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외로운 이들의 안녕을 위해
저녁에 밖에 나가 혼자 우동과 소주를 먹고 있었어. 자주 가는 식당인데, 혼자 가기에 좋거든. 식당 유리로 보니, 어두운 담벼락에서 하얀 불빛이 흔들리다가 아주 빠르게 사라지는 걸 보았어. 뭐지? 더 자세히 보려 하는데, 갑자기 체크무늬 남방이 내 시야를 온통 가리는 거야.
“선생님도 저 불빛 보신 거죠?”
그 체크무늬 남방 위로 얼굴을 봤어. 눈이 맑게 빛나는 잘생긴 청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더군. 박보검을 좀 닮은 것 같달까.
“그러실 줄 알았어요. 선생님이 브런치에 올린 글 봤어요. 얼굴을 잃어버린 사람 이야기. 역시 선생님은 저와 비슷한 사람일 줄 알았어요. “
그의 눈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을 담고 있었고, 그의 말은 나의 글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낸 듯 했어.
”제가요? 제가 어떤 사람인데요?”
난 우동을 마저 마무리하고 싶으면서도 그 친구가 궁금해졌어. 네가 뭘 생각하는지 아는데, 그런 거 아니야. 잘생겨서 그런 거 아니라고!
“선생님에겐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찾아오죠. 그건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기 때문이에요.”
난 청년에게 내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눈짓을 했어.
"아, 앉아도 될까요?"
청년은 아주 잠깐이지만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결심한 듯 자리에 앉았어. 그리고 나를 다시 빤히 쳐다보는데, 곧 울 것만 같은 얼굴이었어. (잘생긴 얼굴에 그런 눈물이라니... 내 마음이 so melting 되어가는 느낌...) 그제야 그의 눈동자가 빛났던 게 계속 눈물을 참고 있어서였다는 걸 알게 됐어.
"제가 학생을 도울 일이 있을까요?"
"선생님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뭘 해달라는 건 아니고, 그냥 들려드리고만 싶어요. 안 그러면, 미쳐버릴 것 같거든요."
"속에 오래 담으면 독이 되는 이야기인가 보네요. 무슨 이야기인지 한 번 들어볼까요?"
그의 이야기는 깊은 어둠에서 시작됐어.
저는 일곱 살부터 아저씨와 살게 됐어요. 도저히 엄마가 저를 감당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죽은 아버지를 닮아 저는 산 사람이 아닌 걸 봤거든요. 어릴 때에는 사람과 귀신을 구분하지 못했어요.
엄마는 그런 제가 무서웠던 것 같아요. 때때로 허공을 향해 말을 걸고 웃고 있는 제가. 아마도 아버지가 생각났었을 거고, 아버지를 두려워하듯 저를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와 같은 능력을 가진 아저씨에게 맡겼던 거죠. 엄마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아버지 쪽 먼 친척인 아저씨라 했어요. 아버지 쪽으로 간혹 이런 이상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특히 남자들이 강했거든요. 그리고 그런 영을 보는 능력을 가진 남자들은 다 빨리 죽었어요. 아버지도 그랬고, 엄마는 이미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워했던 거죠. 제가 기억나지 않는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들과 함께 했으니, 지금까지 집안 남자들 중에서도 제가 능력 발현이 좀 빨랐거든요. 그래서 엄마를 이해해요.
아저씨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아저씨와 밤길을 걷고 있는데, (겨울이었어요.) 어디선가 슬픈 노랫소리가 들렸어요. 누군가 울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그렇게 노래가 슬프게 들린 건 처음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노랫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려는데, 아저씨가 온몸으로 저를 꽉 안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팔로는 머리를 감싸 안아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했어요. 추운 겨울이었는데 아저씨의 품이 참 따뜻했어요. 한동안 그렇게 서서 절 안고 있다가 풀어주었는데, 아저씨의 배 부분이 제 눈물로 축축해져 있는 게 보였어요. 아저씨는 배가 차가운 것도 개의치 않고 한쪽 어깨에 절 들쳐 매고는 그곳을 빨리 벗어났어요.
그리고 집에 왔을 때 제가 물었어요. "... 제가 뭘 잘못한 거죠?"
이상하게 계속 눈물이 그치지 않았어요. 난 저주받았고, 그래서 엄마가 버렸구나 싶어서.
"아냐, 네 잘못이 아니야." 아저씨가 휴지를 찾아 저에게 주었어요.
"네가 아까 들었던 건 창귀의 노래야. 창귀는 호랑이에게 구속된 귀신으로, 자신의 자유를 위해 슬픈 노래를 불러 외로운 사람들을 꾀어내. 방금 위험할 뻔했어."
창귀는 우리 안의 외로움을 눈물로 끌어내요. 그래서 더 버틸 수 없는 사람을 데려가는 거에요. 저는 일곱 살치고 분별력 없이 지나치게 외로운 아이인 데다가 영적으로 발달했어요. 아마 그때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창귀에게 홀려 죽었을 거예요.
아저씨는 저에게 신신당부했어요. 별이 보이지 않는 밤에 혼자 골목을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슬프게 노래를 부르는 게 들린다면, 반드시 뛰어서 그곳을 빨리 벗어나라고요. 그 뒤로 창귀를 만난 적이 없었어요. 아저씨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아저씨가 저를 지키기 위해 강한 기도를 올렸는지도 모르죠. 아저씨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거든요.
다행히 선생님은 웃지 않으시네요. 그런 능력을 갖고도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다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어이없다고 그래요. 그런데 오히려 전 아저씨처럼 예수님이 있다고 그렇게 확신하는 사람은, 그 후에도 못 봤어요.
창귀를 다시 본 건 얼마 전이에요.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서 전 열일곱부터 혼자 살았어요. 미성년자이긴 한데, 보호자도 없고, 그렇다고 시설에 들어가기도 그래서, 그냥 그때부터 고시텔에서 살았어요. 혼자 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제가 혼자 사는 게 불쌍했는지 고시원에서 총무 형이 이것저것 많이 챙겨줬어요. 제가 식사 때를 놓칠 때가 많았는데, 그 형 덕분에 혼자서 밥 먹는데 김치 말고도 계란 프라이도 먹고 제육볶음도 먹고 그랬어요.
스무 살이 된 이후부터는 가끔 돈이 필요하면, 공사장에 나가곤 했어요. 자주 갈 수는 없는 게 공사장에 죽은 자들이 터전을 잃고 방황하고 있거든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하면서. 사실 대부분 자신들이 죽은 줄도 몰라요. 그래도 공사장은 시끄러워서 그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을 때도 많아요. 현장에 나가려면 주로 새벽 3시 반 정도에는 나가야 하거든요. 고시텔에서 나와 언덕을 내려가는데, 누가 담벼락에 이마를 대고 주저앉아있는 게 보였어요. 뒷모습이 그 총무 형인 것 같더라고요.
형을 부르려는데, 형이 너무 슬프게 울고 있는 것 같았어요. 다가가보니, 노래가 들렸어요. 어릴 때 들었던, 그 창귀의 노래. 제 안으로 슬픔이 몰려오려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들리는 제 안의 목소리. 엄마가 버린 괴물......
저는 아저씨의 당부대로 뒤돌아 도망갔어요. 아니, 저는 주저하고 있었는데, 제 다리가 멋대로 움직여 내달렸어요. 마치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정신을 차리고 나니, 제가 24시간 문 여는 편의점 문 앞에 서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동네 편의점이 아니라, 고시원에서 5km나 떨어진 서울역 앞에 있는 엄청 큰 편의점 앞에 와있는 거예요. 서울역... 산 자와 죽은 자가 뒤엉켜 돌아다니는 곳.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서울역에서 누군가를 계속 기다리는 귀신이 있는가 하면, 살았을 때처럼 계속 바쁘게 돌아다니기만 하는 귀신도 있고. 근데 산 사람도 마찬가지라.
한동안 넋 놓고 있다가 해가 떠오르는 걸 느꼈어요.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고시텔을 향해 달려갔어요. 뒤늦게나마 내가 본 걸 다시 확인해야 할 것 같았어요. 뭐지? 형이 맞아?
처음엔 제가 꿈을 꾼 건 줄 알았어요. 주저앉아 울던 형의 모습은 거기에 없고, 창귀의 노래도 제대로 들은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형의 방문을 두드리는데...... 아무리 두드려도 형은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잠귀가 밝은 형이라, 그래서 잠도 잘 못 잘 때가 많았는데, 이상하다... 그러면서도 별 일이야 있겠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너무 뛰어다녀서 그런지,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서 전 방에 들어가 잤어요.
형은 그 방에서 혼자 죽어있었대요. 핸드폰에는 여자친구에게 잘못했다고 돌아오라는 문자만 엄청 쓰여있었다 하더라고요. 아, 저는 못 봤어요. 아니, 본 것도 같은데, 기억이 잘 나요.
형은 저에게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형을 죽게 내버려뒀던 거죠. 정말 창귀에 홀린 걸까요? 제가 형을 구해낼 수 있었을까요?
그 뒤로 창귀의 노래가 저에게 다시 들릴까 봐, 내 외로움과 슬픔이 창귀의 노래에 반응할까 봐 너무 무서워요. 여긴 고시텔이잖아요. 외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사람들에게 지워지다가 자기 자신에게도 지워져 버리는... 창귀의 노래에 외로움으로 반응하는 사람들...
선생님, 저... 외롭고 싶지 않아요. 이제 아저씨도 없는데... 외롭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그 청년의 손을 잡았어.
"어린아이가 너무 긴 시간 혼자 힘들었구나."
"그런데 선생님은 왜 우세요?"
그러고 보니, 내가 그 청년보다 더 울고 있더라고. 우리는 그렇게 한참 울었어. 우동 가게에 있는 사람들이 엄청 쳐다보더라. 우동 가게 주인은 내가 취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빨리 먹고 나가라는 눈빛이 있어서 더 앉아있지는 못했어.
"우리 걸으면서 얘기할까?"
가게에서 나오니, 찬 바람이 얼굴을 덮쳤어.
"바람이 느껴지니?"
"네, 너무 차가워요."
"나도."
"이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고 싶었어? 정말 외롭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 사실은, 알리고 싶었어요. 이렇게 외로워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창귀의 노래를 듣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그러니깐 선생님이 꼭 제 이야기를 써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전 만족해요."
"그래. 그리고 네가 외롭지 않게 살 방법을 한 번 같이 찾아보자. 지금은 내가 술을 먹어서......"
그렇게 청년을 돌려보내고 다음 날, 날이 밝으면 꼭 내 작업실에 오라고 당부했어. 핸드폰도 안 쓰는 친구라 연락처도 못 받아서 내 연락처를 알려줬지. 내 연락처를 가져가다니, 그 청년은 완전히 혜택 받은 거야. (잘생겨서 연락처를 준 건 절대 아니야.) 그 친구는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씩 나를 찾아오고 있어. 아직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날 저녁처럼 위태롭진 않아서 다행이야. 앞으로도 조금씩 더 나아지겠지.
이 편지를 쓰는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파. 최근 한국에는 고독사가 급증하고 있고, 더욱 놀라운 건 30대 이하 청년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는 거야. 청년 고독사는 자살인 경우가 많다는 특징 또한 갖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지. 어떤 죽음이 안타깝지 않고 슬프지 않겠어. 그런데 청년의 죽음은 장기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돼. 그 사회의 미래가 사라지는 거지.
외로움과 고독감은 그 자체로 엄청 고통스러워. fMRI로 뇌를 촬영했을 때 신체적 고통에 반응하는 부위인 배측전전두대 피질이 활성화돼.
이런 외로운 시대에 창귀의 노래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마음관찰자들은 이미 민김하게 알아채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오늘은 창귀의 노래를 들을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쿠션을 제안하고 싶어.
창귀는 우리가 억눌러둔 슬픔과 외로움을 자극해. 창귀의 노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먼저 우리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해. 외로움과 슬픔이 우리가 나약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거라는 걸 꼭 기억해.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게 가장 좋은데, 만약 그게 어려울 때에는 글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해.
만약 너무 힘든 순간이라면, 5분 자동 글쓰기를 추천해. 마구잡이로 쓰는 건데, 5분 타이머 해놓고 쉬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계속 써. 그러다보면, 글씨 쓰는 속도에 맞춰 생각이 느려지는 경험을 할 거야. 마음이 조금 차분해질 거야. 지속적으로 표현할 기회를 찾아야 해.
조금 견딜만할 때, 컨디션이 조금 괜찮을 때, 그때 동네 책방에서 하는 모임에 참여하거나 소모임 어플을 깔고 참여하기에 괜찮은 모임을 찾아봐. 그리고 서울시 1인가구 지원 포탈이 있으니, 즐겨찾기 해놔. 구마다 1인가구 지원센터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그것도 알아두고. 도움을 청할 곳을 많이 알아두고 정보를 저장해 놓는 게 중요해. 창귀의 노래가 들릴 것 같으면, 바로 전화할 수 있게.
만약 창귀의 노래가 들린다면, 그땐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 게 중요해. 청년의 아저씨가 말한 것처럼 창귀의 노래가 들리면 그 자리에서 벗어나 창귀의 노래가 닿지 않는 곳까지 달려야 해. 그때 잘 달리려면, 평소에도 달려두는 게 좋겠지? 창귀의 노래가 먹히려면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 아래에 혼자 느리게 걷거나 멈춰있을 때거든. 달리는 사람의 속도로 창귀의 노래가 쫓아오진 못해.
창귀에게 현혹되면, 그 사람도 창귀가 된다는 거 알아? 한 사람의 외로움으로 인한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는 거야. 외로움과 슬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
오늘 쿠션을 몇 개 제안하긴 했지만, 나는 이 쿠션이 외로운 이들에게 가닿지 않을까 봐 겁나. 외로움은 그런 거거든. 그 사람의 세계가 그의 목소리로만 가득 차게 되어, 다른 이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게 돼.
그래서 이 글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누군가의 안녕에 대해 간절하다면, 창귀는 힘을 쓰지 못하거든. 창귀의 노래를 아는 것도 창귀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야.
그리고, 마지막.
별이 뜨지 않는 밤에는 슬픔을 간직한 채로 혼자 어둠 속을 걷지 마.
마음관찰자의 댓글은 언제나 환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