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학노트

침잠하는 '서정'과 내러티브의 차용

손택수, '이별하는 돌'

by 단정


이별하는 돌

돌을 쥔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온기가 있다

나의 체온이 건너간 것이다

건너간 것이 체온만은 아니어서

떠나는 거 서운치 않게, 지는 해를 따라가서

민박집에 주저앉았던 옛일도 떠오른다

입파도였나 국화도였나

찬찬히 낙조에 물든 밀물을 몰고 오는 시간

돌을 만지던 손을 코끝으로 당겨본다

희미한 물 냄새가 있다

비가 지나간 걸 기억하고 있는가

가서는 되돌아오고 되돌아오길 왼종일

보리밭을 불어가는 바람처럼

떨어지질 않는 걸음으로 저만치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매어준 머플러 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을 쥔다 누구의 체온인지 영

구분할 수 없게

# 손택수, 눈물이 움직인다 (창비, 2025)

...

침잠하는 '서정'과 내러티브의 차용 :

손택수 시인도 벌써 일곱 번째 시집을 내놓습니다. 향토어를 구사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시인이기도 하며, 이제 불과 몇 남지도 않은 '현역'으로서의 서정시인데... 도시적 정서나 새로운 감각 따위와는 전혀 무관히 꾸준한 시작활동을 해낸 덕분이기도 하겠죠.

몇 편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다소 궁핍한 연애담들이 '서정'일까에 대해 말을 주저하게끔 만들던 장본인인데, 이번 시집에서 드러낸 '이별'은 그것들보다는 한결 맑아졌고 또 한층 더 여운을 갖습니다. (근본까지 달라졌을 리는 만무하겠지만)

"나의 체온이 건너간" 돌의 온기를 가만히 쥔 채 시인은 "가고 있는 사람"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돌을 쥔 채. "누구의 체온인지 영 구분할 수 없게". 시인이 감지한 '이별'의 온도는 아마도 이쯤에서였을 것 같습니다.

최근 일련의 '서정시'들이 갖는 특징 중 하나로 (박준 등을 포함해) 일종의 '내러티브' 효과 같은 걸 주로 주목해 온 편인데, 이번 시집 역시 마찬가지의 테크닉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언어적 감성이 메말라버린 듯한 어떤 '기시감'이나 '고루함' 따위 등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새롭게 차용된 '내러티브'의 힘은 보다 더 설득력을 갖는 대신에 '과연 시란 무엇일까?'의 물음 앞에서는 다소 미약한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겠죠... 왜냐하면 훨씬 더 발달한 '구도'나 '미장센'을 갖는 장르들도 제법 존재하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다시 '서정'은 언어의 천착을 통해서 무언가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문제가 남습니다. 현대시가 갖는 꽤 큰 딜레마이기도 할 겁니다.

그래도 비교적 잘 머금은 '정서'는 마치 돌의 온기처럼 따뜻하면서도 슬픈 이야기를 제법 잘 떠올리게 만듭니다. 이 어려운 미덕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나를 놓고 모든 시인들이 주력해야만 하는 문제가 바로 눈앞에 있고요... 그건 아마도 점점 더 '산문화'되어가는 이 경향을 어떻게 또다시 비틀어낼 것이냐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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