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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ul 04. 2018

아가야, 엄마랑 유학 갈까?

8개월 아기와 본격 스위스 유학생활 시작


두 달 전 신청했던 스위스 가족 동반 비자(Family Reunion)가 무사히 나왔다. 친정엄마는 관광비자로 3개월까지 체류가 가능하기에 따로 비자 신청을 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배우자가 한국에서의 업무 때문에 스위스에 체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대신 친정엄마와 자녀의 비자를 신청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이것도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워나가는 과정이겠지.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상황(아기를 데리고 스위스 유학을 떠나는 경우)에 처한 분이 있다면, 공식적으로 배우자를 동반하는 것의 득실을 다시 한번 따져보고 선택하길 권하고 싶다. 



배우자 초청의 장단점


스위스 생활과 육아를 함께할 동반자가 있다는 어마어마한 장점. 고생도 함께해야 반으로 줄지 않을까. 


비자 걱정 없이 3개월 이상 장기 체류 가능우리 가족의 경우 내 거주증 유효기간에 맞춰 2월~9월간 체류 가능한 거주증을 발급받았는데, 신랑은 그 기간 대부분을 한국에 있었기에 큰 의미가 없었다.

 

- 비싼 보험료: 배우자가 학생도 직장인도 아니라면 필수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보험료의 부담이 크다. 우리의 경우, 신랑은 한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제네바에 거주 신청을 했기 때문에 월 30만 원이 넘는 보험료를 납입해야 한다. 나의 학생 보험과 아기의 건강보험까지 합하면 월 50여만 원이 보험에 지출되는 상황이.. (그렇다고 한국 보험료를 안 내는 것도 아니다) 보험 가입 및 보험료 납입을 면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관련기관 담당자와 상의 중이다. 부디 성공하길..


- 보육기관 우선권 없음: 나는 풀타임 학생이고 배우자가 스위스에 체류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공립어린이집 대기 1순위가 되었다. 스위스 공립 크레쉬는 임신 3개월부터 대기를 걸어놓을 정도로 자리가 잘 안 나고 오래 기다리기로 유명하다. (배우자가 전업주부면 거의 자리를 안 주는 듯) 스위스인과 결혼한 친구도 딸이 벌써 다섯 살인데 한 번도 공석이 있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운이 좋은 건지, 나의 경우 대기 신청 한 달만에 연락이 와서 다음 학기부터는 공립 보육기관에 보낼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저렴한 가격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남기겠다.






8개월 아기와 16시간 비행, 잘 해낼 수 있을까?


남편이 이사와 정착을 도와주러 잠시 제네바에 다녀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친정엄마, 남편과 아기, 나 이렇게 넷이 떠나게 됐다. 우리의 항공편은 오전 11시 1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해 오후 2시 10분에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하여 4시 50분 비행기를 타고 현지시각 저녁 7시 5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16시간 여정이었다. 


아기를 포함해 각자에게 허용된 수화물은 23kg짜리 하나씩이었고, 우린 여기에 부치는 짐을 하나 더 추가했다. 즉, 우리가 가져가야 할 짐은 23kg짜리 수화물 5개와 기내 캐리어 3개, 각자 등에 짊어진 백팩 3개, 12kg짜리 디럭스 유모차 한 대, 16시간 동안 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든 기저귀 가방, 그리고 혼자 기지도 서지도 못하는 8개월 아기. 할머니든 엄마든 한 명은 전적으로 아기를 케어하고 나머지 둘은 이 많은 짐을 이고 지고 옮겨야 했다. 


아기와의 장거리 비행은 처음이라 걱정되는 마음으로 최대한 편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했다. 


1) 출발 전: 항공사 배시넷과 베이비밀 가능 여부 확인

내가 탔던 폴란드 항공은 키 75cm 이하, 체중 10kg이 넘지 않는 아기에 한해 배시넷(bassinet) 신청이 가능했다. 신청해 실제 이용해보니 12kg까지는 견딜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고, 아기가 뒤척일 공간이 좀 부족하다는 걸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항공사 담요 외에도 비행기가 그려진 아기 베개, 폭신폭신한 아기 이불까지 따로 제공됐다. 비행 중 먹을 이유식은 따로 준비해 갔기 때문에 베이비밀은 신청하지 않았다.


2) 공항에서: 패스트 트랙 활용, 유모차는 게이트 앞까지!

인천공항은 교통약자를 위해 출국 수속을 빨리 할 수 있는 패스트 트랙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짐 부치고 체크인할 때 얘기해 패스를 받았다. 우리는 7세 미만 유소아를 동반한 대상자에 해당됐고, 동반 2인까지라고는 하나 실제 우리는 동반 3인이었음에도 이용이 가능했다. 환승해야 하는 바르샤바 공항에서도 유아 동반 여행자가 유럽연합 입국 심사를 빨리 받을 수 있도록 유모차 줄 서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유모차는 체크인할 때 부치지 않고, 게이트 앞까지 가져가면 비행기 탑승 바로 전까지 사용할 수 있다. 경유지에서 유모차를 받을 것인지, 도착 공항까지 아예 부칠 것인지도 미리 확인해야 한다. 나는 환승 대기 시간이 있었고 아기 낮잠 시간에 편안하게 재우기 위해 경유지 공항에서 받는 옵션을 택했다. 미리 얘기하지 않으면 도착지까지 보내버릴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3) 기내에서: 귀마개, 포대기(혹은 아기띠), 간식 종류별로 챙기기

혹시 몰라 이착륙 시 귀 통증에 효과가 있다는 아기 귀마개를 준비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답답해 보챌 상황을 대비해 포대기와 아기띠도 챙겼다. 장시간 비행에 지루해할까 봐 간식도 과일, 과자, 요거트, 치즈 등 다양하게 준비했고 좋아하는 장난감도 여러 개 가져갔다. 그러다 보니 기내 짐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고, 성인 셋이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심지어 아기는 가져간 장난감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기내에 더 재밌고 새로운 것들이 많았으니까. 내 아이를 잘 파악하지 못한 엄마의 시행착오였다고 해두자. 


4) 도착 후: 목적지까지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아기를 차에 태울 때는 카시트를 써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스위스는 얼마나 엄격하게 단속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유아용 카시트를 갖추고 있는 택시가 있는지, 카시트를 준비하지 않았다고 승차거부를 하지는 않을지, 이 많은 짐과 유모차까지 어떻게 싣고 이동할지 큰 걱정이었다. 게다가 낮에 공항에 도착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결국 지인에게 아기와 친정엄마 픽업을 부탁했고, 우리 부부는 100kg이 넘는 수화물을 끌고 밴을 탔다. 스위스에서 아기와 몇 개월 더 살아보고 알았지만, 2세 미만 아기들은 보호자가 안고 타도 큰 무리가 없었다. 트램, 시내버스, 시외버스, 기차 모두. 




다행히 우리 아기는 그리 까다로운 아이가 아니었고, (비록 마지막 착륙 때 울긴 했지만) 외국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관심 가져 주는 걸 좋아했다. 이 날의 비행 경험은 내겐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번 학기가 끝나고 방학 중에 하나뿐인 동생의 결혼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친정엄마와 남편 없이 나 혼자 아기를 데리고 귀국해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어려운 걸 난 해냈다. 작은 성취의 경험이 쌓여 더 큰 도전을 가능케 한다는 말은 육아에도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이번 한 학기도 잘 해보자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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