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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Sep 07. 2018

우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어둠이 있으니 빛날 수 있는 것.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 야경은 진리다.


무수한 여행 사진에서도 어떤 도시의 매력적인 야경 사진은 빠지지 않는다. 가장 찍기 어려운 시간이자 장면이고 그렇기에 때론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는 사진을 그다지 잘 찍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야경 보는 것만큼은 매우 좋아한다.

흠뻑 젖은 파리 어느 바닥에 아주 오묘한 색의 불빛이 반사된다. 우리가 아는 그 잘생긴 도깨비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걸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밤의 모습이다.

인물사진이야 당연히 적당한 빛이 들어오는 낮이 제격이지만 사람보다 주위를 보기에는 밤이 좋다. 그도 그럴 게 사람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주변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의로나 혹은 자연적으로나 사람을 가리게 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도시의 도로를 가로지르는 차들이 다니고 그곳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다리 위의 가로등이 발광하고 있다. 그것들이 더 잘 보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어둠이 있어서이다. 태양이 없어 어둡기 때문에 도시의 빛이 더 반짝이는 것이다. 모든 빛나는 것들은, 어둠이 있기에 가능하다.


야경은 말 그대로 밤의 경치이다. 사실 우리는 야경이라고 하면 밤에 보는 도시의 빛나는 불빛들과 하늘의 빛나는 별과 달을 이야기한다. 그것들도 물론 야경이지만, 나는 진짜 밤의 풍경을 야경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하늘과 모두가 잠들어있는 고요한 작은 도시까지.

별과 달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 이 순간이 아니라면 마주할 수 없는 것은 모두, 그렇기에 소중하다.

밤은 실로 낮보다 대단한 힘을 가진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아주 구수한 어느 집의 냄새까지 오감을 자극한다. 낮에 비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니 다른 감각이 발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코 희한한 일이 아니거니와 대단한 발견도 아니지만, 나는 그리하여 밤의 기운을 믿는다. 어둠은 오래된 어떤 기억을 꺼낼 수도 있고 나를 저 멀리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 불빛 끝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내 마음이 불타고 있잖아요. (feat. 문리더)


동일한 것을 보아도 낮에 보는 것과 밤에 보는 것은 달랐다. 하루에 두 번이나 찾아가 본 것은 다름 아닌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명작인 카사 바트요였다. 그 외관만으로도 충분히 가우디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던 카사 바트요는 낮에 일일 투어로 보느라 제대로 보지 못해 지나는 길에 다시 보러 갔다. 낮에는 좀 더 밝고 아이 같은 느낌이었다면 밤에는 어딘지 무서운 동화 속 같았다. 건축물 하나로도 이렇게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 시간의 차이였다.



다른 느낌을 갖는 사물처럼 어쩌면 사람도 낮과 밤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처럼 말이다. (feat. 강남스타일/싸이)


사실 나는 어느 도시든 밤의 거리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가는 일은 드물었다. 제대로 보기 위한 야경 명소를 갈 때에는 반드시 동행을 구했다. 아쉽게 발길을 돌린 곳도 있었다. 아마 그 나라를 그 도시를 다시 가게 되면 겁 없이 밤길을 걸어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것은 다시 꼭 그곳을 가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분명 그 도시의 밤은 낮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내게 찾아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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