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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차 Mar 15. 2021

할머니가 된 무과수를 상상하며 집을 가꿔요

나닮집ep.1 무과수의 집

이름값 한다는 말을 요새는 '닉값' 한다고 말한다. 이름값이든 닉네임값이든 어쨌든 그 값어치 하고 산다는 게 쉬운가. 그런데 '닉값 제대론데'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사람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무과수. 본명은 황다검인데 본인이 듣고도 어색해할 만큼 무과수가 더 본캐 같다. 무과수(撫果樹)는 '어루만질 무', 열매 맺는 나무인 '과수'를 더해 지었다. 가진 재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는 뜻이라고. 그의 대표 키워드이기도 한 #무과수의집을 찾아갔는데, 느낌 한줄평. 진정한 닉값!




"좋아하는 게 많은데, 그게 나름의 질서가 있나봐요."


좋아하는 게 많을수록 좋다.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보카도가 완벽하게 쪼개졌을 때, 유난히 예쁜 초승달이 떴을 때, 고양이 발바닥에서 꼬순내를 맡을 때, 싱겁게도 행복감을 느낀다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무과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무과수의 집 곳곳에는 보통의 행복이 묻어 있었다. 빛바랜 색감의 물건들, 노르스름한 조명, 새로 들인 피아노, 제주도에서 사 온 룸 스프레이...... 

"한 번도 계획해서 집을 꾸며본 적은 없어요. 사서 모으다 보니 이런 집이 됐어요."

취향이 명확한 사람들은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질서를 만든다.


나는 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집을 꾸밀 때 매우 계획적이었다. 트렌디한 인테리어를 찾아보고, SNS에서 자주 봤던 아이템을 구입했다. 처음엔 매우 뿌듯했으나 머지않아 내 취향이 아님을 깨달았다. 당장 집을 채우고 완성하기보다, 시간을 들여 나와 맞는 것들을 찾아보기로 생각을 바꿨다. 작가이자 오늘의집 콘텐츠&커뮤니티 매니저이기도 한 무과수는 "실패를 두려워하다보니 정답을 찾게 되고, 안전한 제품들이 인기를 끈다."며 "누구나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팁을 물었더니 '심적인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리적인 공간을 낼 수 없다면, 머리맡에 아늑한 조명을 두어 분위기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유가 된다면 소품보다 대가구를 먼저 배치해 좋은 자세와 습관을 유지하기를 추천했다. 공간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일찍 깨달았다는 그는 "나를 닮은 집에서 정서적인 충족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할머니가 됐을 때의 무과수의 집을 상상해요."


좋아하는 물건을 물었더니 예전만큼 아끼는 게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수첩'과 엄마와의 첫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빈티지 서랍'은 꽤 소중하다며 보여줬다. 언젠가 무과수의 인터뷰 영상을 보며 격하게 공감했던 내용이 있는데 "국자 하나 사는 것도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못 산다. 쉽게 버려지는 것이 싫어서."라던 장면이었다. 나도 그렇다고 하니 "아마 많이 사보고 실패하고 버려본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했다. 맞다. 버리는 게 아깝고 바꾸기가 귀찮아서라도 처음 물건을 들일 때 점점 더 신중해진다. 그래서 어떤 물건을 선택해야 할 지 고민될 때가 많은데, 무과수의 얘기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오래 쓸 수 있는 물건, 할머니가 돼도 집 한 켠에 두고 싶은 물건을 산다고. 앞으로 선택장애가 올 때면 할머니가 된 나를 상상할 것이다.


'나를 닮은 물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 불쑥 궁금해 무과수를 닮은 것에 대해 물었다. 애매한 질문에 잠시 당황하더니, 곧 장우철 작가의 사진 하나를 골랐다. 푸른 빛이 도는 평범한 화병 하나가 유일한 피사체인 사진. "일상적인 장면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이 좋아요. 화려하진 않지만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것들." 이 사진 역시 할머니가 된 무과수의 집을 떠올리며 구입했다. "제 이름이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어요. 보통의 평온함, 보통의 일상 같은." 나를 닮은 물건은 무엇일까, 한 번 찾아볼 요량이다.


나와 주변을 어루만지는 공간, 무과수의 집


무과수는 예전에 살던 '감나무집'에서 낯선 사람들을 즉흥적으로 집에 초대했었다. 그때의 이야기를 묻자 찡한 표정을 지으며 "꿈처럼 좋았다. 지금 생각해도 울컥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무과수의 집'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모여 그렇게 진솔한 얘기를 나누게 될 줄 몰랐다고. 무과수는 앞으로 더 많은 이들과 이렇게 만날 수 있는 '무과수의 집'을 현실화하는 것이 꿈이다. 무과수의 집은 본인뿐만 아니라 불특정한 다수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지고 위로한다. 무과수의 집이 특별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오히려 "내가 더 묻고 싶다."며 반문했다. "그저 잘 살고 싶고, 일도 잘 하고 싶고, 건강하고 싶은 평범한 얘기인데, 다양하게 봐주시는 시선 덕에 특별해지는 것 같다."며.


코로나 시국을 겪어내며 집의 역할이 변하고 있지 않나. 앞으로 집다운 집이란 어떤 형태일지 묻자 "공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며 더욱 뾰족한 취향을 드러내는 집이 많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그동안 자발적 고립과 사생활 보호를 자처했지만 막상 단절되고 나니 사람을 그리워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짚으며 "그래도 교류는 지속돼야 한다."고도 했다. 더욱 개인화된 취향의 '내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느슨하지만 '연대의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흥미로웠던 지점. 무과수는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은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다들 갖고 있다면 조금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쉼과는 다른, 놀이


무과수는 최근에 피아노를 샀다. 목적 없이,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그저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어른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취미조차도 '해야 하는 일'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놀이라는 말이 반갑다. 어쩌면 '쉼'보다도 결핍된 것이 '놀이'가 아닐까. 무과수는 무과수의 집에서 글을 쓰고, 아침을 먹고, 할머니가 된 자신을 상상하고, 때로는 낯선 이를 초대하며, 요즘은 피아노를 친다. 


"그냥 제가 어떤 것들로 인해서 행복하고 있다고 얘기해주는 게 좋은 영감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이 말이 제일 좋았다.





https://youtu.be/tnjVXwdRT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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