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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형 May 19. 2019

미셸 푸코, 파스타를 재단하다

철학의 식탁 열한 번째 이야기

사람에겐 모름지기 필살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취업난에 빠진 삼포세대에겐 입사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이 면접관을 혹하게 할 화려한 스펙과 언변을 풀어 놓을 때이고, 밤새 롤에 빠져 있던 학생들에겐 급히 강의실에 들어설 1교시 시험시간이 바로 신들린 찍기 능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뿐이랴, 눈칫밥 먹기에 여념 없는 사회 초년생에게는 매일 저녁마다 이어지는 회식시간이 강한 의지와 체력이라는 고도의 필살기가 갈급해지는 순간이다.


진짜 필살기가 필요한 순간

물론 이렇게 따지다 보면 매 순간이 우리에겐 필살기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는 법. 하지만 만약 제대로 된 한 방이 필요한 순간을 꼽자면 이때가 아닐까. 바로 누군가와 ‘썸’ 좀 타야 할 때 말이다. 내 주변의 어느 형님은 솔로 시절부터 기타를 무척 잘 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것도 한 곡만. 한 곡 정도야 조금만 배우면 다 칠 줄 아는 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자고로 다 할 줄 아는 사람만큼 제대로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왠지 다른 곡도 다 잘 칠 것 같은 착각은 덤. “그렇게 많은 곡이 필요한 게 아니야 임마. 뭐든 그것만 꾸준히 반복하면 하나만으로도 매력이 철철 넘치게 된다니까.”


대학 초년생 시절, 뼈와 살이 될 값진 조언을 가슴 깊이 새긴 나 역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한방을 준비했다. 음, 기타나 피아노 같은 악기는 식상하니까 넘어가고. 그림 솜씨는 워낙 바닥이니 패스. 모름지기 필살기는 의외성이 중요한 법. 딱딱한 말투와 투박한 손을 가진, 내가 마침내 정한 무기는 바로 ‘파스타’였다. 생각해보면 파스타는 필살기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요리였다. 굳이 맛을 차치하더라도 꽤나 싼 가격에 만들 수 있는데다 분위기마저 금세 바꿔놓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가!


만들기 어렵지 않다는 것도 장점 중의 장점. 먼저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어 간을 맞춘 뒤, 면을 넣어 삶는다. 시간은 7~8분 가량. 익었는지 살펴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먹어보는 거다. 무턱대고 벽에 던지는 몰상식함은 기껏 잡아놓은 분위기마저 망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면이 준비됐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파스타를 만들 차례다.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 적당히 두른 뒤, 마늘과 베이컨 몇 조각 넣고 볶다 우유와 생크림, 계란 노른자, 그리고 적당량의 소금을 넣고 졸인다. 그리고 여기 삶은 면을 넣고 간이 잘 배도록 익혀주기만 하면 끝! 출출하다면 끼니대신 먹어도, 안주삼아 함께 시원한 맥주 한 캔 곁들여도 좋은 ‘존재 자체로도 고맙고 또 고마운’ 음식 완성이다.


마지막으로 파스타가 필살기로 손색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종류나 조리법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마치 와인 좀 아는 친구가 꽤 괜찮게 느껴지는 것처럼 파스타 좀 안다 싶은 것도 나름 있어 보인달까. 라비올리, 토르텔리니, 라자냐 등등 솔직히 이건 파스타 종류만 구분할 줄 알아도 꽤나 성공한 필살기다.


구조주의의 눈으로 파스타 바라보기

이왕 종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시 짬을 내 구체적으로 파스타를 한 번 분류해 보자. 일반적인 분류법이야 지식인 한 방이면 알 수 있을 테니 조금 색다른 방식을 시도해볼까 한다. 그 분류 기준은 총 14가지다.


1) 대통령의 파스타, 2) 방부 처리된 재료를 사용한 파스타, 3) 인간의 손으로 재배된 재료를 사용하는 파스타, 4) 베어 물면 주~욱 쫄깃한 치즈가 배어 나오는 토르텔리니, 5) 파마산 치즈로 빚은 라비올리, 6) 대장간의 신 헤파이토스가 만든 파스타(전설에 따르면 파스타 기구를 만든 인물이 바로 헤파이토스다), 7) 주인 없는 라자냐, 8) 이 분류법에 포함되는 파스타, 9) 냄비 속을 쉼 없이 돌아다니며 삶아진 파스타, 10) 셀 수 없는 파스타, 11) 가는 붓을 이용해 묘사할 수 있는 파스타, 12) 기타 등등, 13) 퉁퉁 불어버린 파스타, 14) 멀리서 보면 만두처럼 생긴 파스타. …… 어라?


위의 분류법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의 『픽션들』에 나온 동물 분류법을 파스타에 적용시킨 예다. 혹시 이 분류법에 빠진 파스타가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예 없거나 최소한 아주 적을 것임엔 분명하다. 그런데 분류하고 나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씁쓸한 뒷맛은 무얼까? 그건 아마도 낯섦, 즉 위의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기준으로 내용물을 담고 세계를 재단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위의 분류법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른 구조를 지녔기 때문인 것. 이처럼 내용물 자체보다는 그것을 재단하는 틀에 관심을 가지며, 그 틀이 우리의 인식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사고를 ‘구조주의’라 말한다. 우리는 구조 속에서 세상을 인식한다. 틀이 조금만 바뀌거나 흔들려도 괴리감을 느끼는 이유 역시 우리가 이런 사고방식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존에 가진 틀(가령 파스타의 종류는 재료에 따라 150여 가지, 면의 형태상으론 600여 가지 이상으로 분류된다. 크게는 면의 상태에 따라 생 파스타와 건조 파스타로 나눌 수 있으며, 형태에 따라서 롱 파스타와 쇼트 파스타 등으로 나눌 수 있다는 식의)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기존의 틀은 정상적이고 문화적이며, 다른 틀(위의 보르헤스식 파스타 분류법 같은)은 이상하고 야만스럽다는 사고는 정말 옳은 것일까? 우리 생각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믿음은 과연 맞는 것일까?


정상이란 믿음이야 말로 가장 비정상적인 것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 같은 물음에 관해 그런 사고야말로 오히려 이상하고 야만적인 것이라 답한다.


이 책의 발상은 보르헤스의 소설 가운데 한 대목으로부터, 그 대목을 읽었을 때 지금까지 간직해 온 나의 사고의 전 지평을 산산이 부숴버린 웃음으로부터 연유한다 (…) 이 대목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한 백과사전’을 인용하고 있다. ‘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a) 황제에 속하는 동물 (b)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c) 사육동물 (d) 젖을 빠는 돼지 (e) 인어 (f) 전설상의 동물 (g) 주인 없는 개 (h) 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i) 광폭한 동물 (j) 셀 수 없는 동물 (k)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l) 기타 (m) 물 주전자를 깨트리는 동물 (n) 멀리서 볼 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이와 같은 분류법에 대해 경탄하는 가운데 우리가 단번에 감지할 수 있는 것, 우화를 통해 우리에게 또 다른 사고 체계의 이국적인 매력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의 사고의 한계, 즉 ‘그것’에 대한 사고의 절대적인 불가능성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위에서 보여준 파스타의 분류방식이나 중국의 백과사전에 담긴 내용이 불편하고 이국적이라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분류를 해야겠다는 인식을 한 번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이는 우리 인식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좋은 예인 것. 그는 우리가 만약 이러한 한계를 인정한다면, 내가 그러니까 남도 마찬가지라는 ‘보편성의 개념’ 역시 한낱 허구에 불과해 질 것이라 설명한다. 우리(동일성)와 남(타자)을 나누어 생각하는 사고는 일종의 자아중심주의일 뿐이며, 보편성의 탈을 쓴 채 완성되는 합리주의와 휴머니즘 역시 내가 타자에게 가하는 폭력이라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

살면서 우리는 ‘다른’ 이들과 종종 마주하게 된다. 본질에 어긋나거나 휴머니즘에 배치된다고 여겨지는 이들의 행위에 대해 우리는 일탈 혹은 광기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당사자들을 감시하고, 격리하며, 배척한다.


하지만 푸코는 우리가 소위 미친 사람들에 대하여 칼날을 겨누기 시작한 것이 불과 200~300년 밖에 되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한다. 근대 이전만 하더라도 이들은 감금과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어엿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왔다는 것이다(거친 들판을 맘껏 뛰어다니던 ‘광인’ 돈키호테를 생각해보라). 뿐만 아니다. 이러한 탄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100~200년 전만 해도 빈민과 광인은 같은 취급을 받고 함께 격리 수용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비인간화는 물론 필수였다. 그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거나 최소한 미성숙한 자라고 여긴 것이다. 솔직히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찌 그리 쉽게 가두고 괴롭힐 수 있었겠나. 이후 빈민들이 감금의 상태에서 벗어난 사정 역시 그들의 지위나 인권이 올라가서도, 인권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아져서도 아니었다. 단지 그들을 격리 수용할 공간과 규모가 마련되기 어려웠을 뿐이다.


타인에 대한 밀어내기와 배척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좌우를 나눠 서로에 대한 증오와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몰이해와 이기적 사고를 바탕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감과 차별을 아무렇지 않게 표출하는 사람들. 앞서 말한 보르헤스식 분류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이상하기 때문에’ 배제되고 차별받아야 하는 대상인가?


푸코는 다양한 저작과 강의, 사회참여 등을 통해 권력이 소수자에게 가하려는 폭력과 격리가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밝히려 했다. 흔히들 창조는 ‘다름’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토록 다른 것을 갈망하면서도 남과 다르지 못했던 이유는 어쩌면 이러한 다름을 차가운 눈길로 배척하고 제외하려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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