파를 다 까면 뭐가 나올까?

열심히 양파를 까다보면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양파를 다 까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 우리에 손에 남는 건 자그마한 식칼과 허공 뿐, 양파 껍질 속에는 양파도, 양파 씨도 없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으로 유명한 ‘산파술’ 역시 이 양파와 비슷하다. 산파술은 산파가 아이를 받듯, 끊임없이 대화 상대에게 질문을 던져 결국 상대방이 ‘알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게 하는 대화법이다.


‘아니, 그렇다면 대화는 해서 뭐하나? 결국 아무 것도 알아낸 게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쯤에는 도마 위에 놓인 양파 조각으로 시선을 돌리면 된다. 양파 껍질을 다 까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양파 조각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와 대화한 상대방은 질문과 답의 무수한 반복을 통해 최종적으로 내가 무지하다는, ‘무지無知의 지知’를 깨닫게 된다.



무지, 그 다음은 뭐?

무지의 지를 깨달은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앎은 크게 한 걸음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몰랐지만, 적어도 이제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지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양파 조각을 얻었으니 뻔하지 않을까? 지지든 볶든 뭐라도 해서 먹어야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의 『국가』를 보면 소크라테스는 늘 상대방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소크라테스와 대화 상대는 이상 국가의 ‘정체政體’를 만든다. 즉, 무지로 향하는 터널을 지남으로써 보편적 진리와 절대선으로 조금씩 다가감은 물론, 다양한 현실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이고, 우리에게는 눈앞에 놓인 양파를 일용할 양식으로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한 과제다. 이 얼얼한 놈을 대체 어떻게 먹어야 할까? 소크라테스에게는 유명한 아내가 있다. 이번 장에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악처, 크산티페에게 바칠 요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악처 크산티페

크산티페가 누구냐고? 일단 잠시 소크라테스의 개인사를 살펴보자.


소크라테스는 B.C.469년에 태어나 B.C.399년 아테네 시민들에게 고소를 당해 독약을 먹고 죽었다. 그는 크산티페와 결혼해 아들 셋을 두었으며, 찌부러진 코와 튀어나온 두 눈을 가진 추남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주된 일과는 거리의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고 하며, 이런 그의 행동은 후대 철학사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개인사를 조금만 주의 깊게 살피다보면 ‘악처’ 크산티페에게 자꾸 눈이 간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소크라테스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왜 악처로 불릴 만큼 못된 여자와 부부의 연을 맺었을까? 크산티페가 정말 악처였을까? 혹시 악처가 될 수밖에 없던 건 아닐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선 이들 부부의 결혼 생활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첫째, 그들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 셋은 먹여 살리기 참 버거운 숫자다.

둘째, 소크라테스는 뚜렷한 직업이 없었다. 항상 사람들과 대화하고 다닐 뿐,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백수’였던 거다.

셋째, 소크라테스는 (세계적으로 소문날 만큼) 못 생겼으며, 크산티페와 나이차가 30년 이상 났다고 알려져 있다.


자, 이제 얼추 모양이 나온다. 자신보다 나이가 서른 살이나 많고, 못 생겼으며, 경제적 능력도 없는 남편을 좋아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 아닐까? 언젠가는 소크라테스와 싸우던 크산티페가 참지 못하고 소크라테스에게 물을 끼얹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때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주 가관이다. “천둥 번개 다음에는 항상 큰 소나기가 따르게 마련이지.”



기가 막히는 뻔뻔함 아닌가? 이쯤 되면 철학책이 아니라 사랑과 전쟁에나 나올 법한 캐릭터 아닌가 싶다. 우린 이 화상과 한 생애를 살아낸 크산티페에게 이 요리를 바치고자 한다.



생양파무침 만들기!

생양파무침, 듣기만 해도 얼얼하다고? 아니. 결혼 생활 대부분이 쓰디쓰다 못해 사리가 생겼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크산티페에게 그런 요리를 추천해서야 쓰겠나. 양파가 몸에 좋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다만 그 얼얼하고 강렬한 향 때문에 자유롭게 먹기가 힘들 뿐이다. 생양파무침은 그런 단점을 극복한 요리다. 양파의 매콤함은 살리면서도 새콤달콤한 양념이 입맛을 돋운다. 게다가 양파는 활성산소를 잡아줘 다이어트에도 매우 좋다니 이번 기회에 집 나간 입맛 한번 잡아보자.


재료 : 양파 1개, 오이 1/2개, 굵은소금 조금, 고추장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식초 1큰술, 매실청 1큰술, 다진마늘 1/2작은술, 통깨 조금


만들어 봅시다 :

1) 양파는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잘라 3X2로 썰어준다. 오이는 반으로 갈라 어슷썰기 시전!

2) 볼에 양파와 오이를 담고 소금에 10~20분 가량 절여준다. 그 뒤 물기를 키친타월로 꼭 짜고 올리고당과 매실청을 넣어 버무려준다.

3)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식초를 분량대로 넣은 뒤 무친다.

4) 접시에 담는다.

5) 내 화를 돋우는 그 사람을 떠올리며 맛있게 씹어 먹는다(시원한 맥주와 함께하면 효과만점!).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알다시피 그는 70세의 나이에 법정에 올라 시민들의 재판을 받고, 자신의 손으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가 끝까지 철학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음……. 어쩌면 ‘철학한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럼 이렇게 다시 풀어보면 어떨까? ‘지혜(sophia)에 대한 사랑(philos)’을 그치지 않았다고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무수한 질문이 반복되는 우리의 삶을 끝까지 탐구하고 답을 찾으려 노력한 철학자였다. 그리고 그 끝에서 자신의 무지마저 겸허히 인정한 사람이었다.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끝없는 대답. 심플해가는 것 같지만 갈수록 알 수 없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소크라테스에게 배워야 할 건 그런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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