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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19. 2022

17. 집사의 추억

브런치북_다시,제주

몽이 이야기


"크리스마스는 즐거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슬플줄 몰랐어."

딸아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습니다. 어느새 크리스마스도 늦은 오후를 향해 가고 있었고 몇시간 후면 우리의 기억속에 그날은 '슬픈 크리스마스'로 기억될 터였습니다. 

'오늘 아침을 어떻게 시작했더라?'

몇시간 전 일이 마치 몇달 전처럼 그렇게 까마득하게 느껴졌습니다.


성탄절이 밝아오던 새벽, 저는 몽이와 함께 있었습니다. 녀석은 우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이름입니다. 

성별은 수컷. 정확한 품종은 알지 못하는 흔한 길고양이과의 어린 녀석으로 우리집에 온지는 4개월쯤 됐습니다. 애완동물이라곤 한번도 키워보지 않았던 우리 가족에게 이 녀석과의 만남은 '운명' 처럼 왔습니다.

애초에 제주로 내려와 살겠다 했을 때부터 낯선 곳으로 또 다시 이사가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학교를 옮겨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거부반응을 일으킬거라 미리 에둘러 짐작한 우리는 작은 아이가 한창 꽂혀있는 '강아지 키우기'를 허락하겠노라 했습니다. 산책길에 만나는 강아지마다 이뻐 어쩔줄 모르던 작은 아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선뜻 제주행을 따라나섰습니다.


제주로 이사한 후, 이삿짐도 오기 전부터 유기견센터를 먼저 찾았습니다. 키울거면 사기보다는 유기된 아이들 중에서 데려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즐겨보던 '효리네 민박'에서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란 이효리씨의 조용한 외침을 저 역시 깊게 새겨들었던가 보았습니다.

처음으로 찾은 제주 유기견 센터는 한마디로 우리를 침울하게 했습니다. 안내자에 따라 이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향하는 길부터 요란하게 개짓는 소리가 울려왔고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코를 싸잡아 쥐게 할만큼 강렬한 악취가 풍겨져 왔습니다. 방마다 가득 들어차 있던 크고 작은 개들의 몰골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털이 엉키고 오물이 묻고 지저분했습니다. 워낙 사람 손에 길들여져 자랐던 아이들이었기에 사람을 너무 그리워하는 듯 했습니다. 우리 앞에서 서로 자기 먼저 데려가라고 온갖 애교와 교태를 부려댔습니다. 꼬리를 흔들고 뱅글뱅글 돌고 앞발을 들고 간절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습니다. 

그 와중에도 차마 누구를 고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간절하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고 또한 그 누구도 선뜻 손이 가는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딸아이도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애견센터의 강아지들처럼 예쁘게 단장하고 꼬리를 흔들며 와서 안길 것을 기대하고 갔던 아이 입장에선 그곳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입양을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돌아서는 우리 뒤로 한꺼번에 울어대는 그들의 절규는 전쟁터의 울부짖음처럼 처절했습니다.


며칠 후 과일박스를 사러 간 제주시내 한 상점에서 정말 작디작은 새끼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아직 젖도 안뗐을 새끼 고양이는 정말 작았고 그 작은 몸으로 상점 안을 이리저리 줄기차게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모든 작은 것들이 그러하듯 단박에 그 녀석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딸아이는 녀석을 졸졸 쫓아다니며 어떻게든 만져보고 싶어 안달을 했습니다. 가게 사장님이 대뜸 딸아이에게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겠느냐 물으셨습니다. 얘기인즉슨 대구에서 물건을 싣고 온 화물차 파렛트에 눈도 뜨지 않은 새끼고양이 다섯마리가 실려왔다는 거였습니다. 새끼를 낳은 어미고양이는 보이지 않았고, 아마도 어둡고 후미진 곳에 몸을 풀고 잠시 나간 사이 그대로 지게차에 실려 바다를 건넌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눈도 뜨지 못한 다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 중 세마리는 입양이 되었고 지금 가게에 있는 두마리가 남은 거라 했습니다. 이미 가게에는 일년전 똑같은 상황으로 실려온 세마리의 고양이가 거대한 성묘가 되어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더이상의 고양이를 받아줄수 없는 상황이라 사장님은 분양이 어렵다면 실려왔던 대구로 다시 싣고 갈 생각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남은 두 마리 중 한놈은 우유를 잔뜩 먹고 자기 집에서 쌕쌕 자고 있는데, 이놈은 어찌나 부산하게 돌아다니는지 결국 좀더 통통하고 팔자 좋아 보이는 놈보다는 호기심 많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이놈을 데리고 오게 됐습니다. 애완동물을 키운다는건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기에, 무엇보다 우리는 필리핀에서 사업을 쫄딱 말아먹고 새로 시작해보겠다고 너무도 가벼이 제주로 온 터라 경제적 문제에서도 사실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그럼에도 왠일인지 남편과 저는 선뜻 이놈을 키우겠다 했습니다. 사람도 이러고 사는데 고양이라고 뭐 그리 많은게 필요하랴 하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이 작은 고양이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녀석을 입양 전부터 지어놓은 이름 '자몽'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안녕? 자몽~ "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에서 낯선 곳이 어색했는지 자몽은 가느다란 소리로 계속 '야옹야옹' 울었습니다. 

코밑으론 얽은 자국이 있고 새끼 고양이치고는 말랐으며 그닥 귀염성 있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눈빛만은 또롱또롱했습니다. 녀석은 집에 도착하자 처음에는 낯설어 하더니 이내 아무것도 없이 휑하게 넓은 거실을 조심스레 걸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처음 울어대던 '야옹' 소리도 없어지고 우리가 안아주면 '갸르릉'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얘봐. 갸르릉 갸르릉 해. 신기해. "

아이는 자몽을 들여올려 귀 옆에 대고는 몹시 신기해했고 남편과 저 역시도 가르릉 거리는 그 녀석의 소리가이제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준듯하여 싫지 않았습니다. 데리고 온 가게에서 함께 준 분유와 젓병으로 우유를 줬습니다. 먹성좋은 녀석은 젓병을 앞발로 움켜잡고  숨넘어가듯 먹어재꼈고 그 작은 배가 불러오면 이내 앞발로 젓병을 밀어냈습니다. 



고양이 모래와 사료등 당장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시내 나가는 길에 고양이 전문점이라는 간판에 차를 세웠습니다. 고양이에 대해 너무도 무지한 우리였기에 이것저것 묻고 배우고 장만할 요량으로 박스에 담은 자몽을 안고 들어간 그곳은 벽면을 가득채운 칸칸마다 고양이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를 모르는 우리가 보기에도 비싼 몸값의 고양이들 같았습니다. 점원에게 박스에 든 몽이를 보이며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왔다 하니 상자 안을 흘깃 본 점원은 건성으로 다이소에 가보라 했습니다.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그녀의 눈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종이박스에 대충 넣어 온 길고양이 출신의 볼품 없는 새끼 고양이. 사람처럼 이 바닥에도 출신을 따지고 신분을 정하는 서열제도가 날 때부터 있는가 보았습니다. 꼭 그럴 일도 아닌데 괜히 우리 냥이가 무시당한 것만 같아 화가 났습니다. 씩씩거리며 제주 와서 가장 많이 드나들었던 다이소에서 그동안 한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펫코너를 찾았습니다. 고양이 모래도 사고 새끼 고양이 전용 사료도 샀습니다. 자몽을 누추한 박스집에서 탈피하게 해줄 꽃무늬까지는 아니어도 비슷한 무늬에 다이소에서는 제법 고급스러워보이는 부드러운 융단소재의 집도 골랐습니다. 만질수록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느낌이 자몽에게는 침대처럼 포근하게 느껴질것 같아 계산하는 동안에도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차안에서 당장 박스에 있던 자몽을 들어 새로 산 집으로 옮겨주었습니다. 신기한 듯 이리저리 앞발로 꾹꾹 눌러보더니 이내 맘에 드는지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거실 한켠에 집을 놓아주고 사온 고양이 모래로 집옆에  화장실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몽은 새 집을 연신 눌러보고 사람처럼 쓰다듬어보더니 자기 자리임을 인정한 듯 들어가 얌전히 누웠습니다. 자몽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그리 좋을수 없었습니다.

"몽~ 새집이 맘에 들어? 너 완전 럭셔리 고양이같애~"





자몽은 언젠가부터 '몽~'이가 되었습니다. 온 가족 모두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제일 먼저 "몽~"하고 불렀고 혹시라도 그 작은 몸을 밟을까 항상 발끝을 살폈습니다. 

무더운 여름 끝자락에서 만난 몽이는 그렇게 가을이 되면서 젖병도 떼고 사료를 먹는 냥이가 되었습니다. 점프도 하고 털도 부드러워졌으며 이방 저방 안다니는 곳이 없이 사고도 쳤습니다. 빨래를 갤 때면 옷가지 사이로 어찌나 분주하게 뛰어다니는지 아무리 야단을 쳐도 듣질 않았고 본능적으로 배변을 가릴 줄 알면서도 가끔은 엉뚱한 곳에 오줌이나 똥을 싸놓아 기겁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가구라곤 없던 집에 육지에서 이삿짐이 오면서 이런저런 가구들이 집안에 채워졌습니다. 짐이 들어오던 날, 그 누구보다 신난 건 몽이였습니다. 가구마다 신기한 듯 앞발로 만져보고 둘러보고, 올라타고, 숨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높아서 못 올라갈 줄 알았던 침대도 몇번의 시도끝에 가뿐하게 올라갔고, 이불 속으로 혼자 파고들어가 쿨쿨 잠을 자고 있기도 했습니다. 

더위가 물러가고 제주의 가을이 왔습니다. 앞마당 감나무에 몽이를 조심스레 올려놓았습니다. 처음엔 겨우 나무를 짚고 위태하게 서는가 싶더니 이내 두 앞발에 힘을 주고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 얘 좀 봐. 나무 올라간다. "

어느새 윗편 나뭇가지까지 올라간 몽이는 한동안 내려올 줄 몰랐습니다. 


 

이후에도 몽이는 현관문만 열면 쏜살같이 달려나가 나무위를 순식간에 올랐고 넓은 세상을 감상하듯 제일 높은 곳에서 주변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고양이에게 필요하다는 캣타워도 스크래쳐도 필요 없었습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마당의 감나무 줄기는 몽이의 캣타워이자 스크래쳐가 되어 주었습니다. 고양이는 하루의 대다수 시간을 잠자는데 쓴다는데 그때의 몽이는 정말 잠이 없었습니다. 정말 빨랐고, 누구보다 호기심이 왕성했으며, 진짜 장난꾸러기였습니다. 

찬바람이 불면서 몽이의 골격도 제법 커졌고 얼굴도 앳된 모습에서 벗어나 청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들은 날때부터 암수 구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커가면서 생식기의 변화로 구분한다는데 그 전까지 암컷인줄만 알았던 몽이가 수컷이라는 사실을 알고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집 나간 암컷은 반드시 돌아오지만 발정난 수컷은 한번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어린 몽이지만 몇달 후면 발정을 시작할 수 있고 그러면 암컷을 찾아 헤맬거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몽이뿐만 아니라 집사인 우리 가족도 힘들어질 터였습니다. 가장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던 나름의 주관이 흔들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연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키우고 싶었던 몽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 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마당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족히 열댓마리는 되는 동네 길고양이들을 보면 몽이로 인해 다른 암컷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은 또 저렇게 돌아다니고 음식 찌꺼기를 뒤지고 또 다른 새끼를 만들고 그런 악순환이 될꺼라 생각하니 몽이를 위해서도, 또 너무나 쉽게 불어나고 사라지는 길고양이들을 위해서도 중성화 수술은 피할수 없는 일이라 여겨졌습니다. 예방접종때도 잔뜩 얼어 힘들어했던 몽이를 다시 또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게 영 내키질 않아 이대로 몽이의 성장이 멈춰지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성묘가 되고 늙은 고양이가 되어 무지개 다리를 건널때까지 우리와 함께 오손도손 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몽이는 일찍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사료 잘 먹고 똥 잘 싸고 잘 놀던 몽이가 이상 증세를 보인건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이었습니다. 전날까지 밖으로 쏘다니며 잘 뛰어놀다 들어온 몽이가 아침이 됐는데도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사료도 반이나 남겼고 만사 귀찮다는 듯 제 집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안하는 녀석을 보며

"얘도 늙어가나 봐. 갑자기 잠 많아지는 거 보니. "

"전날 밖에 나가 놀다 조폭 고양이 만난 거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좋아하는 밖에 나갈 생각을 왜 안하지?"

현관문을 열어줘도 바라만 볼 뿐 이내 뒤돌아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몽이를 보며 남편과 저는 의아해했습니다. 그날 외출했다 돌아왔지만 여전히 몽이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고 제가 안아들자 귀찮다는 듯이 '끙' 소리를 내며 펄쩍 뛰어내린채 등지고 웅크렸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저도 추워 그런가 싶어 오랜만에 온수매트에 이불까지 덮어주고 옆에 뉘인채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함께 자는 날이면 항상 새벽에 깨어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고 있는 우리 발가락을 깨물고 머리카락을 물며 놀자고 하던 놈이 한밤중 깨어 찾아보니 어느샌가 침대에서 내려가 자기 집에 들어가 누워 있었습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스킨쉽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쫓겨나면 쫓겨났지 먼저 내려갈 녀석이 없는 아인데 별일이다 싶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지만 사료도, 물도 줄지 않았고 몽이는 일체의 음식을 거부했습니다.

만지는 것도 싫어했고 자꾸만 구석으로 혼자 들어가 있거나 힘없이 걸어나와 한껏 웅크렸습니다. 물이라도 먹으면 좋으련만 물도 잠시 바라만 볼뿐 입을 가져다 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몽이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오늘만 지켜보고 그래도 안되면 내일이라도 병원에 데려가야겠다 생각하며 냉장고 앞에 몽이를 데려다놓고 식사를 했습니다. 찌게 끓는 냄새가 역겨웠는지 갑자기 '꾸웩' 소리를 내며 몽이는 구토를 했습니다. 먹은게 없어 노오란 위액만 나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몽이가 나을거라 기대하고 있었던 딸아이는 몹시 놀랐습니다.

"몽이 죽을건가 봐."

그날밤 방문을 긁는 소리에 퍼뜩 잠이 깼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습니다. 방문을 열자마자 몽이가 문지방에 엎어졌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면서도 온힘을 다해 방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뻗어버린 가죽만 남은 털뭉치의 몽이를 안고 냉장고 앞에 눕혔습니다. 그 깔끔하던 녀석이 자기를 치장할 힘이 없어 토사물이 묻은 입과 설사로 모래가 엉킨 엉덩이를 그대로 둔채 쌕쌕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반쯤 벌린 입 사이로 병자 특유의 악취가 났습니다. 얼마나 깨끗하던 녀석인데, 자기도 얼마나 싫을까 싶어 물티슈로 입도 닦아주고 엉덩이도 깨끗이 닦아주며 식탁에 켜둔 초가 다 타 먼동이 터올때까지 그렇게 어둠속에 둘이 함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밤새 답답했을 몽이를 담요에 감싸안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흐리던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자 따뜻한 온기가 쏟아졌습니다. 담요에 싼 몽이를 안고 마당을 천천히 걷다 감나무 밑에 몽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자꾸만 감기던 몽이의 눈이 바깥으로 나오자 커지더니 하늘을 보고 귀 기울여 새소리를 듣는 듯했습니다.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도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던 몽이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갑자기 네발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지켜보던 남편이 밀어냈지만 저는 손을 휘저으며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깨끗한 걸 좋아했던 몽이를 위해 동백꽃을 꺽어 몽이 옆에 놔주었습니다. 남편도 저도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우리는 번갈아가며 눈물을 닦기 위해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간 딸아이는 왜 몽이가 이렇게 일찍 가야 하느냐며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몽아~ 잘가. 이제 가. 그동안 고마웠어. "



크리스마스에 쏟아지던 해가 구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흐린 하늘 밑에서 남편은 몽이를 묻을 마당의 흙을 깊이 팠습니다. 차마 종량제 봉투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릴수 없어서 집 마당에 묻어주기로 했습니다. 뻣뻣하게 굳은 몽이를 안고 구덩이에 뉘인 채 나뭇잎과 동백꽃으로 가리고 흙을 덮었습니다. 거실 창문으로 지켜보던 아이를 부둥켜 안고 아무말 없이 한참을 그렇게 울었습니다. 몽이를 묻는 남편도 지켜보는 아이도 그리고 저도 모두 가슴 한켠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습니다.

그렇게 몽이는 크리스마스에 우리를 떠나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안녕~ 몽!"




몽이가 떠난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몽이를 떠나보낸 우리는 '일상'이 주는 위안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시간'의 힘으로 치유를 받고, 몽이와의 '추억'으로 위로를 받으며, 매일의 '일상'에 기대어 서로를 의지했습니다.

몽이가 좋아했던 냉장고 앞에 앉아 글을 쓰며 몽이를 추억하고 아침과 저녁으로 마당 한켠 몽이가 묻힌 자리를 보며 인사를 나눕니다. 모두가 아는 말, 너무나 흔한 말, 하지만 언제나 진리인 말, '시간이 약'이 되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무 소리없는 방문에서 느껴지는 몽이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문을 열면 문 앞에서 두 앞발을 모으고 기지개를 켜던 몽이의 그림자를 지우고, 잠못드는 깊은 밤 항상 곁에서 얌전히 누워있던 몽이를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며 그 부드러운 털, 아플때조차도 한없이 부드러웠던 몽이의 그 털의 감촉을 손끝으로 느끼며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습니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눈이 쌓인 날에는 딸아이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어 몽이가 잠든 옆에 놓아주었습니다.

"엄마. 눈사람이 여기 있어서 몽이가 안 외로울거 같애."

"그래. 우리 몽이 안 외로울거야. 우리가 매일 같이 있잖아. "

제주도답게 내린 눈은 금방 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몽이가 묻혀있던 곳의 눈사람은 오래도록 몽이 곁을 지켰습니다.



"엄마, 밤에 몽이 꿈 궜어. 몽이가 꿈엔 어른 고양이가 됐어. 우리 몽이가 아닌줄 알았는데 몽이였어. 진짜 많이 컸더라. "

"그래? 몽이 큰 모습도 예뻤겠다. 왜 엄마 꿈엔 안 나오지?"

"엄마보다 나를 더 좋아하니까 그렇지. 오늘밤 꿈에도 또 나왔으면 좋겠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좀 틀어 줘. "

"엄마, 여기 게임에선 캐릭터가 죽어도 죽어도 또 살아나나 봐. 몽이도 이 게임처럼 다시 우리집에 오면 좋겠다."

몽이는 시도 때도 없이 우리에게 소환되어 다시 살아나곤 합니다. 기억속의 몽이는 언제나 웃고 있는 '행복한 고양이'입니다. 


영원히 기억할께. 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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