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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19. 2022

18. 공존은 힘들어

브런치북_다시, 제주

몽이의 죽음이후 우리는 어떤 동물이든 당분간은 키우지 않겠다 결심했습니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몽이 대신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몽이가 남긴 사료를 주고 한 놈씩 이름을 붙여주는 낙으로 사는 듯했습니다. 그런던 어느날 이번엔 우리집에 토끼가 나타났습니다. 


옆집에는 '미호'라 불리는 고양이가 한마리 있었는데 미호는 미니 호랑이의 줄임말로 성은 '구'로 그야말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낼 때는 구미호를 연상시키는 아이였습니다. 미호는 수많은 동네 길고양이중 한마리였으나 펜션을 운영하는 옆집 아저씨의 보살핌 속에 반은 집고양이가 되어 마당에는 '미호집'이란 이름도 선명하게 박힌 멋진 집도 가진 냥이었습니다. 길고양이들 중에서도 가장 근육질에 호피무늬를 한 미호는 화려한 과거를 자랑하듯 남다른 사냥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에선가 새끼 토끼를 물고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겨우 눈 뜬 새끼 토끼를 어디서 사냥해 왔는지 그해 봄에는 자그만치 여섯 마리를 연달아 집에 물고 온 바람에 옆집 아저씨는 불쌍한 새끼 토끼들을 방생해주느라 바쁘셨더랬습니다. 


그 중에 아주 까만 토끼가 우리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코너에 몰려 미호에게 죽을뻔한 이 아이를 목격한 딸아이 덕분에 목숨을 건진 까만 아기토끼는 '뭉치'란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까만 털뭉치 같다해서 '뭉치', 은근 사고치고 댕긴다 해서 사고뭉치의 '뭉치'입니다. 

그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당근을 먹으며 뭉치는 잘 자랐습니다. 제법 귀도 커지고 달리기도 빨리질 무렵 이번에는 아주아주 하얀 털을 가진 아기토끼가 왔습니다. 역시 미호가 물고 온 걸 옆집에서 뭉치와 같이 키워보라며 보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얀 토끼에게 '송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눈송이처럼 하얗다 해서 '송이'. 송이는 먼저 와 있던 뭉치와 바로 친구가 되었고 까맣고 하얀 둘은 사이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뭉치와 송이는 서로를 의지하며 무척 잘 지냈습니다. 같이 붙여놓으니 푸드 파이터들이 따로 없을 정도로 당근이며 배추며 정말 미친듯이 먹어댔습니다. 더불어 커피 알갱이 같던 똥 덩어리는 점점 커졌고 찔끔 싸대던 오줌의 양과 횟수도 늘어나 집안에 싸질러 놓은 그것들을 치우러 다니는 일도 만만치 않게 되었습니다. 

계속 거실에서 풀어놓고 키우기엔 어려울 것 같아 고민끝에 마당에 나무로 토끼집을 지었습니다. 얼기설기 지은 집 전면에는 철망을 끼우고 새로 지은 집에 두 마리를 옮겨 넣었습니다. 집안을 맘대로 돌아다니다 작은 공간에 갇힌 둘은 처음엔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몇번의 탈출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뭉치는 급격한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화난 것처럼 제가 가까이 가도 엉덩이만 보인채 외면했으며 그 큰 눈을 들어 원망하는 눈길을 보냈습니다. 

딸아이가 학교에 가고 없을땐 혼자 한라산 중반쯤 가서 놔주고 올까도 몇번이나 고민했습니다. 드넓은 평원에서 신선한 풀을 맘껏 뜯어먹으며 자유롭게 지내라 하고 싶었습니다. 봄에 고사리를 꺽으러 갔을때 봐 두었던 산록도로 중간 목장쯤이면 좋을듯 했습니다. 그곳엔 고양이도 개도 없이 풀 뜯어먹는 말들은 있었기에 같은 초식동물이니 얘네들을 헤치진 않을거고 말들이 싸대는 무지막지한 똥무더기만 피할수 있다면 이런저런 바위틈이나 굴 속에서 새끼치며 살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얘네들 보는 낙으로 살고 있는 딸아이를 생각하니 차마 저 혼자 행동으로 옮길순 없었습니다. 



뭉치의 죽음은 어느날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전날 변이 약간 묽다 싶었고 산책하라고 밖으로 꺼내줘도 평소답지 않게 움직이지 않기에 이상하다 하긴 했지만 그래도 풀을 먹고 배도 빵빵하길래 괜찮겠지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토끼장에 그대로 뻗은 채 발견된 뭉치를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 아침 제일 처음 발견한 딸아이는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했고 함께 있던 송이에게까지 무슨 변이 생길까 겁이 난 우리는 송이를 다시 집으로 들였습니다. 짖지도 울지도 않는 토끼라 송이가 슬퍼했는지까진 모르겠지만 다행히 남겨진 송이는 씩씩하게 잘 먹고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귀염둥이가 되어 지낸지 얼마 후, 새로운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노마'. '노마'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대형 유기견이었습니다. 



대문이 없는 우리집에 어느날 나타나 잔디밭 위에 앉아 있는 이 녀석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저였습니다. 시커멓고 커다란 개를 본 순간 그대로 얼음이 된 저는 집에 혼자 있었기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가라고 소리만 쳐댔습니다. 녀석은 도망가기는 커녕 저를 보곤 꼬리를 뱅글뱅글 돌리며 좋아했습니다. 긴장한채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나름 귀엽고 영리해 보였고 무엇보다 순해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잔디밭에서 안 나오려 하더니 먹다 남은 고기를 주자 금새 먹어치우곤 우리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이전부터 키우던 얘처럼 우리가 나타나면 가장 먼저 꼬리를 흔들며 마중나왔고 나갈 때면 백미러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차를 쫓아 한참을 달렸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우리에게 꼬리를 흔드는 것도 모자라 그 기다란 혀로 핥고 올라타며 좋아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당시는 정말 혼돈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고양이부터 토끼, 개까지. 우리집으로 모여든 아이들 모두 인연인가 싶었지만 대형견은 사실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준비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온지 모를 이노마라 해서 '노마'라 이름짓고 밥만 준지 며칠 후, 노마로 인해 동네에 문제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딱히 우리 개도 아니기에 그냥 밥만 주고 있었는데 목줄 없이 큰 개가 돌아다닌다고 놀란 원성들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지 멋대로 돌아다니는 통에 남의 밭에 들어가 농사지은 작물을 밟아 놓고 마당에 똥을 싸 놓아 주인의 역정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개가 아니라며 해명했지만 오해는 깊어졌습니다.  

매일매일 고기를 챙겨줄 수가 없어 큰 맘먹고 대형견 전용사료 포대를 사들고 온 날, 뿌듯해하며 사료를 노마 앞에 한 가득 퍼 놓았지만 노마는 시큰둥했습니다. 고기에 길들여진 까닭인지 통 먹으려 하지 않았고 동네 원성에 마지못해 목줄을 사다 묶어도 보았지만 그때부터 우울해 하며 앞발을 모으고 그대로 엎드려 고개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든, 토끼든, 개든 가두고 묶어두는게 저는 참 싫었습니다. 여기가 정글이 아니고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곳이니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면 묶고 가둘 수밖에 없겠지만 사람인 우리도 언제나 자유를 꿈꾸듯 얘들도 그런 것들이 답답하고 슬퍼보였습니다. 고민 끝에 노마의 목줄을 풀어줬습니다. 이쯤되면 저도 여기가 있을 곳이 못 된다 판단하고 떠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차마 이 손으로 유기견 센터에 보낼 수는 없기에 그냥 알아서 우리집에서 나가줬으면 했습니다. 유기견 센터에 보내지는 순간 대형견들은 대부분 세달을 넘기지 못하고 안락사 수순을 밟게 되는걸 알기 때문에 저를 받아주고 잘 키워줄 수 있는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했습니다. 


사건은 그때 일어났습니다. 노마의 목줄을 풀어줌과 동시에 잠시 풀 뜯어 먹으라고 꺼내놓은 송이를 보자마자 노마는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말렸지만 이미 노마는 그 긴 혀를 날름거리며 거침없이 두툼한 앞발로 송이를 덮쳤습니다. 작고 빠르지만 역시나 송이는 약한 아기토끼였고 노마는 커도 빠른 육식동물이었습니다. '깽' 소리와 함께 코너에 몰린 송이를 겨우 구출하고 보드라운 송이 털을 어루만지자 손 안에서 빠르게 뛰는 송이의 심장소리가 전해졌습니다. 송이의 심장이 이대로 터져 죽어버리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순간 노마에 대한 분노가 차올라 근처에 있는 돌맹이를 집어던지며 가버리라고 소리쳤습니다. 

본능에 따랐던 노마는 저의 포효에 겁을 집어먹고 도망갔고 송이는 잠시 후 안정을 찾았지만, 이후로 노마는 저에겐 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침 옆집 고양이 '미호'마저 노마의 출현 이후로 겁에 질려 자기 집에도 오지 못하고 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며칠만에 나타난 미호는 노마를 어찌나 두려워하는지 작은 소리에도 우리집 쪽만 바라보며 잘 먹지도 못해 야위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노마의 출현과 함께 온갖 문제들이 터졌고 우리는 어렵지만 노마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딸아이에겐 슬픈 소식이었지만 동네 민원의 온상이 될순 없었기에 또한 이집은 우리집이 아닌 임대였고 대형견을 키우려면 집주인의 허락도 받아야 했기에 어쩔수 없이 아이에게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딸아이는 고개를 돌리며 제 눈을 피했습니다. 모진 엄마라고 생각하는게 뻔히 보였지만 누군가는 이 혼돈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만 했고 결국 그것은 저여야만 했습니다. 이후로 노마는 여전히 동네를 떠돌며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이 집 저집에서 나가라고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밤이 되면 우리집 주변을 배회했습니다. 한밤 중에 찾아오는 것까지 말릴수는 없었던 그 밤에 사건은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노마는 다시 우리 집을 찾았고 빛나는 달빛 속에서 송이가 있는 토끼장을 보았을 것입니다. 허술한 철망 한쪽을 앞발로 당기고 밀어 뜯어내다시피 하자 놀란 송이는 나와 도망쳤고 뒤쫓은 노마는 송이를 잡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다음 날 아침에 우리가 목격한 건 마당 한가운데 널부러져 죽어있는 송이의 사체였습니다. 현관 앞에는 노마가 엎드려 우리를 보며 반갑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송이는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처절하게 뜯겨진 토끼장만이 그밤의 사건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


남편은 몽이, 뭉치에 이어 송이까지 세번이나 삽으로 땅을 팠습니다. 나란히 묻힌 자리를 보며 가슴 한켠이 아파왔습니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노마를 보자 화가 나 내쫓으면서도 또 맘이 아팠습니다. 노마는 나름대로 본능이었을 거고 한 집에 토끼와 개가 함께 지낼 수는 없었던 거였겠지 싶으면서도 더 작고 연약했던 송이에게 더 큰 연민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후 노마는 같은 동네에서 대형견을 키우던 이웃분이 거두어 입양하셨습니다. 깨끗히 목욕하고 털까지 깍아 단정해진 노마를 보러 간 날, 노마는 이제 자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안다는 듯 우리를 보고도 못본척 외면했습니다. 가끔 아침 산책길에 마주치기도 했지만, 주인만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쫓아 걷는 노마가 행복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우리를 여전히 외면하는 걸 볼 때면 그때의 그 아이가 맞나 싶기도 했습니다.  

토끼나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 내 돈주고 사 오는 일은 이곳 제주에선 없었습니다. 여기선 충분히 새끼 고양이나 아기토끼를 우연하게도 키울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인연처럼 저희에게 왔지만 바람처럼 떠나버린 후 그 순응의 체계를 받아들이기까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한때나마 내 품에서 행복했기를 그곳에선 모두 모두 평안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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