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아 Mar 04. 2020

그는 정말로 그곳에 있었을까.

당신의 찬란할 미래를 위하여. 안녕, 빈센트.

하필 비가 왔다. 알지도 못하는 불어를 두 시간가량 들어가며 스마트폰에 의지해서 도착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어쩌면 그 누구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고흐, 그를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 파리의 여행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우산은 없고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역은 언제나 어딘지 쓸쓸하다. 얼마나 많은 이가 오고 갔을까. 얼마나 많은 기다림과 헤어짐에 젖었을까.

한참을 역에서 서성였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무사히, 그리고 이 비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느려질 때를 틈타, 프랑스 시골집의 처마를 우산 삼아 열심히 뛰었다.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괜찮은 식당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비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이곳은 비가 와도 좋다고 생각했다. 현지인들이나 들락날락할 만한 식당을 찾아 들어가 샹그리아 한 잔과 치즈를 오물거리는 순간이었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으며 그저 남들이 보는 만큼 보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림보다는 차라리 글을 더 좋아했다. 그림은 내게, 아주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영감의 일부에 불과했다. 시작은 남들처럼 유명한 작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었다. 고흐와 모네. 유독 프랑스를 동경하는 나였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물론, 고흐는 네덜란드 출신의 '프랑스' 화가,라고 소개가 되곤 하지만 말이다.

보고 있으면 자꾸만 밤이 그리워지는 그림. 네덜란드도 프랑스도 아닌, 뉴욕의 MOMA에서 만났다. 

보다 조금 더 좋아하는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작품에 특별히 감명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일생이 좋았다. 그를 사랑한 주변 인물이 부러웠으며, 그가 지닌 열정에 질투가 났다. 고흐는, 내게도 정신적이고 물질적으로 지주가 된 동생 테오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 하는 고민에 자주 젖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그와 그의 곁에 나란히 묻힌 테오의 무덤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비가 그친 뒤에도 여전히 조용한 동네였다. 이곳에서는 항상 고흐의 죽음과 그의 일생을 추모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축축해진 도시는 마치 고흐의 슬픈 삶 같았다.

낡은 나의 구두와 그의 발자취가 마주하는 순간.  구름이 걷히고 다시 이 마을을 밝히는 시간.

그의 발자취를 따라 만들어진 지도는 이미 내 가방 속에 있었고 나는 무작정 걸었다. 그동안 나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또 질투가 나기도, 때로 지극히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는 비록 살아생전에 빛을 보지 못한 예술가였으나, 사후 그의 작품과 일생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배경에는 열정과 진심 어린 애정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은 성당에서 그의 이름을 새겼고 작은 초 하나를 밝혔다.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생전이면 좋겠지만 언젠가 내가 사라진 후에도 영원히 남을 글을.

그는 정말로 그곳에 있었을까.
일 년. 형을 보내고 꼭, 일 년이었다. ... 나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쓸 수 있을까. 


이전 08화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면 보이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