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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 어른이 Aug 28. 2021

서구는 맞고 우리는 틀리다?

탈구축:서구적인 것이 선진, 우월이라는 이념이 지배하는 오류에 대해

 우리나라는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1960년대 이후 산업선진사회로 급성장한 유례없는 나라이다.   이미 선진 산업국가와 기업이 입증한 효과와 경험 그리고 불가피할 실패 요인을 배제시킨 기술과 사업을 빠르게 도입한 fast follwer 전략국가였다.  여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성실함과 헌신적인 노력과 집중력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정착시켰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후발주자인 중국이 참고하여 지난 20여 년 관련 산업을 급성장시키는데 다시 활용되었다.   대표적인 분야로 철강, 석유화학, 제당 등의 산업을 들 수 있다.  공통적인 것은 이러한 산업에 필요한 연, 원료가 국내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지지 않은 것을 어느 누구보다 많이 생산하고 수출하는 그런 상식을 초월한 산업이 근대 대한민국 성장동력이 되었다.   


 이런 산업 시스템을 도입하고 확장시키는 과정 중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주요 설비 및 공정 엔지니어링 업체는 유럽과 일본 그리고 미국 중심의 다국적 기업이었다.  우리나라로서는 설비의 개념을 창안해서 발전시키지 않았기에 이들이 제공한 선진 엔지니어링 결과물은 모든 것이 낯 설고 경원의 대상물이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초기부터 주변에 흔히 보이던 유럽계 혹은 일본계 설비제작사 직원들이 자신들의 회사 유니폼과 안전장비를 그대로 갖춘 채, 상대적으로 촌스러워 보이는 우리네의 누런 작업복 사이를 지날 때 그들이 마치 '인도 카스트제도하의 크샤트리아'처럼 여겨졌다.  왜냐하면 내부 직원에게는 권위적이고 그래서 눈길조차 주지 않는 고위 관리직들이 그들 앞에선 눈을 내리깔고 그들의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경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설비 도입자인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제품을 공급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늘 그들이 이른바 ‘갑’처럼 여겨져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시도했던 몇 가지 중요한 결과물도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숙제물을 내미는 초등학생처럼 대하곤 했다.  물론 모든 상황이 다 이런 식은 아니었지만 대략적인 관계의 모습이라 해도 무방할 듯싶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이어지고 있는 생각, ‘서구 기술은 옳고 바르다’는 인식이 가장 크게 작동한 시기였다.  그런 탓에 외국계 설비 공급자를 여전히 우리는 ‘선진 전문 엔지니어링사’라 하고, 상대적으로 국내 기업은 ‘설비업자?’라고 표현한다. 외국어를 쓰는 것이 한글보다 더 우월해 보인다는 일반의 인식과 같다고 할까?

  오래지 않아 그 성실함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서구가 오랜 세월 구축해 놓은 산업기술의 충분한 이해와 적용을 넘어서 우리 자신의 새로운 가치 기술을 내놓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미 한국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과 가치를 이루어 내는 first runner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절대로 넘지 못할 것 같았던 선진기술과 제품을 넘어 대한민국은 몰라도 특정 브랜드는 안다는 세계적인 제품과 기술, 혹은 문화콘텐츠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전한 보이지 않는 장벽은 '우리 자신의 것에 대한 자기 확신’에 대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자기 확신과 동시에 집단적으로 자신감을 갖는 어려움이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늘 외부에서 평가하는 관행을 허용하고 있다.

 근년에 오랜 세월 우리만의 생각과 헌신으로 이룬 새로운 공정을 상업화에 성공한 바 있다.  개념을 설계로 구현하고, 규모를 키워 실제의 제품까지 생산해 내는 십여 년의 기간 동안 늘 긴장하게 하는 주변의 조언은, '선진사의 것이 있는데 굳이 어설퍼보이는 일에 비용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지'였다.  또한 기술개발자로서 항상 듣는 질문은, '사례가 있는지?', '왜 다른 나라(회사, 특히 서구)는 이렇게 하지  않는지?'로 요약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제시한 탈구축 개념은 ‘우열의 구조 자체가 갖는 모순성을 밝힘으로써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월적으로 산업화에 성공하여 근대의 부와 이념을 지배한 서구 유럽의 우월성에 대한 자성적 비판의 산물이다. 서구적인 것이 선진, 우월이라는 이념이 지배하는 오류를 유럽의 중심부에서 맹렬히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일이 서구사회를 무차별적으로 모방하고 나선 일본과, 그 뒤를 이어 또다시 그들을 여과 없이 학습해온 우리의 근대 경험은 자신의 차별화된 제안과 질문을 쉽게 억눌러 왔다. 급하게 서구 기술 및 문화, 이념을 수입한 일본이 과정 중 부작용까지 통째로 도입하여 여과 없이 우리 사회로 전달한 탓에 서구적, 좀 더 확장하면 일본적인 것까지 우월적이라는 인식이 여전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개발, 개선한 자랑스러운 우리 것에 대한 손쉬운 배척 의식과 함께, 기존 질서로 편입된 것에 대한 대안적 시도조차 이항적 대립구조로 생각하여 집요하게 거부하곤 한다.  하나의 선택이 존재한다는 것은 반대로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의미를 설파한 철학자의 신선한 생각을 가지고 우리만의 선택에 대해 자신감이 더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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