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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김작가 Oct 29. 2016

「당신과의 흔적은 조건 없이 … 좋다」

#50. '김선주'화가의 글과 그림으로 생각해보는 '존재의 의미'




아마     




더 가버린 세월보다 덜 간 세월이 안타깝다.

어쩌면 사람은 알아버린 것보다는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완성된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앞으로의 그림은 막막하기 그지없고

지나간 그림은 왠지 서럽기까지 하다.

밑도 끝도 없이 그림을 사랑한 게 불듯 낯설다.

사랑했던 것은 최고로 견고한 흔적이므로

후회나 미련은 없다.      


아마

그 사람도 그럴 것 같다.     


                







당신과의 흔적은 … 조건 없이 좋다



제목을 보는 순간 '감미로움'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그 언젠가, 그 누군가와 함께 했던 예전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 흔적들을 오랜만에 다시 되뇌어본다. 

그러다가 가만히, ‘조없이 좋다’라는 문장을 다시 한번 더 입 안에 읊조려본다. 

배시시…….

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한없이 아련하고 그립기만 한 옛 흔적들!

그렇게 오랜만에, 내 안에 묻어두었던 속마음들을 다시 꺼내 단숨에 읽어버렸다.


정말……,

당신과의 흔적은 … 조건 없이 좋다!





 

떨어질 게 뻔하니 실기는 보러 가지 않는 게 좋겠다



삶에서 때론 무모해 보일 만큼의 과감한 도전은 늘 필요한 법이다. 진정 미움받을 용기로 무장하면서 말이다.

주변에서 회의적으로 대회 참가를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수채화 공모'에 끝까지 참가한 화가 김선주.


그녀는 2000년 4월, 그 공모전에서 보란 듯이 '대상'을 수상하면서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이후  개인전을 18회나 열었고,  지금은 '사포 갤러리'라는 화랑을 운영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계속 구축하고 있단다. 특히 ‘독창적인 격자무늬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약간 독특한 그녀의 그림을 감상해보기로 한다.




화가이자 작가인 김선주는 책 사이사이에, 자신이 그동안 려온 <격자무늬> 림을 펼쳐 보여주면서 살아온 인생 이야기 함께 고 있었다.


글에서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이 눈에 띈다.

그녀는 여섯 번의 헤어짐 끝에 운명처럼 결혼을 했고, 30여 년을  함께 지내다 최근 사별의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그 아픔을 겪은 후,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가 안겨다 주는 허전함과 애틋함을 잔잔히 고백하고 있다.



플라톤은,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기 마련 아닌가?'라고 하던데, 결코 죽음이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건 아닐 듯 싶다. 진실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남아있는 이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으니 말이다.

새삼 가까운 이의 '죽음'과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슬픔에 대한 예의               




슬픔에도 예의가 있을 수 있을까마는

나보다 더 슬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보니

나의 어떤 경험 감각으로도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그래, 너무 기뻐서 울고 웃는 것보다는

너무 슬퍼서 감각의 촉수가 무딘 것도 괜찮겠다.      


그림을 그리고...

해 질 녘, 그림의 그늘막에 서 있어 보니

고쳐볼 그림이 내 곁에 산적해 있고

내게도 사랑할 것들이 아직 많아 보인다.         



           




화가는 슬플 때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 슬픔에 대한 위로를 받 듯 하다.



나는 가끔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찾아 지독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게 될 때, 이런저런 일상에 지쳐 어디론가 훅 날아가고 싶 때, 그 치유책으로 조용히 '어떤 기쁨'이라는 시를 읊조리곤 한다. 슬픔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되는 객관적인 순간이다.



                                     

어떤 기쁨      



고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했던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하고 있는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막 생각하려는 것

울지 마라      


……

(이하생략)



역시 지극한 위로가 몰려온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고,
다들 그렇게 살아

내 슬픔을 하나라도 덜어주려 위로하는 말에서 ‘다들’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봐. 그 의미는 충분히 역동적이지만 나처럼 별난 인간을 설득할 힘은 없는 것 같아.  



이렇게 작가 몹시 힘들고 외로운 순 인생과 자신을 지긋이 응시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너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먼저 먼 길을 떠 사랑하는 이를 그리며 이렇게말한다.                





그리울 일      
똑딱똑딱, 똑딱똑딱...

오늘 하루 당신은 잘 지냈나요?     

그곳에서 한 작은 여자가 생각나고

이곳에서의 지난 일상이 불현듯 생각나거든

밤베르크에서 뚜껑도 없는 훈제 맥주를 마시듯

그렇게 훌쩍 마시면 됩니다.      


자, 우리 그렇게 떨어져 서로서로 평범한 행복을 만납시다.

내일도 그리울 일이 많을 테지만.         

 

죽음은 삶과 그리움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삶의 엇박자인 또 다른 삶일 거야.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가
진정 어디서 나올까?



어쩌면 그것은 고독한 개인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 것이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나' 란 존재가 어느 한 순간 이라도 팔락팔락 살아있다면, 언젠가 우주 속 먼지로 쓰윽 사라진 후에도 '나'란 존재를 떠올리고 변함없이 진정으로 나를 그리워해 준다면, 그것으로 나의 존재 가치는 충분할 일이다.



어영부영 어른이 되고, 이리저리 다양한 역할과 많은 일들에 치여 살아가는 그 바쁜 틈바구니 에서도 누군가의 '갈증'을 충분히 채워주는 존재라는 것, 그것만큼 인간으로서 큰 삶의 의의가 또 있을까?



삶에서 거대하고 더 큰 무언가를 늘 손에 쥐고자 바둥거리며 사는 우리에게, 생을 다한 후 맞이할 이별을 미리 상상해 보는 일은 자기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게 만들고,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방향성을 다시 설정하게 만든다.


 



만추, 완연한 가을이다.



갛게 노랗게 알록달록 물든 형형색색 나뭇잎들이 팔랑, 아스팔트 위에 흩어져 내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별의 아름다움이 나를 매혹한다.'



가을을 극찬한 푸쉬킨의 시 한구절 처럼, 짙은 단풍과 노란 은행 고하는 이별은 실로 매혹적이다. 찬란한 슬픔이다.


 

낙엽과 같은 우리의 죽음을 생각해본다.

사랑하는 의 부재는 한껏 슬프나 누군가의 마음 속에 영원히 반짝 반짝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존재는 충분히 아름다우며 찬란하리라.

그러니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죽음은 '삶의 엇박자인 또 다른 삶을 찾아가는 일' 일 수도 있겠다.  



거리에 가득 뒹구는 낙엽들과 사랑하는 이의 부재가 안겨다주는 이 찬란한 슬픔은

 '삶의 엇박자인 또 다를 삶'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자.



지금의 이 아름다운 이별은 곧 다시 돌아올 화려한 봄날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가, 그 새로울 봄날에 기지개를 활짝 펴서 더 큰 도약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짙은가을날오후산책길의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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