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는 어느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도시랍니다.
피렌체는 내게 막연한 도시였다. 계획에도 없었거니와 너무 작아서 바쁘게 걸음을 옮기면 하루라도 충분한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고대 문명과 역사가 좋아서 로마에만 머무르려 했던 내게 동행의 손길은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피렌체로 같이 가자는 말은 곧 영화가 되어 다가왔다. 마침 노트북에는 냉정과 열정 사이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 교복을 입던 시절, 주황색 하드 커버에 이끌려 읽던 책이었다. 원작 소설의 영화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소설이 영화로 나올 때면 놓치지 않고 보았다.
나의 상상이 영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원작을 얼마나 잘 반영했고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끊기지 않고 자연스러운가도 영화를 보는 관점이었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책을 읽으면서 막연히 머릿속에 떠올리던 주인공들의 표정과 대사를 실제 영화와 비교하는 것이었다. 책의 활자는 늘 내 머릿속에서 진짜가 되어 대사를 읊조리고 감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원작 소설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을까. 영화는 썩 내 맘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피렌체에서 다시 영화를 보기로 했다.
하마터면 울 뻔했다. 작은 노트북으로 머리를 맞대어 보는 와중에 이토록 감정이 북받쳐 오를 줄은 몰랐다. 아침 일찍 서두른 탓에 노곤했지만 계획에 없던 피렌체에 와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고 있다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울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아무 생각 없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머릿속과 마음속을 모두 비워내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는데 근 한 달 사이 마음은 모두 다시 찼으니 말이다. 결국 엔딩 크레딧을 보지 못한 채 노트북을 껐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영화의 끝은 귀국해서 다 볼 수 있었다. 아주 겨우.
그 대신 내가 영화를 한 편 찍고 오면 어땠을까. 사실 나는 그런 배포도 자신감도 없었기에 누군가 당신의 쥰세이가 되고 싶다는 말을 건네더라도 웃으며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나를 때로 대담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그것은 언제나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였다.
피렌체에서의 시간을 떠올리면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회전목마가 돌고 도는 이 광장을 너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 것은 아닌지. 잔도 없이 팩으로 된 와인을 사서 왜 거리에서 마시지 않았는지. 광화문 한복판에서도 팩 소주를 마셨으면서 왜 미켈란젤로 언덕에서는 그러지 못했는지 말이다.
두오모는 오르지 않았다. 오를 수 없었다. 내게는 쥰세이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두오모는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피렌체를 찾을 이유가 생겼다. 그때는 함께 손 잡고 그 많은 계단을 오르고 싶다. 이곳이라면 사랑을 해도 좋을 것 같으니.
피렌체는 분명 어느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마법 같은 도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