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라이브러리에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10월에 개봉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못 보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온 대학도서관 司書 한 분이 대한극장에서 24일이 마지막 상영이라고 해서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상영을 하는 것을 보았다. 객석이 300명이 넘는 대한극장 8관에서 달랑 4명이 4시 40분에 시작해서 쉬는 시간 없이 3시간 27분 동안 상영된 영화를 함께 보았다.
한국도서관협회 직원에게 “사서와 도서관 친구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이벤트를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24일은 정선에서 全國圖書館大會가 열렸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SNS에서 사서들이 함께 영화를 보자는 글을 보지 못했다. ‘사서들과 도서관 친구들이 함께 이 영화를 관람하는 이벤트가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고 혼자 많이 아쉬워했다.
감독 프레더릭 와이즈먼은 <하이스쿨>(1968), <호스피탈>(1970), <라 당스>(2009), <내셔널 갤러리>(2014)와 같이 학교, 병원, 발레단, 미술관과 같은 공공 기관만의 메커니즘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왔는데 이번에는 123년의 역사를 갖고 92개의 분관이 있으며, 3,150명의 직원이 일하는 뉴욕공공도서관을 12주 동안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내 놓았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내레이션과 인터뷰 없이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을 묵묵히 개관적인 시각으로 보여 준다. 장면과 관련된 도서관의 외부를 먼저 비추어 주고, 그 도서관에서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비추어 준다. http://tv.kakao.com/v/391878627
영화는 사서들이 이용자와 전화 통화하는 일상적인 모습에서 시작하여, 족보를 찾는 이용자와 대화하는 사서의 모습,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용자의 모습, 사진을 정리하는 사서의 모습, 지도, 책, 그림 등을 디지털화 하는 작업, 도서관에서 방과 후에 학생들의 학습을 도와주고 있는 모습, 댄스 교실, 수화 교실, 강연회, 토론회, 예산확보 및 분배와 관련된 문제, 전자책 이용률의 증가에 따른 장서 구입 정책에 대한 논의와 같은 도서관 직원들이 회의하는 모습 등을 3시간 27분에 걸쳐 보여 준다.
「BiblioTech」라는 책의 저자 존 팰프레이John Palfrey,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 도서관장은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서 거의 모든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이 구글Google의 시대에 도서관이 필요한 이유를 ‘도서관은 자료만을 찾고, 자료를 이용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 자료를 찾을 때 사서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다양한 강좌를 들으며 의견을 나누는 커뮤니티 공간이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할 수 있어도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영상으로 뉴욕공공도서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서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 도서관장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서에게 묻고 배우고, 학습의 가르침을 받고, 댄스도 배우고, 수화도 배우고, 자기 소개소 쓰는 방법도 배우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를 초빙하여 해당 분야의 직업 설명회도 듣고, 수준 높은 강연을 듣고, 워크숍하며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도서관이다.
우리나라 도서관에서도 강연을 하는 도서관이 없지는 않겠지만 뉴욕공공도서관처럼 그렇게 깊이 있는 강연을 많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도서관에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주제에 대해서강연이 이루어지는 광경을 무척 부럽게 느꼈다.
■ 「이기적 遺傳子」의 저자이며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진화생물학자겸 대중과학 저술가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오프닝을 장식하며 無神論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는 쥴리아 로버츠와 휴 그렌트가 주연한 로맨스 영화 <노팅힐>의 OST ‘She’ 를 부른 주인공인데 사랑 노래뿐만 아니라 정치 이슈를 담은 노래도 꾸준히 발매하고 있다. 그는 뉴욕공공도서관의 강연에서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서 자부심 있게 말하고 있다.
■ 펑크Funk의 大母라 불리는 패티 스미스Patti Smith는 미국의 싱어 송 라이터로 200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던 시인이자 작가인데 뉴욕공공도서관에서 진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에 대한 솔직한 가치관을 이야기한다.
리처드 도킨스, 엘비스 코스텔로, 패티 스미스의 강연은 뉴욕공공도서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강연의 수준을 말해준다.
강연이외에도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18세기 정치 지도자와 성직자 사이에서 노예제를 두고 벌어진 싸움에 대한 강연,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직업 선택의 가능성을 북돋아주는 워크숍도 상당한 시간 할애해 보여준다. 도서관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연령·인종의 시민들이 지식의 연마장인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과 정치적인 문제를 공개적으로 자연스럽게 논의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좀 더 나은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서들의 모습도 보여 준다. 도서관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지식과 철학을 평등하게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시민들이 더욱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사서들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시민들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핸드폰을 대여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만드는 고민을 하고,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녹음 서비스 하는 내용도 보여주고, 노숙자 문제를 도서관에서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에 짧게나마 토론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뉴욕공공도서관의 사서들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는데 도움을 주는 그림과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이용을 시킨다. 이러한 자료를 100년 동안 수집해 오고 있다고 담당 사서서는 설명을 한다. 이러한 모습은 30년 가까이 근무한 서울대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었다. 물론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은 설립 목표와 서비스 목표가 서로 다르지만 지도 자료, 사진, 필사본, 팜플렛과 같은 非圖書 자료를 서울대도서관은 거의 수집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오직 도서만을 자료로 생각하는 서울대도서관의 조직문화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實例로 박종근 과장님이 근무하시면서 모으셨던 서울대학교도서관과 관련된 다양하고 오래된 자료가 파일 캐비넷 하나 가득하였다. 관정도서관 오픈과 관련하여 기부자 초청의 날에 참석하신 박과장님은 파일 캐비넷에 들어 있는 자료들을 현직 과장님께 보여주시면서 ‘서울대학교 초창기의 귀하고 다양한 자료가 많으니 부디 잘 지켜 달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그 자료가 지금도 그 자리에 잘 있는지 궁금하다.
도서관은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하여 이용시키는 곳인데 도서관 이용자를 위한 자료는 수집하고 정리하여 이용시키고 있으면서 정작 서울대도서관의 초기 역사를 아는데 중요한 수집된 비도서자료를 등록하여 정리하고, 보존 및 활용하는 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2009년 일리노이대학교 도서관 모테슨 센터Morteson Center에 연수를 갔을 때 일리노이대학 도서관의 Lincoln Library(https://bit.ly/2EWS3cz)를 견한 적이 있었는데 링컨 대통령과 관련된 자료는 圖書, 非圖書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로부터 수집하고 있었고, 2014년 여행 중에 방문한 콜로라도대학 도서관에는 콜로라도 원주민들의 사진과 복장을 전시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도서관, 박물관, 기록관을 하나로 묶은 라키비움larchiveum을 지향하고 있는 경향이다. 이러한 경향은 도서, 유물, 예술품, 기록물이 디지털화 되면서 관리 방법과 서비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울대도서관이 책만을 자료로 생각하는 조직문화에서 벗어나 非圖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비도서 자료도 수집하고 정리하고, 박종근 과장님이 수집해 놓으신 귀중한 자료도 정리하여 디지털화하여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도서관을 책이 있는 집으로만 한정짓지 않고, 다양하고 깊이 있는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다양한 미술 컬렉션, 도서관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시민, 사서, 시 공무원의 노력하는 모습, 흑인지역의 작은 분관도서관에서 하고 있는 사랑방 토론회까지 기록하여 세계 5대 도서관의 하나인 뉴욕공공도서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와이즈먼 감독은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의 도서관 여정을 통해 평생교육을 하는 도서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도서관, 지역사회 공동체의 허브로서의 도서관 등 21세기에도 필요한 공공 도서관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와이즈먼 감독이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에서 보여준 이러한 도서관의 본질은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서 거의 모든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이 구글의 시대에 도서관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근무를 했던 서울대학교도서관과 뉴욕공공도서관의 설립 목적, 자료 수집 범위, 서비스 대상과 서비스 목표는 서로 다르지만 ‘圖書館은 未來를 準備하는 사람을 위한 空間’이라는 도서관의 本質은 같다고 생각한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예고편에 나왔던 대사들이 화살처럼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 “우린 시민의 삶과 지역사회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요.”
■ “난 영화 학교 갈 돈이 없어 도서관에서 배웠어요.”
■ “우린 마음을 살찌우고, 영혼을 강하게 하며,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죠.”
■ “흔히 도서관을 책을 보관하는 곳이라 여기는데 도서관은 사람을 위한 곳이에요.”
■ “방대한 우주와 셀 수 없는 별들을 보면 누구든 시인이 안 되겠어요?”
■ 도서관의 사명을 공유해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고 열정과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따뜻하고 열린 공간이 되고자 하죠.
■ “도시의 책장을 넘기면 더 큰 세계가 펼쳐진다.”
화살처럼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간 예고편 대사臺詞에 이어 다음과 같은 카네기의 말이 떠오른다.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는 1901년부터 1920년까지 5,000만 달러를 기부하여 미국과 영국에 2,500여 개의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자선사업의 대상으로 도서관을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대중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기관으로 圖書館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이유 없이 아무것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오직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도우며, 사람을 결코 빈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도서관은 큰 뜻을 품은 자에게 冊 안에 담겨 있는 귀중한 보물을 안겨주고, 책을 읽는 취미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낮은 수준의 취미를 멀리할 수 있게 한다.” - 카네기 -
나는 도서관에 대해서 말할 때 카네기의 말보다 더 좋은 표현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 “도서관은 이유 없이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도서관은 오직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도우며, 사람을 결코 빈곤貧困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 ‘圖書館은 未來를 準備하는 사람을 위한 空間’이라는 것을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는 영상으로 보여 주었다.
뉴욕의 번화한 맨해튼 시에 자리를 잡고 뉴욕을 빛내는 지식창고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웅장한 그리스-로마 양식의 석조건물을 하고, 유럽의 오래된 궁전이나 수도원과 같은 아름다운 내부를 가진 뉴욕공공도서관. ‘도서관 때문에 맨해튼에서 이사를 갈 수가 없다.’는 팬들이 있을 만큼 인기가 많고,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의 배경으로 나오기도 했으며,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 이라는 책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이번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1902년에 착공하여 10년이 걸려 완공되어 1911년 3월 23일에 개관한 거대한 뉴욕공공도서관은 보자르 양식(Beaux-arts: 19세기 파리에서 유행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고대 그리스 미술을 미적 규범으로 삼음)으로 설계되어 르네상스의 향수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다.
도서관 정문 앞에는 엷은 분홍빛이 감도는 테네시 産 대리석으로 만든 두 마리의 사자상이 있는데 이 사자상은 1930년대 뉴욕 시장이던 라가디아가 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견뎌내고, 새로이 개척정신을 다짐하자는 마음에서 세운 것으로 각각 인내忍耐Patience와 불굴不屈Fortitude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뉴욕공공도서관의 정면에 있는 忍耐와 不屈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분홍빛 대리석 사자 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보자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에서 르네상스의 향수를 느껴도 보고, 유럽의 오래된 궁전이나 수도원과 같은 아름다운 실내에서 환희를 느껴볼 수 있는 날을 다시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