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나라의 어른이 Oct 05. 2024

피로(Fatigue), 삶의 무게에 반응하는 삶과 재료

성과사회에서 스스로 감당값을 늘려간 피로(fatigue) 철학(哲/鐵學)

  대학에서 금속을 전공을 시작한 오래전 그때 전공자나 외부인이나 대부분 그 학문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농담조로 설명한 ‘금속과=철학(哲學)과’라는 언어유희를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금속에 철(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여타의 비철재료는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 금속이란 대부분 철이라고 연상이 가능했던 사회적 여건이었다.  그렇게 금속학을 희화화하여 철학(哲學) 과라고 칭하던 그 표현이 그리 틀린 설명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대형철강회사에서 근무하면서였다. 오랜 기간 경험했던 다양한 제련방식, 소재 생산과 그 특성을 제어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보고야 단순한 기술영역이 아님을 깨달았다. 대장장이의 고집 센 자기만의 비기(技)라는 신화적인 기술이 금속의 제련-가공등이 현대의 공학기술을 통해 설명되고, 이를 통해 원하는 소재를 재현, 생산할 수 있는 과정을 보면 금속학에 담긴 다양한 철학적 개념이 녹아있기에 두 학문 간 어느 정도 유사성이 존재한다.

https://yasincapar.com/mechanical-fatigue/


전형적인 금속공학의 길을 걸어온 내게 그런 유희적인 표현으로서의 학문인 철학(Philosophy)을 전공한 독일주재  한병철교수의 ‘피로사회(Fatigue Society)’는 그런 연결고리를 확실하게 이어주는 저작이었다.  작가의 학문적 배경 또한 근사한 은유(metaphor)를 이룬다.   한병철 교수는 한국에서 공학(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에 건너가 철학공부를 시작하여 서양 근대 철학과 인문학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떠오른 것은 각별한 이력이다. 그의 저서 '피로사회'가 발표된 후 국내외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나 또한 이 책을 접하여 읽게 된 이유가 재료의 피로와의 관련성을 연상하였고,  현대사회의 끊임없는 생산성과 효율향상을 위해 일했던 지난 수 십 년간의 내 삶 속 불완전한 모습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덤으로 저자 소개에서 발견한 그의 금속공학 전공 이력은 내게 확신을 넘어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긍정성의 패러다임(능력, 성과, 자기 주도, 과잉, 타자성의 소멸 등등) 이 그 자리에 성과사회, 성과주체가 대신 들어선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마모시켜 간다. 그 결과 스스로를 낙오자로 느끼는 우울증 환자가 되곤 한다.  오늘의 주체는 오히려 무한한 자유의 무게에 짓눌려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피로는 성과주체의 만성질환이다.

현대사회는 과잉생산, 과잉가동, 과잉커뮤니케이션"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이로 인해 "긍정성의 과잉"이 넓게 퍼지면서 현대인은 심리적으로 경색으로 이어지는 신경성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긍정성의 과잉은 자극, 정보, 충동의 과잉으로 표출되고 이로 인해 현대사회는 '피로사회'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기계는 잠시 멈출 줄을 모른다. 컴퓨터는 엄청난 연산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다. 머뭇거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피로사회, 한병철(2012)‘


피로현상은 금속학에서 재료가 항복강도(yield strength) 보다 작은 응력을 반복적으로 받아서 파괴되는 것을 이른다.   응력 변동폭이 클수록 적은 반복 횟수에서 파괴가 일어나고 하중 반복 횟수와 관계없이 구조물이 견딜 수 있는 응력 범위를 피로한계라고 부른다. 그런 연유로 구조물, 부품 등에서 진동과 반복적 힘이 가해지는 부분에 사용되는 재료는 피로 파괴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 형태로 선택, 설계되어야 한다. 용접부위에서 피로 파괴가 쉽게 발생한다. 항공기 날개 부분을 용접해 사용하던 항공기는 몇 차례 사고를 경험한 후 그 방식을 폐지했고, 선박의 경우도 유사한 사고를 경험한 후에 더욱 피로파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현재의 비행기의 창문 모양은 둥그렇게 제작되어 있다. 대부분 10,000m 이상상공을 비행하는데 이때의 압력은 소재 또한 감당키 어려워 비행기 내는 여압장치에 의해 2500m 고도 정도의 압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면 재료가 피로한계에 다다른다. 이때 ‘뾰족한 부분’에서 이런 현상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재료의 파괴가 시작되어 몇 번의 참혹한 사고 후에 얻은 결론으로 직각형 창문을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된 형태로 바뀌었다.  또한 재료자체가 갖고 있던 미세 결함에 의해 반복적인 응력변화에 민감하여 파괴점이 확대되면서 정상재료보다 하중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병철 교수에 따르면 현대인은 반복적이고 감당키 힘든 심리적, 환경적 무게에 짓눌려 있다고 했다. 개인들은 외부의 자극에 살아남아야 한다고 지레짐작한 후 자기 주도의 과잉반응으로 마모되어 간다고 판단했다. 재료는 스스로 처한 환경에서 반복적인 부하를 경험할 때 피로파괴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공통적인 현상으로 내외부의 자극에 일차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뾰족한 부분‘과 ’ 미세 결함‘ 그리고 ‘용접부위’이다. 항공기의 뾰족한 창문으로 비유되는 민감한 영역을 가진 성격과 미세결함으로 설명되는 자신 만의 취약성, 그리고 용접부위와 같이 큰 상처를 받아 자신만의 정체성이 훼손된 영역에서 쉽게 피로현상이 발생하여 burnout 혹은 심리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의학에서도 피로골절이라는 현상이 있다.  뼈에 반복적이고 강한 하중이 반복적으로 가해져서 생기는 골절이다. 수 십 년 전 발목뼈에 금이 가서 입원하여 수술을 받을 때 당시 의사는 골절(fracture)이라고 진단했다. 어설픈 재료공학도인 내게는  깨짐(crack)으로 여겨졌는데 의사는 지속적으로 골절로 표기하여 나와 논쟁? 한 경험이 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일반재료와는 다르게 인체의 뼈의 골절은 일정기간 운동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경우 손상 부분에서 스스로 접합이 일어나 회복된다. 그래서 그들은 영구적인 결험상태인 crack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 같다. 피로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의학적으로 권하는 처방은 잘 쉬고 잘 자는 것이다. 반복적 일상에서 벗어나면 어느덧 피로해소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재료는 피로현상이 발생되면 회복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재료와 신이 창조한 인간의 경우는 다르다.  과거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아진 정보(성공하기, 부자 되기, 똑똑하게 되기 등)에 의해 우리는 일상이 편리하다고 느끼지만 우리 몸과 마음은 이렇게 피로현상에 두껍게 둘러싸여있다. 정적인, 자극 없는 삶이 더 좋은 선택지가 될 수는 없지만 과도한 자기 열심은 우리의 강성(resilience)을 점차 약화시킬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금속재료가 그런 현상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괴테의 달에게’vs.’김용길의 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