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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19. 2022

19. 어머니와 고사리

브런치북_다시, 제주

'고사리, 고사리, 제주 고사리'

강원도 춘천에 사시는 친정엄마의 이 주문과도 같은 외침을 저는 재입도한 해부터 틈만 나면 들어왔습니다. 올 겨울, 제주도로 다시 이사한 딸네 집에 첫 방문하신 엄마는 아직 여물지도 않은 고사리를 찾아 드라이브하는 내내 두 눈이 분주했습니다. 조금만 한적한 도로로 접어들면 이내,

"여기 고사리 많겠네. 아이구. 고사리 자라기 딱 좋겠다."

방금 지나쳐 온 길가의 현수막을 뒤돌아보며,

"뭐야? 고사리가 벌써 나온거야? 차 다시 돌려봐라. 고사리라고 써 있네."

봄도 되기 전 그럴리가 없음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되돌아가 확인한 현수막의 글씨는

'제주 고사리와 흑돼지의 만남, 흑돼지 고사리 구이'라는 식당의 홍보용 글이었습니다. 


아빠 퇴직후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 살고 계신 전원생활 15년차의 엄마는 바쁜 시골생활 중에도 봄이면 산에 올라 고사리를 꺽고 말렸습니다. 그렇게 말린 고사리를 주위분들에게 팔면 제법 부수입으로는 쏠쏠했던가 보았습니다. 더불어 농한기인 한겨울 동안 튼실하게 오른 엄마의 살들은 봄이 되어 고사리를 꺽느라 오르내리는 산행에 봄눈 녹듯 사라지곤 했기에 고사리 반찬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저는 '우리 엄마의 살들을 정돈시켜주는 고마운 나물' 정도로 고사리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제주도 고사리가 그렇게 맛있다더라, 제주도에는 고사리가 지천이라더라'하는 정보가 들어간 것입니다. 마침 사고뭉치 막내딸이 제주도로 살러 갔겠다, 엄마의 이번 봄은 가열찬 고사리 채취의 의지로 추운 겨울부터 전열이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봄이 되었습니다. 집마당뿐만 아니라 조금만 나가도 제주는 온 사방이 꽃이었습니다. 나무에도 꽃, 땅에도 꽃. 벚꽃부터 유채, 매화를 넘어 이름모를 숱한 꽃들에 취해 헤롱거리고 있는 제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고사리 많이 나는 곳은 알아놨어?"

"네에?"

"엄마 여기 일 끝나면 바로 갈거니까 잘 알아놔. 사람들 많이 안 가는 곳으로"

전화를 끊는 제 손이 떨려왔습니다. 가뜩이나 빈약한 습자지 같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고사리 포인트 찾기'에 돌입했습니다.

"oo엄마, 자기 고사리 꺽으러 갔었다 했지? 어디로 가면 돼?"

"oo언니, 지난번 고사리 많다던 곳이 어디죠? 서귀포였나?"

어쩌다 얼굴 마주치면 목례 정도만 하는 뒷집 아주머니에게도 절박한 심정으로 물어봅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근처에 고사리 많이 나는 곳 아세요?"

관심없던 남편까지 가세하여 운전하며 좌우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저기, 저 곳 아닐까? 딱 고사리 많게 생겼잖아. 야. 근데 고사리가 음지에서 자라냐? 양지에서 자라냐?"

"....."


엄마가 오시기로 한 전날, 커다란 박스가 택배로 배달되어 왔습니다. 

"이게 뭐지? 나 인터넷으로 시킨 거 없는데?"

커다란 박스에는 지난번 다녀가실 때 마땅히 덮을 이불이 없다며 남는 이불을 보내시겠다던 엄마의 솜이불과 함께 커다란 배낭이 들어있었습니다. 배낭 안에는 장갑과 고사리 앞치마, 팔 토시와 목에 두르는 수건, 그리고 햇빛을 가릴수 있는 챙 넓은 모자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고사리 채취에 필요한 장비를 먼저 택배로 보내고 엄마는 다음날 도착했습니다. 육지에서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오느라 저녁 늦게 도착한 엄마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 무섭게 채근을 시작하셨습니다.

"알아놨어? 고사리는 아침 일찍 가야 해. 뜨거워지기 전에 꺽어야지."

"우선 가까운 곳부터 가 보실래요? 근처에 한 곳은 내가 엄마 온대서 다른 엄마랑 한번 가봤어."

"그래? 그럼 첫날이니까 가까운 곳부터."

올때 끌고 온 캐리어에서 꺼낸 건 목이 긴 장화였습니다. 엄마꺼와 내꺼.

고사리 베테랑인 엄마의 조언대로 장화를 신고 고사리 앞치마를 두르고 배낭을 맸습니다. 장화 안에는 두개의 양말을 신었고 팔까지 오는 토시를 꼈으며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모자를 쓴 후 귀밑으로 내려 턱밑에서 끈을 맸습니다. 커다란 배낭을 매고 두툼한 장갑을 꼈습니다. 


집에서 오분도 채 걸리지 않는 산이랄 것도 없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둘은 가열차게 걸어갔습니다. 둔턱을 넘자 양지바른 곳에 펼쳐진 얕은 구릉의 고사리 밭이 나타났습니다. 엄마는 입구에서부터 활짝 핀 고사리들을 보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야, 이것 좀 봐라. 벌써 이렇게 펴 버렸네. 아이구, 진작 왔어야 하는걸."

활짝 핀 고사리 옆으로 삐죽 나오고 있는 아기 고사리들이 보였습니다. 엄마는 입구에서부터 파이터로 돌변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양손으로 빠르게 눈앞에 보이는 아기 고사리들을 꺽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뭐 좀 보일까 하며 제자리에서 눈만 굴리고 있는 나와는 달리 어느새 엄마는 4배속의 빠르기로 주변을 훑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엄마와 딸은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말없이 고사리만 꺽었습니다. 반복되는 움직임과 내리쬐는 햇빛으로 힘들어질 무렵 허리를 펴고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엄마, 어때? 이 정도면 되겠어? 여기 많지?"

"야, 여긴 퍼진 고사리야. 크고 두꺼워야 꺽는 재미가 있지. 이거 말고 그런 건 없어?"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하실 줄 알고 뿌듯해했던 저는 좌절했습니다.


다음 날, 말로만 듣던 한라산 중산간 도로에 도전했습니다. 

"언니, 그냥 산록도로 달리다 보면 길가에 차 많이 서 있는데 있어. 거기로 그냥 들어가. " 

막내딸 친구 엄마에게 미리 알아둔 정보를 되새기며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을 일이었지만 옆에 있는 엄마를 보면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새벽부터 일어나 집에 있는 빵과 물을 챙겨들고 고사리 의복으로 환복한 후 한라산으로 향했습니다. 

산록도로로 접어들어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드디어 길가에 급하게 주차해둔 차들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주차된 차들과 그 위로 펼쳐진 언덕을 재빨리 스캔하며 고사리 포인트를 어림잡아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웠습니다. 모자끈을 다시 질끈 동여매고 마음 급한 엄마가 앞장을 섰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를 몰라 보이는 가시 철조망의 틈을 벌리고 낮은 포복으로 진입에 성공했을 땐 생전 가보지 않은 군대를 사십 넘어 다시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언덕 사이사이로 이제는 내 눈에도 구분이 되는 고사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엄마는 입구에서부터 양손의 신공을 발휘하더니 순식간에 3배속의 빠르기로 주변을 훑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곳도 고사리가 작았습니다. 많긴 한데 길이가 잘아 역시나 이곳도 엄마를 만족시킬수 없는건가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드는 그 때, 우리 곂으로 누가 봐도 고사리 베테랑의 모습을 한 두 명의 여인이 몸도 가볍게 걸어갔습니다. 

"고사리 꺽으러 가시나 봐요? 여기분이신 거 같은데 어디 가면 큰 고사리가 많아요?"

특유의 나긋나긋하면서도 집요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엄마는 물었습니다.

"아휴. 여기가 다 고사리죠 뭐. 특별히 큰 고사리라고 있나요? 여기 덤불 같은데 보시면 좀 굵은 것들 보여요."

"그럼, 두 분은 어디 가시는 거예요?"

순간 저는 당황한 두 분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저희는 그냥 저어기 위에. 저기로 일이 있어서 가는 거라."

발걸음을 재촉하는 두 분 뒤로 우리 모녀는 음흉한 눈빛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몸을 사려가며 급히 뒤를 쫓았지만 거침없이 오르던 그들은 어느새 어두운 숲속을 헤치고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더 위는 힘들겠다. 우리는 여기서 하자."

위에서 내려다보니 도로옆 입구에는 고사리를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울긋불긋 보였습니다. 

"야, 저기는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곳이었어. 프로들은 저런데껀 보지도 않는구먼. "

역시 위로 올라올수록 두께와 길이가 달랐습니다. 다만, 그만큼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눈앞에 너무도 쉽게 펼쳐진 것들은 작고 볼품없고, 좀더 가치있는 것들은 가시덤불을 헤치고 산을 오르고 매의 눈으로 찾아야 보였습니다. 역시나 소중한 것들은 쉽게 내어주지 않는 게 세상의 이치였습니다. 


'이게 뭐 별거라고, 고사리가 다 거기서 거기지. 말려놓고 볶아놓고 입에 들어가면 다 그게 그거지.' 하던 저도 며칠째 꺽다 보니 상품이 뭔지 감이 왔습니다. 덤불을 헤치고 그늘진 곳에 숨어있는 키 큰 아이가 마주보며 까꿍할 때 느껴지는 희열, 짙은 갈색의 긴 줄기에도 부드럽게 꺽이는 그 느낌. 

'아~ 심.봤.다.' 

욕심만 많아서 그렇게 많은 고사리에도 만족할 줄 모른다며 한껏 구박했던 엄마의 '고사리 꺽는 재미', 그 재미를 저도 이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엄마가 와 계신 일주일 동안 아침마다 한라산 등성이를 오르며 고사리를 꺽었습니다. 강원도에 비하면 이건 뭐 껌이라는 엄마의 얘기처럼 제주도에는 한라산이 있었고 한라산의 품은 넓었으며 그 품만큼이나 고사리는 넉넉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갈 때나 날이 궂어 조금 늦게 도착한 날이면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의 행렬부터 맘이 급해 불안해하는 엄마를 보며 이제 제주도민이 된 딸은 말했습니다. 

"진정해 엄마. 고사리는 많고 앞 사람이 꺽고 가도 뒷사람에게 먹을 만큼은 남겨 놓는대요. 엄마 몫은 다 있으니 걱정을 마세요."


그랬습니다. 너무 많은 욕심은 금물.

엄마가 와 계신 일주일 동안 제주날씨답게 일기예보 따윈 아랑곳없이 날이 오락가락했습니다. 해가 났다가도 구름이 몰려왔고, 안개가 덮여 한치 앞이 안 보이다가도 금새 하늘이 개고 햇빛이 따갑게 내리쬐기도 했습니다. 방심했던 엄마가 당황할 만큼 짙은 안개 때문에 엄마는 산에서 길을 잃을 뻔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제주도였습니다. 기다리면 되었습니다. 기다리다 보면 구름이 물러가고 파란 하늘이 나오고, 흩뿌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나고, 몰려오던 안개가 지나고 다시 개었습니다. 

조금 작은 고사리는 어렵지 않게 온 사방에 뿌려져 있었고 크고 여문 아이들은 덤불을 헤치고 숨어 있었으며 한 곳에서 대여섯개의 실한 아이들을 정신없이 꺽다보면 여지없이 가시덩쿨이 모자를 잡아끌며 '그만, 나머진 욕심이야'라고 소리없이 타박을 주었고 먹을만큼만 혹은 팔수 있을만큼만 욕심내지 말고 무리하지 말라 조용히 일러주었습니다.


사월의 제주도는 고사리로 뜨거웠고 육지로 돌아가며 엄마는 제게 고사리 앞치마와 장화, 장갑과 배낭을 전리품으로 남겼습니다. 가기 전날까지도 오락가락했던 날씨로 결국 데친 고사리를 냉동하여 택배로 보내고 비행기에 오른 엄마는 도착후 나눈 통화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야. 여기 오니까 날이 쨍하니 살 거 같다. 거기 날씨는 왜 그러냐? 고사리 여기서 받자마자 잘 말리고 있다. 다 좋은데 그래도 고사리는 거기가 많긴  많더라. 좀더 꺽고 올걸 그랬어. 공항에서 두 노인네를 만났는데 세상에 그치들은 고사리를 열근이나 말려서 왔대지 모냐? 담부터는 아침 일찍 가서 하루종일 꺽어야겠어. 담부터는 주먹밥을 싸라. 물은 안되겠더라. 물은 마시면 자꾸 목말라서 안돼. 막걸리를 가져가야 돼. 막걸리는...."

끝이 없는 엄마의 고사리 이야기. 

'엄마, 내년에는 내가 꼭 고사리 포인트 많이 알아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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