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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Aug 22. 2018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면 보이는 것

왜 있잖아, 마음의 눈이라는 것 말이에요.

어딜 가든 무얼 먹든 사진으로 남기던 때가 있었다. 사진밖에 남는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최근 여행 바로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여행을 했다. 혼자 하는 해외여행을 시작한 지 4년째.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그 해였다. 나는 무려 4년 동안이나 뷰 파인더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사진들은 그저 컴퓨터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는 일 외에는 쓰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다녀온 곳을 잊었다. 구글 지도의 핀은 늘어갔는데 기억 속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사실 사진은 글을 쓰기 위한 기억의 매개로서 매우 훌륭했다. 사진을 찍은 장소와 시간이 모두 함께 기록되므로 시간의 흐름대로 쓸 수 있는 여행기에는 최적이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몇 시에 어딜 가서 무얼 먹었는지, 그곳에서 누굴 만났는지, 그런 것들 뿐이었다.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만 급한 나머지, 나는 시간 순으로 나열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원하던 여행기가 아니었다. 내가 쓰려고 했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걷다가 힘들면 아무렇지 않게 벤치에서 쉬어보기도 하고!

많은 사진을 찍기보다 더 넓게 많이 보려고 노력했다. 어떨 때에는 너무 마음에 드는 곳에 오래 있느라 다른 것을 못 보는 경우도 있었다. 카메라에 담기는 사진의 양이 줄었고 또 분위기가 달라졌다. 내가 쓰는 글마저 다른 색을 띠기 시작했다.



길을 정하지 않으면 길은 더 많아졌다. 그만큼 볼 것 또한 많아졌다. 시선이 변했다.


나는 매우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공부를 할 때나 여행을 갈 때, 혹은 그냥 일상에서도 나는 철저히 계획을 했고 그대로 움직였다. 그게 내 목을 조여 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 목적지 없이 걷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스케줄대로 되지 않으면 조급해지던 나는 없었다. 물론 다음 행선지가 없으니 그때그때 찾는 것도 일이었다. 그럴 때에는 길 한복판에서 찾을 수 없어 근처 카페와 식당을 들어가면서 숨을 돌렸다. 찾기조차 귀찮을 때는 마음 가는 대로 걸었다. 지도를 보지 않고 다니는 것은 조금 무서웠지만 목적지 없이 걷는 것은 꽤나 신선한 방법이었다.



모델처럼 훤칠하게 생긴 S는 사진을 매우 잘 찍는 친구였다.

군대에 있을 때 사진 관련 책을 보고 이론을 쌓았고 전역 후에 카메라를 구입해서 혼자 열심히 찍으면서 실력을 쌓았다고 했다. 파리의 개선문 위에서 그에게 미러리스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가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고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는 지도 보았다. 그와 걸은 파리의 밤거리는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현장학습이었다. 내가 본 그는, 모든 것을 유심히 보고 아주 오랫동안 눈에 담는 사람이기도 했다. 생애 처음 하는 해외여행으로 유럽에 사진 찍으러 오기 위해 무수히 많은 알바를 뛰었다던 녀석. 그와 같은 대학생들의 젊음과 용기가 부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재정난으로 허덕이는 여행보다는 보다 여유로운 퇴직자의 여행이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 간사한 마음이었다.

그가 찍은 그 날 그 때 비 온 뒤의 파리. / 출처 www.instagram.com/sinjongi/

※ 상기 사진은 S가 찍은 사진으로 본인에게 게재를 허락받은 사진임을 밝힙니다.



사진을 많이 찍기보다는 그 순간을 좀 더 오래 보도록 하자.


일단 무엇이든 눈에 담는 연습을 하자. 그렇게 충분히 시간을 갖고 살폈으면 이제 천천히 셔터를 눌러도 좋겠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길에 머물렀던 순간이 사진으로 남게 될 것이다.

더불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자. 어느 작가는 말을 아껴 글을 쓴다고 했다. 나의 말을 아끼다 보면 상대의 이야기가 들리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한할 테니까 말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여행을 더 깊어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나와는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들과 그들의 다양한 시선이라는 것쯤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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