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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Sep 01. 2018

뻔한 그리움

나는 그래서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그리움이 없었다. 그리움이 없다는 것은 그리워할 대상이 없다는 말이었다. 이제는 부를 수 없는 돌아가신 엄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애틋한 연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도시 사람들은 그리움을 모두 전구에 매달아 놓는 것일까. 하마터면 훔쳐올 뻔했다. 무엇인지도 모를 그것을.

다만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면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여행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뿐이었다. 아니, 그것은 그리움보다는 차라리 그저 일종의 질병과도 같은 역마살이겠다. 그래서였을까. 누군가는 나의 여행 일기에 그리움이 없다는 말을 전했다. 아주 쉽게 인정을 했다. 여행하는 매 순간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나의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리움이 무엇인지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동경하고 무언가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실현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곧 그리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모든 감정은 내 안에서 돌고 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다, 싶을 때 간혹 툭, 툭, 감정이 밖으로 떨어져 나온다. 전해지지 못한 것은 고스란히 상처가 된다.

손아귀에 쥐고는 떠날 수 없어서 놓고 온 것들과 만나지 못해서 보고 싶은 사람들. 그런 것들을 결코 소유하지 '않기' 위해서 떠난 나 같은 사람들은 느끼기 어려운 게 그리움이다. 나는 그리워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리움이 싫었다. 결국엔 그 감정을 스스로 안에서 갈무리하지 못하면 곳곳에 상처가 남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감정을 모두 표현할 수도 없거니와 표현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때로는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결국 그리움을 비롯한 어떠한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엄청난 체력과 기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내가 떠안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그리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적당히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말이다.


작은 돌멩이야말로 내가 갖지 못한 그리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나브로 내게 젖어들고 있었다. 절대 가져가면 안 된다는 어느 해변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몰래 주머니에 넣을 때,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어떤 작은 숍 안을 들여다볼 때, 걷다가 걷다가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볼 때, 사람들이 아주 많이 들어오는 유명한 성당 안을 혼자 서성일 때. 그것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뿐, 나는 무수한 그리움을 마주했다. 그동안은 텅 빈 머릿속에서 꺼내올 것이 없었으므로 오로지 내가 본 그 순간의 장면만 기억했던 것이었다.


너무 뻔한 그리움이라서 나는 알지 못했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리움'이라는 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너를 알기 위해,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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