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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잡남 Aug 23. 2018

"현대판 노예"

- 힘들어도 스스로 세워가려고 하는 이유

1월 1일 신년 기념으로 교회 사람들을 만났다. 방어가 제철이니 방어를 먹자며 아는 형님이 선뜻 큰 금액을 내셨고 7명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방어를 시식했다. 회를 맛있게 먹고 난 뒤쯤 나는 문뜩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올해 연초에 퇴사를 생각 중입니다."


그러자 내게 돌아온 말은 이것이었다.


"뭐하려고? 차선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냥 막그만두면 안돼. 창업하고 실패할 확률이 커"


대한민국사회에서 창업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 '실패'로 귀결된다는 편견을 맞딱들이는 순간이었다. 왜 20~30대 젊디 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라는 단어에 대해 두려워하고 무서워 하는 것일까? 왜 100명이 창업을 한다고 하면 90명이 망할것이라고 시작부터 이야기를 건네는 것일까.


  나는 이 문제가 획일화된 교육에서부터 이어져 온 세뇌가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12년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획일화된 교과과목에서 1등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만 교육을 받았다. 그 결과 학벌이라는 계급사회로 우리 각자의 정체성이 부여되었다. 정체성이 부여되고 나니 내가 갇힌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틀을 깨고 부시고 날아가려 하면 틀을 깨지 못하도록 주변에서 거침없는 독설과 반대의견을 내놓기 시작한다.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지금의 자신이 가진 직업을 찾는데 돌고 돌았다고도 말을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진실은 이렇다.


  5일을 일하기 위해 이틀을 쉬고 또 다른 5일을 일하기 위해 이틀을 쉰다. 인간의 시초였던 아담이 죄를 짓고 인간은 이 땅에서 고된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현재 나는 크리스쳔이다.) 이 것이 죄가 가져온 결과물이었다. 혹자는 하나님께서도 6일동안 일하시고 하루를 쉬셨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한가지가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6일동안 일하시고 하루를 쉬셨으나 6일동안 지으신 창조물을 보시면서 '보기에 좋았더라' 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즉, 일을 하고 난 생산물이 하나님 보시기에 흡족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일'을 마친 사람들 중에 몇%나 자신의 생산물에 대해 만족할까. 6일을 일하는 제조업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물건을 보면서 과연 기뻐할 수 있을까? 제조업에서 노동을 하기 위함이 노동자가 가진 정체성인가.


  나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존재가 가장 젊은 이때에 코딩 한 줄을 위해 태어났단 말이가. 그것도 나에게 월급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사라져갈 일을 위해서 말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단정지어 말하고 싶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가장 첫 번째 정체성이고 두 번째는 나는 소비자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 생산자의 삶을 살기 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의 직업이 나의 정체성을 뜻하는 바가 아니다. 나는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컨텐츠와 서비스로 누군가 행복감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내는 생산자가 나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단순히 내 월급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고대시대부터 이어져온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한다. 나의 젊음은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젊음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가장 처음이요 그 다음이 이 땅에서 누리며 살아가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고로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 이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걱정해주시는 바는 알겠으나
저는 더이상 노예로 살지 않겠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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