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반대말

여행하지 않음의 미학.

by 리아

여행의 반대말은 일상일까? 이분법적인 사고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나만의 모토를 가지고 있다.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그런 의미에서 내게 여행과 일상은 아주 비슷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행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나는 여행의 반대말이 '여행하지 않음'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한다'의 반대말이 '싫어한다'가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다'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여행을 하는 시간보다 여행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다. 나 또한 매우 평범한 사람으로 여행 중이지 않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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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동안 모든 순간이 여행일 수 없기에 우리가 여행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순리다. 그렇기에 여행을 하지 않는 순간을 견뎌내는 것마저도 여행자가 감내해야 할 한 부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시 여정에 오르는 길이 순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넘어져서 무릎팍이 깨지고 발목을 삐끗하더라도 치료를 제대로 받고 재충전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면 얼마든지 다시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이도 다쳤었다. 작은 장애물에도 쉽게 넘어지는 부끄러운 발목을 가진 탓이었다.

반복, 반복, 반복. 지루하잖아, 똑같아 버리면.


여행에도 중독이 있다. 자신의 삶에 환기가 필요할 때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반복되다 보면 내성 생긴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과 같다. 이미 내성이 생겨서 어떤 여행으로도 이 무료함을 달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렇다 할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한 6개월에 한 번쯤은 해외여행을 가도 좋겠다. 잊지 말고 두어 달에 한 번은 국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추천하는 바이다. 무언가에 중독되는 것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으로부터 헤어 나오는 길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것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와 마음을 품고 떠난 여행에 중독되어 종국에는 떠나지 않으면 불안한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 마치 땅따먹기를 하듯 명소를 찍고 찍고 또 찍는 여행을 하는 것. 그저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한 도피처로 여기게 되는 것. 주객전도가 되어버리는 삶. 그것이 제일 위험하다.

한적한 동네에 가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실, 내가 그랬다. 이렇다 할 취미생활도 즐길거리도 없던 차에 짐을 꾸렸고 때론 아무 생각 없이 돈 쓸 곳이 필요해 비행기 표를 예매하기도 했다. 집과 회사를 반복하는 삶을 계속 살다가는 우울증이라도 걸릴 것 같아 과감하게 사표를 던진 적도 두 번이나 있다. 작은 것에도 나자빠지는 경우가 많아졌고 다시 일어서는 데에는 점점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차마 실행하지 못하는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도 얼른 더 많은 나라를 가야겠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목적이 없는 여행을 자꾸만 떠나려고 했다. 결국 여전히 그 의미 없는 중독에서 헤어 나오려고 노력 중인 사람이 되었다. 나를 좀 더 사랑하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계획하던 여행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


세계지도에 여행했던 나라를 좋아하는 색깔로 칠해보기.

자석과 엽서 혹은 작은 기념품들을 보물상자에 넣어두기.

사진은 꼭 인화해서 앨범에 껴놓기.

지치고 힘들 때 보물상자를 꺼내보고 앨범을 열어보기. 단, 가아끔.

재미있고 즐거웠던 일은 단 몇 자라도 적어보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가끔씩 오래 보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곳의 엽서로 편지 쓰기.


여행을 가되 자신을 놓지는 말자. 다음 여행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불안해하지 말자. 여행하지 않는 시간을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보내자. 누구든 작지만 사소한 몇 가지 일로 '여행하지 않음의 미학'을 추구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다. 피할 수 있으면 즐기라고 하니, 저렇게 보내는 날들도 즐기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글쎄, 혹 보다 단단한 정신과 유동적인 마음을 지닌 당신이라면, 어쩌면 저 행위들을 통해서 점차 여행과 여행하지 않음까지도 구분 짓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보내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 그들이 사는 방식. 그들이 여행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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