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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19. 2022

16. 수국이 피면 장마가 온대요.

브런치북_다시, 제주

큰언니는 수국을 참 좋아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제주로 재입도하고 난후 제주에 한번 다녀가라는 말에 언제부턴가 큰언니는 수국철이 되면 가겠노라 말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사는 일은 바빠 다른 나라도 아닌 비행기 타면 한시간도 안되어 도착할 수 있는 곳임에도 육지의 가족들이 우리를 찾는 건 일년에 한번도 어렵습니다. 그저 동백꽃이 피고지고 벚꽃이 피고지고 유채꽃이 피고질때마다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라도 전하는 것이 제주에 사는 제가 하는 인사가 되었습니다. 비록 이곳에서 함께 감상하진 못해도 삭막한 도시생활에 잠시나마 힐링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동생의 마음입니다.  


칠년전, 첫 제주살이때 우리는 지금의 서쪽이 아닌 제주의 동쪽에 살았었습니다. 

그곳에선 함덕 바다가 가까웠고 김녕부터 월정리, 종달리에 이르는 해안도로가 우리의 단골 드라이브 코스였습니다. 제주 동쪽 해안도로를 달릴때면 이름모를 꽃들이 계절마다 달리 피었고 여름이 오는 길목에선 함지박만한 수국길이 이어졌습니다. 

"수국이 피면 장마가 온대요."

제주살이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생은 종달리 수국길을 알려주며 제게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제게 수국은 '장마가 오기전에 꼭 봐야할 꽃'이 되었습니다. 


육지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수국을 가끔 봤었습니다. 아름다운데 탐스럽게 크기까지 한 수국은 팝콘 같기도 하고 어여쁜 신부의 부케같기도 했습니다. 제주에 와서 본 수국은 육지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탐스러웠으며 더 신비롭고 우아했습니다.

제주의 수국은 동서남북을 괘념치 않고 곳곳에 핍니다. 제주 서쪽에 살고 있는 지금, 남편과 하는 아침산책길에선 오월부터 유월까지 동네 집집의 수국을 봅니다. 집집마다 많던 적던 수국이 심어져 있고 뿌리내린 수국은 더없이 건강하고 탐스런 자태를 뽐내며 화려함의 절정을 향해 달립니다. 한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그 빛깔은 어쩜 그리도 다 다른지 하루가 다르게 진해졌다가 바래지기도 하고 옅어졌다가 다시 선명해지기도 합니다. 산책길에서 우리는 제대로 길을 걸을 수가 없습니다. 곳곳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수국들에 발목이 잡혀 멈춰선 채로 일일이 들여다보고 감탄하고 탄성을 내지르며 어루만진 후에야 걸음을 뗄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고운 자태를 맘껏 뽐내고 주렁주렁 탐스러움을 매단 수국에 취해 있는 동안 어느새 장마 소식이 들려옵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수국들도 어느새 그 고운 빛깔이 조금씩 바래지고 꽃잎을 떨구기 시작합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우리네 한때의 젊음이 물러나듯 참으로 화려하고 풍성했던 꽃들도 조용히 황혼을 향해 접어들 준비를 합니다. 장마가 가고나면 이제 본격적인 한여름 더위가 시작될 것이고 뜨거운 여름이 가고 나면 높은 가을이 오겠죠. 꽃은 지겠지만 제주의 여름을 알리는 수국은 제 맘속에 흐트러짐 없는 곱고 화려한 모습으로 담길 것입니다. 영원히 기억될 우리네 젊음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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