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
"얼굴을 잃어버렸어요. 같이 찾아주세요."
처음 그녀를 봤을 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 얼굴을 잃어버렸다고? 그럼, 내가 보고 있는 당신의 얼굴은? 그녀는 두 손으로 양 볼을 감싸 안고 날 바라봤어. 하얗게 질린 얼굴에 눈물을 머금은 검은 눈동자가 물결에 흔들리고 있더군.
"어디서 잃어버리신 건지, 기억나는 마지막 장소가 어디세요?"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 노력했어. 불안에 떠는 사람에게는 차분하고 다정한 말투로 얘기하는 게 필요해. 말투로서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거든.
"여기 오는 길에 잃어버린 건 아니지만... 선생님이라면, 제가 잃어버린 얼굴을 발견하게 해 주실 것 같아요."
테이블에 앉은 하얀 얼굴의 여자는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도 추운 나라에 있는 것처럼 몸을 계속 떨고 있었어. 내 사무실은 항상 훈기가 도는 편인데 말이야. 참고로 난 반팔을 입고 있었어.
"얼마 전에 몇 년간 다닌 회사를 퇴사했어요. 퇴사한 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너무 두꺼운 가면이 제 얼굴에 들러붙어 있는 거예요. 회사에서 근무한 만큼 두꺼워진 거겠죠. 그 가면을 떼려고 하는데, 어찌나 힘든지...... 인터넷을 보니깐 클렌징 오일을 바르면 좀 잘 떼진다 해서 오일을 발라 겨우 겨우 떼냈어요. 얼굴이 너무 가볍더라고요. 가벼워진 마음인지 허탈한 마음인지 당시에 잘 구분은 안 갔지만, 어쨌든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깊은 잠을 들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 제 얼굴이 어디 갔는지 없는 거예요."
"예전에도 얼굴을 잃어버리신 적이 있으세요?"
"아뇨. 아니, 아니. 예전에, 아주 옛날에 아주 잠시 잃어버린 적은 있지만, 바로 찾았어요. 이번에도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혹시 가끔 들리던 카페에 놓고 온 건가 싶어서 몇 군데 가보고... 나중에는 서울역에도 가봤어요. 거긴 저처럼 뭔가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잖아요. 밤까지 돌아다니다가...밤이어서 그런지 서울역 안에 앉아있는 노숙자 아저씨랑 눈이 마주쳤는데...... 그 아저씨는 너무 오랫동안 얼굴을 잃어버려서 이제는 포기한 것 같았어요. 저도 그러면 어떡하죠?"
불안한 말투와 다르게 그녀의 얼굴에는 표정이랄 게 없다는 걸 알게됐어. 아, 이거구나. 얼굴을 잃어버렸다는 게.
"그럼, 말씀하신 예전과 최근이 다른 게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아... 예전에는 오랫동안 가면을 쓰고 있었던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업무의 특성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 아주 오래 가면을 쓰고 있었고, 심지어 집에 와서도 가면을 벗지 않고 다음날 출근한 적도 많아요."
"그렇군요. 그 가면은 어떤 가면인가요?"
"무해한 무표정이요."
그녀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 그때 내가 본 그녀의 얼굴이 딱 그런 표정이었거든. 그리고 보통 웃는 가면을 택할 텐데, 그녀는 왜 무표정을 택했을까? 그것도 무해한 무표정.
"왜 무해한 무표정을 가면으로 쓰고 다니셨죠?"
"저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질문이 많은데... 사회생활에서는 그러면 안 되잖아요. 고객에게 권하면서도 거절받는 것에 대해 괜찮아해야 하고, 한 번 정도는 질문을 할 수 있어도 그 이상 질문을 하게 되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받거나 귀찮아하니깐요. 그래서 적당히 상대를 언짢게 안 할 정도의 무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그게 무해한 무표정이에요."
"가면은 어디서 구매한 건가요, 아니면..."
"제가 만들었어요. 제가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처음에는 너무 가면인 거 티 나게 활짝 웃고 있는 얼굴로 만들었는데, 오, 보는 사람도 어색하고, 저도 어색하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번 수정하면서 저에게 최적의 가면을 만들었죠."
"가면을 만든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약간 미소를 지으셨어요. 어떤 감정일까요?"
"제가 웃었다고요?"
순간,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날카롭게 스쳐 지나갔어. 얼굴에 미소 다음으로 표정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지. 아이보리처럼 아주 옅긴 하지만.
"전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요. 이것저것 손으로 만들다 보면 제가 있는 이곳이 아주 조금 견딜 만 해져요."
"이곳을 견딘다... 이곳은 당신에게 어떤 곳인가요?"
그녀는 한참 말이 없었어.
"... 답답하다고 해야 하나, 숨 쉬기가 어려운 곳이에요. 말을 많이 해도, 가만히 있어도."
"말을 많이 해도, 가만히 있어도 숨 쉬기 어려운 건 매일 그런가요? 아니었던 때가 혹시 생각난다면, 언제인가요?"
"아...."
그녀는 고개를 사선으로 내리면서 생각에 빠졌어. 나는 그녀가 적당한 언어를 고르는 동안 충분히 기다려 주기로 했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네."
"... 가끔 식물이나 물고기와 얘기할 때가 있었어요. 그러면 숨이 뻥 뚫렸어요."
그녀가 울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눈물을 한 방울 또르륵 흘리더니, 어느 순간 댐이 붕괴되듯 눈물을 흘렸어.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얼굴에 숨어있는 근육이 점점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녀의 얼굴 아래에 지렁이가 있는 것처럼 움직이다가 종이처럼 구겨지는 것 같았어. 그녀의 얼굴은 이제 아이보리가 아니라, 빨갛게 변했지. 얼굴을 찌푸리고 아이처럼 목놓아 서럽게 우는 거야.
"제가 왜 얼굴을 잃어버렸는지 알겠어요."
그녀는 눈물이 그치지 않은 상태에서 숨을 헐떡이면서 말을 이어갔어.
"이곳에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제가 누구인지 까먹었어요. 저는 바다로 가야 해요."
마지막으로, 그녀의 결심이 무색해지지 않게 함께 상상해보기로 했어.
"가고 싶은 바다로 한 번 가볼까요? 그 바다의 느낌 어떤가요?"
"물이 맑고, 투명하고, 햇빛이 물속에까지 들어와서 참 밝아요. 제 옆에 물고기, 아니, 친구들이 같이 헤엄치고 있어요."
"오, 친구들과 함께 수영하고 있군요."
"더 이상 외롭지도 않고 숨 쉬기가 어렵지도 않아요. 하아아."
그녀는 크게 하품을 한 번 했어.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어.
"이제 정말 편해요."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주변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다가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였는지 잊게 되지. 나는 얼굴을 잃어버린 그분과 '잃어버림'에 대해 집중적으로 대화하면서 그녀가 스스로 자신이 누구였는지 알게 도왔지. (돕기만 한 거야. 그녀가 스스로 깨달은 거지.) 앞으로 네가 얼굴을 잃은 사람을 만나거나 네가 얼굴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줄게. 삭막한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충격 완화가 될 쿠션들이야.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면 더 좋고,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해야 해. 잠자는 시간은 당연히 7시간 이상 되어야 하고, 피곤하더라도 가면은 벗고 자야지. 퇴근하고 자기 전까지 10분 정도는 가면을 벗는, 일종의 '의식(ritual)'이 필요해. 명상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명상이 어려울 정도로 불안이 강하다면 이 방법을 써봐. 가만히 오른팔(맨살) 위에 왼 손가락으로 쓰다듬어줘. 처음에는 네 손가락 다 써도 좋고, 그다음에 세 손가락, 두 손가락, 나중엔 한 손가락으로 오른팔을 쓰다듬으면서 그 감각에 집중해 봐. 그다음엔 반대로 해봐. 그것만으로도 현재성의 감각을 살릴 수 있어. 한 손가락으로 팔을 쓰다듬을 때 가운데 손가락을 이용하면, 더 좋아. (풉! 너도 잠깐 웃었길 바랄게.)
회사에서 써야 하는 가면이 점점 두꺼워진다면, 한 번 멈춰서 생각할 필요가 있어. 그러다 오늘의 '그녀'처럼 얼굴을 잃어버릴 수가 있거든. 다시 말하자면, 네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할 필요가 없어. 만약 그러기를 강요한다면, 거긴 네가 오래 머물 공간이 아니라는 거 아닐까? 마치 인어(아니면, 고래?)가 육지에 살면서 계속 고통을 받는 것과 같아. 결국 네가 어디서 왔는지 몰라서 얼굴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Get away!
찾는 과정 속에 너만의 해답을 찾아갈 거야. 매번 그럴듯한 답을 얻진 못하더라도, 때로는 불쾌하거나 슬픈 경험(오래 얼굴을 잃은 아저씨)을 하더라도 괜찮아. 그 찾는 여정 속에서 네가 성장하고 널 도와줄 사람을 만날 거야. 그때가 딱 언제다, 말할 순 없지만, 그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건 말할 수 있어. 찾는 여정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너의 해답은 안갯속에 영원히 가려져 있을지도 몰라.
오늘 두 번째 [마음관찰자를 위한 심리학 쿠션]은 어땠어? 댓글로 알려줘. 쿠션은 사례를 함께 다루려 하는데, 사례로 다루는 건 내가 선임 마음관찰자로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야. 아마 너도 마음관찰자로서 더 훈련을 받다보면,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이 너에게 찾아가겠지. 그때까지 나는 너에게 쓰는 편지를 멈추지 않을 거야.
다음 편지는 마음관찰자들이 활동하면서 알아두면 좋은 심리학자들을 흥미 위주로 소개하면서 심리학 이론의 흐름까지 함께 살펴보려 해. 정확하지만 재밌게 전달하는 게 핵심이라, 내 영혼을 조금 갈아넣을 거야. 편지에 내 영혼이 가루가 되어 묻어있을 거니, 손으로 털어내지 말고 편지지와 함께 편지 봉투에 다시 잘 넣어다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