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연결된 철의 흔적
오랜 세월 함께한 직장을 나올 때 아쉽게 여겼던 한 가지는 그렇게 나의 대부분의 인생과 함께한 다양한 설비 위에 덮인 다양한 녹의 향연을 마음속에만 담고 나왔던 것이다. 미국의 사진작가 조셉 엘리엇(Joseph Elliott)은 폐쇄된 베들레헴 제철소의 모습을 십수 년에 걸쳐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가 담아낸 것은 모든 가동을 멈춘 장대한 강철 설비 위로 피어난 다채로운 녹(rust)이 만들어 낸 신비로운 이미지였다. 우리는 보통 녹을 낡고, 쇠하고, 버려져야 할 것의 상징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의 사진 속에서 녹은 마치 시간의 지층처럼, 강렬한 생명력을 품은 추상화처럼 보인다. 그 붉고 깊은 색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나는 이것이 우리 생명의 근원과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붉은 돌, 철광석을 연상하였다.
철의 가장 흔한 얼굴은, 바로 '적철광(赤鐵鑛)'이다. 영어로는 '헤마타이트(Hematite)'라고 불린다. 이 이름의 유래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돌을 갈면 피처럼 붉은 가루가 나오는 것을 보고, ‘피’를 의미하는 단어 ‘하이마(haima, αἷμα)’를 붙여 ‘피와 같은 돌’이라 불렀다. 돌에서 생명의 색을 발견한 고대인들의 직관은 실로 놀랍다.
결국 이 이름은 돌의 영역에서 우리 몸 가장 깊은 곳, 생명 상징인 혈액 속으로 연결되었다. 우리 몸의 피가 붉은 이유, 바로 헤모글로빈(Hemoglobin) 속 철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의 접두사인 ‘헤모(hemo)’ 역시 ‘피’를 뜻하는 그리스어 ‘하이마’에서 왔다. 폐허가 된 제철소의 붉은 녹과 내 핏속을 흐르는 생명의 단백질이 같은 이름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헤모글로빈 속의 철은 호흡으로 공급된 산소를 결합시켜 혈관을 통해 산소가 필요로 하는 인체의 모든 영역으로 쉴세 없어 공급하여 생명유지를 책임진다. 수 십 년 전 겨울철이 되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생명을 잃거나 중독후유증으로 많은 사상자에 관한 사고기사도 헤모글로빈 내 산소가 일산화탄소에게 사용되지도 못하고 먼저 빼앗긴 결과와 연관된다.
몸속의 철이 산소와 이토록 섬세한 관계를 맺는 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철은 산소와 훨씬 더 강력한 방식으로 묶여 있다. 헤마타이트의 화학식은 Fe₂O₃이다. 철 원자 두 개가 산소 원자 세 개와 단단히 결합한 모습, 즉 철 원자 하나당 산소 원자 1.5개가 붙어있는 셈이다. 이 단단한 결합을 끊어내 순수한 철을 얻는 환원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산소는 한 단계씩 차례로 떨어져 나간다.
철에 붙은 1.5개의 산소가 1.33개로 줄어들고, 다시 1.0개 내외로 줄어들다가 마침내 모두 제거된다. 각 단계의 산화철은 저마다 다른 이름이 붙을 만큼 색깔을 포함한 특성까지 다르다. 붉은 헤마타이트(Hematite)가 검푸른 마그네타이트(Magnetite)가 되었다가, 흑회색의 뷔스타이트(Wüstite)를 거쳐 마침내 순수한 철로 태어난다. 이처럼 철은 우리 주변 가장 흔한 금속이면서도, 그 속내는 이토록 다채롭고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존재이다.
이토록 쉽지 않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순수하게 태어난 철이, 다시 산소와 만나 붉게 변해가는 현상. 우리는 그것을 ‘녹’이라 부른다.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만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이지만, 그 결과는 사뭇 다르다. 몸속에서의 만남이 생명을 순환시키는 역동적인 과정이라면, 고체상태에서 만난 산소는 단단함을 잃고 붉은 가루로 부스러지는 정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녹을 부식, 소멸, 죽음의 이미지와 연결 짓곤 한다.
하지만 화학적으로 녹슨다는 것은 철이 공기 중에서 불안정한 금속 상태를 벗어나, 가장 안정적인 원래의 모습, 즉 산화철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철이라는 존재가 산소와 물이라는 세상과 만나 관계를 맺고, 그 상호작용의 흔적을 제 몸에 고스란히 남기는 과정이다.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진공 속에 보관된 철은 영원히 반짝이겠지만, 그런 철에는 어떤 이야기도, 시간도 담겨 있지 않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갓 태어난 아이의 마음이 반짝이는 쇳덩어리와 같다면, 한평생을 살아낸 노인의 마음은 깊고 붉게 녹슨 박물관의 무쇠와 같을 것이다. 상처와 기쁨,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미움의 흔적들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삶’에 새겨진 세월의 녹이지 싶다.
우리는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늙어가는 것을 서글퍼하며,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든 지우려 애쓴다. 비바람을 맞고, 뜨거운 햇볕에 달궈지고, 차가운 밤이슬을 견뎌내며 서서히 자신만의 색과 질감을 갖게 되는 무쇠처럼, 우리의 삶도 세상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깊어진다.
헤모글로빈 속 철은 생명을 위해 산소를 붙잡았다 놓아주는 역동적인 기능을 위한 희생이라면, 조셉 엘리엇의 사진 속 베들레헴 제철소의 녹은 ‘살아온 시간’에 대한 명징한 흔적이다. 붙잡고 놓아주는 유연함이 우리를 살게 하고, 붙잡고 놓지 않아 새겨진 흔적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삶에 붉은 녹이 슬고 있다면 반갑게 맞이할 일이다. 그것이야 말로 온 힘을 다해 세상과 호흡하고, 사랑하고, 살아왔다는 우리의 존재가 남긴 유일무이한 시간의 무늬이다.
미국의 45, 47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산업시대의 상징이었지만 녹슬어버린 러스크벨트(rust belt) 지역을 부활시키겠다고 그 붉은 녹을 지우려 한다. 붙잡을 수 없는 역사를 돼 돌리려 하는 전능자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