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우리 굳이 약속은 하지 말자.

by 리아

다른 나라 사람보다 한국인이 좋은 이유는 말이 통하기 때문이었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온전히 표현하고 그것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라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만날 확률은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순간에 당신을 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공지영 작가의 한 소설에서 사형수에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 있었다. 나에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은 꼭, 사형수와 같았다. 어떤 이야기든 편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여행은 합주같은 것이기도 하다. 각각의 이야기가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니까.

휴대폰 연락처 그룹에 '여행 인연'이 있다. 그들의 이름 뒤에는 꼭 도시가 붙어 있었다. 다른 나라의 유명한 도시들이었다. 덕분에 아주 진한 로맨스 같은 것은 '꿈만' 꿨지만, 그들의 연락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 같은 것이었다. 사실 연락처 따위 굳이 나눠 갖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그래야만 내게 그들이 나만의 사형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 가서도 만나자는 말은 '지금까지 같이 여행해서 좋았다'와 같은 익숙한 헤어짐의 인사말에 불과했다. 그럴 것 같았다.

그들은 결국 나만의 사형수가 되지 못했다. 아니, 되지 않았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헤어지고 나면 그들을 가만 두기 싫어진 나의 변덕 탓이기도 했다. 찍어준 사진을 받기 위해서라도 연락처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은 사실 핑계였다.


우리, 다시 만나면 또 어떠한가.


내 모든 이야기를 그들에게 쏟아냈지만 그것은 그저 여행지의 짜릿한 분위기에 취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숨기고 싶은 습관을 공유하는 것.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 숨기기 급급했던 이야기를 토해내는 것. 이 모든 것이 여행 그 자체였다.



파리를 거쳐 로마, 그리고 피렌체에서 만난 H는 한국에 돌아와서 겨우 한 번 봤다.

그를 더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그는 우리와 계절이 반대인 어느 곳으로 오래 떠난다고 했다. 응원하고 싶은 삶이었다. 나는 쉽게 저지르지 못하는 삶이기에 더욱 그랬다. 나이와 살아온 과정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을 했던 그는, 잔도 없이 나누어 마신 와인만큼이나 진하고 독한 사람이었다. 감히 섞일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다시 찾은 일상이 지겨워질 때쯤,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좋지만 생각보다 힘들어 보이는 타지 생활에, 나와 다른 계절을 살고 있는 네가 부럽다는 말을 차마 전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곧 돌아온다고 했다. 얼마큼 자랐을까. 그에게 나는 얼마나 성장한 사람으로 보일까. 우리가 다시 만나 나눌 이야기는 그때일까, 지금일까, 아니면 앞으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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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기 싫은 음식이 있다. 같이 마시고 싶은 술이 있다.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보다 이제는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건넸는지를 떠올리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될 거라는 숱한 위로가 아니었다. 마치 위로 자판기라도 된 양 똑같은 위로의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아무도 해줄 수 없는 말을 건넨다는 것. 당신은 사형수가 아니므로 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신이 여행자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여행지가 좋아서 다니는 여행보다는 사람을 생각하는 여행을 다녀야겠다고 다짐한다. 일종의 과업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는 마쳐야 하는 그 여행의 끝에 아주 작은 일부로 남고 싶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내 손에 쥐어진 것이 당신과 같은 사람들의 전화번호이듯, 여행의 일부를 함께 했던 그들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자주 바뀌는 휴대폰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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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꼭 다시 오게 된다는 말. 그 말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꼭 다시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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