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라는 이름은 한 여인에게서 비롯됐지
네가 심리학과에는 싸이코들만 있는 거냐고 물어봤잖아. 차마 그 말이 틀렸다고는 하지 못하겠어. 심리학과에 가면, 교수부터 학생까지 통계에서의 정상 분포에 벗어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거든. '예외'들이 모인 곳 같달까. 그런 예외들이 대체 난 왜 이런 거야, 하면서 이유를 찾아오는 곳이 심리학과야. 다만 심리학과에 오는 사람들은 위로받으려 하기보다는, 자신보다 먼저 연구한 '예외'들의 학문적 성과를 통해 그 이유를 찾으려 온다고 보면 돼. 만약 예술적 감성이 있어 자신의 예외성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예술 관련학과에 갔겠지만, 심리학과에 온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 MBTI의 T들이 모인다고 보면 돼. (그렇다면, F가 없다는 건 아니고... 뭔 말인지 알지?)
그러나 네가 말한 '싸이코'라는 표현이 '미친'의 뜻을 담은 거라면, 심리학과는 싸이코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야. 싸이코를 포함하여 사람을 깊게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보면 돼.
[마음관찰잘자를 위한 심리학 쿠션]의 첫 번째 글은 심리학의 영어 표현 Psychology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알려주려 해. 대체 Psychology가 뭐길래, 어떤 뜻을 담고 있고, 심리학자는 어떤 사람인지 함께 살펴보자.
그 설명을 대신해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게.
사랑의 신, 에로스 알지? 아마 에로스를 등에 날개가 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니? 천진난만한 에로스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쏘아서 사랑에 빠뜨리곤 했지. 우리는 영문을 모른 채로 예기치 않게 갑자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가 있는데, 어쩔 때에는 이전의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상대를 사랑할 때도 많아. 그럴 때 에로스의 화살을 맞았다고들 하지. 에로스가 얼마나 장난꾸러기였는지 몰라.
그런 에로스가 가장 믿고 따르는 사람은 바로 엄마, 아프로디테였어. 아프로디테는 비너스로도 불리는데, 어떤 신인지 알지? 아름다움의 신이잖아. 아름다움이라면, 아프로디테가 '나야, 나'하는 거지. 그런데 어느 날 아프로디테가 기분 나쁜 소문을 듣게 돼.
"아름다움의 신, 아프로디테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열받지만, 욱하기 전에 조금만 더 들어봤어.
"그 아름다운 사람은 프시케다."
드디어 욱한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집으로 소환해, 넋두리를 했어. 가만 듣지 하니, 효자인 에로스도 같이 열이 받는 거야. '우리 엄마를 이렇게 기분 나쁘게 하다니!'
에로스가 엄마 아프로디테에게 말했어.
"엄마, 제가 그 프시케를 골탕 먹일게요!"
에로스는 그 길로 자신의 장비인 화살을 챙겨 프시케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어. 프시케가 아주 못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하려고 했지. 프시케를 확인하자마자 에로스는 자신의 활을 들어 활시위를 탱탱하게 잡아당겼어. 그런데 실수로 활촉에 자신의 손이 박힌 거야.
아, 이런.
에로스는 프시케를 사랑하게 되었어.
하지만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에로스는 효자였단 말이야. 효자인 에로스가 엄마 아프로디테의 말을 거역하진 못하겠고, 그렇다고 사랑하는 프시케와 함께 할 수도 없고.
와.. 에로스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에로스는 더 이상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어. 사랑의 고통 끝에 에로스는 청년으로 성숙해졌고, 엄마를 거역하지 않으면서 프시케를 사랑할 방법을 찾았어.
맞아, 납치야.
그리스 신화에선 여차하면 납치를 하지.
에로스는 자정이 넘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프시케를 납치해 성 꼭대기에 가뒀어. 그리고 자신의 모습은 숨긴 채 프시케에게 말해.
"이제 네가 내 아내고, 나는 너의 신랑이다."
그리고 하룻밤을 보내.
어머, 어머. 근데 프시케도 썩 나쁘진 않았나 봐. 자신의 결혼을 받아들이기도 했거든.
그렇게 매일 밤마다 에로스는 자신을 숨긴 채 어둠 속에서만 프시케를 찾아와.
얼굴을 숨긴 신랑은 자신의 아내 프시케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려 하지 말라고 했어.
"만약 내 얼굴을 보려 한다면, 우린 헤어지는 거다."
프시케는 성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남편이 또 자기에게 부족함 없이 챙겨주는 게 좋았어.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이 성에 놀러 와 그러는 거야.
"야, 네 남편이 괴물이면 어쩌려고 그렇게 맘 편하게 여기 있는 거야?"
친구들의 말을 듣는 순간, 프시케의 가슴이 두근두근하더라고. 그래서 친구들이 왔다간 그날 밤에는 결심을 했어. 자신의 신랑을 확인하기로. (괴물이면, 도망가겠다는 거겠지.)
그래서 아주 컴컴한 어둠 속에서 신랑이 쌔근쌔근 깊은 숨을 내쉬며 자고 있을 때, 등잔을 밝혀 신랑의 얼굴을 확인해 봤어.
와우, 완전 훈남이네! 럭키프시케잖아!
프시케는 자신의 신랑이 사랑의 신 에로스인 걸 확인하자마자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애써 참았어. 그런데!
그림에서 보이다시피 옛날 등잔은 기름등잔이라고 기름을 채워서 쓰는 건데, 프시케가 에로스를 확인하려 저 기름등잔을 에로스에게 너무 가까이 가져간 나머지, 아주 뜨거운 기름 한 방울이 에로스의 몸에 떨어진 거야. (거기다 벗고 있었으니, 맨살에 얼마나 뜨거웠겠어.)
에로스는 잠에서 깨어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프시케에게 화를 쏟아냈어.
"어떻게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가 있는 거냐?!"
에로스는 옷을 차려입고 날개를 펼쳐 그 길로 프시케를 떠났어.
"다신 널 만나지 않겠다." 며, 송곳 같은 말도 내뱉었지.
여기가 에로스의 프시케의 마지막은 아니지만, 일단 이 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할게.
심리학과 심리학자에 대해 말하겠다면서 왜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를 꺼냈는지 궁금하지? 네가 눈치가 엄청 빠르다면, 이미 알아챘을 거야.
프시케는 라틴어로 ψυχή, 영어로는 Psyche가 되지. 프시케는 '호기심, '마음', '정신', '영혼'을 뜻해. 그래서 심리학은 프시케 Psyche에 학문, 논리를 뜻하는 logos를 합쳐, 영어로 Psychology가 되었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학문이란 뜻이지. 한자로 했을 때에도 비슷한 뜻이야.
그렇다면, 심리학자란 어떤 사람인지 얘기하려고 프시케 이야기를 꺼냈을까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함 속에서 기름등잔을 들고 자신의 신랑 에로스를 확인했던 프시케가 심리학자가 하는 일이야. 마음 또한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등을 켜서 들여다봐야 하거든. 프시케가 심리학자라면, 기름등잔은 심리학자가 사용하는 여러 도구 중 하나가 될 거고, 에로스는 프시케가 간절히 규명하고자 하는 대상이 되겠지.
놀라운 점은 더 있어. 프시케가 확인했던 대상이 누구지? 에로스잖아. 에로스는 사랑의 신으로, 육체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상징해. 기본적으로 심리학자는 삶의 면면을 살펴보며, 사랑을 확인하는 사람이야. 사랑 없이는 이 모든 '앎'에 대한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게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야.
심리학은 보이지 않는 마음(Psyche)을 (기름등잔을 들고) 연구하는 학문이고, 그건 사랑(Eros) 없인 불가능해.
나는 너를 이제 마음관찰자로 임명할 거야. 심리학자라 하려면, 대학에서 학위라는 자격증을 따야 하지만, 마음관찰자는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깐. 그리고 [마음관찰자를 위한 심리학 쿠션]은 크게 [마음관찰]과 [쿠션]으로 나눠서 진행할 건데, [마음관찰]은 마음관찰에 필요한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할 거고, [쿠션]은 마음관찰자로 살면서 필요한 노하우가 있다면, 그걸 공유해볼까 해. 나 너무 기대돼!
마음관찰자를 위한 첫 번째 글은 심리학의 정의에 대한 것이었는데, 어때? 재밌게 읽었으면 하트 눌러줘.
에로스와 프시케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한 번 찾아봐.
에로스와 프시케, 아프로디테 간 고부 갈등, 부부 갈등은 그 뒤로도 더 이어져. 윽. 그리스에도 시집살이는 있었나 봐..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