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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y 06. 2021

Ep.11_온기가 필요했던 날들

호주 워홀러, 외로움과의 사투


#54번째날밤의일기
일만 하는 일상. 날은 분명 뜨거울 정도로 쨍쨍한데, 마음의 한기는 가시질 않는다. 사람의 온기에 굶주린 마음. 모처럼 쉬는 날 저녁, 영어 스터디 모임에 다녀왔다. 지난 토요일에 자전거 모임으로 처음 가 본 교회에서 열리는 모임이었다. 신은 믿지 않지만, 건강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선함은 믿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이를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의 환영, 그러나 요란하지는 않던, 은은한 따듯함이 좋았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보니 무심히 스쳤던 외국인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국적인 외모와 낯선 언어에 눈과 귀가 열렸을 뿐,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얼마나 큰 외로움을 느끼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겪어보지 않은 세상에서는 눈을 뜨고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먼 타지에서 이방인이 되고 나니 세상이 점점 커진다. 새로운 경험은 분명 이해의 폭을 넓힌다.

여전히 한편에 집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그럭저럭 잘 지내는 중이다. 잘 먹어 얼굴에 보름달은 질 줄을 모르고, 5-6일 내리 일도 하니 언제나 머리만 대면 잠에 드는 나날. 그럭저럭 잘 지내는 일상이  아니라, 누군가 안부를 물어보면 "아유, 나는 너무 잘 지내~"이라고 활짝 웃으며 답하는 날들이 되었으면.










어느덧 호주에서의 생활이 3개월 차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매일같이 7-8시쯤 눈을 떠 침대에 누운 채로 발목을 돌렸다. 그렇게 스트레칭하며 몸을 깨우는 것이 아침을 시작하는 주된 방법이었다. 그러다 어느 때쯤부터는 5-6시에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함께 사는 고양이 밀리가 언제부터인가 내 방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열어주지 않으면 하염없이 울며 우당탕탕 문을 사정없이 두드려대는 통에 도무지 안 일어나고는 배길 수 없었다. 살짝 못 들은 척도 해봤지만 이 똑똑한 냥 친구는 기어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 곁에 털이 수북한 몸을 비비적거렸다. 그 일련의 행동들의 이유는 어서 밥을 달라는 것. 피곤함에 짜증이 올라오려 하다가도  보드라운 사랑스러움에 이내 사그라들기 일쑤였다. 하우스 메이트는 밀리가 자꾸 잠을 깨워 어떡하냐고 미안해했지만, 그 작은 생명체가 내게 곁을 한 껏 내어주는 것은 그저 좋았다. 그 집에 살기 시작한 때만 해도 내가 낯선지 어딘가로 숨어 얼굴도 비춰주지 않던 친구였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던 온기를 세 뼘 반 정도의 고양이로부터 전해받았다.



내게 온기를 내어주는 사람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시간 함께 하던 하우스 메이트, 호스텔에서 만나 의지가 되었던 친구, 나보다 빠르게 혹은 늦게 퍼스에서 워홀 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각자의 삶을 일구어 나가느라 바빴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쉬는 날이면 그중 한 친구를 만나 맛있는 걸 먹거나, 어딘가에 나가 걷기도 하고, 장을 보거나 청소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일상은 빽빽이 차 올라도 마음의 빈틈은 어찌 된 일인지 채워질 줄을 몰랐다. 무언가 새로운 일상을, 새로운 만남을 시도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피어올랐다.



첫 번째 시도는 현지 교회에서 하는 자전거 투어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교회에도, 자전거에도 큰 뜻은 없지만 친구가 교회에서 영어 스터디도 하고 이런저런 모임에도 참석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혹했을 뿐이었다. 또한 날이 하늘을 찌를 듯이 파랗고 좋은 날,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를 탄다니. 게다가 교통비만 있으면 된다니. 이방인 아니 장기 여행자에게 참으로 매혹적인 가격 착한 패키지 투어.



교회에서 빌려준 자전거를 각자 끌고 기차를 타고 해변과 항구가 가득한 프리맨틀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고 곳곳을 누비며 세찬 바람을 즐기다, 한 곳에 멈춰 서서는 누군가 싸온 김밥과 간식거리를 나누어 먹기도 했다. 알고 보니 거기 모인 열명 중 두세 명을 제하고는 모두가 이방인의 신분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 모임의 리더이자, 교회의 목사님이기도 했던 브리또였다. 그의 이름이 정말 브리또냐고 친구에게 재차 물었던 기억이 난다. 친숙하고 귀엽게 느껴지는 이름 덕분인지 처음부터 그가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이름과 다르게 아주 과묵하고 딱딱한 사람이었다면 과연 그를 친근하다 느꼈을까. 이름처럼 그는 처음부터 무척 밝고, 부드러운 성품을 진하게 풍기며 다가오는 사람이었다.



투어를 마치고 교회로 돌아가는 기차에 탔을 때 다가와 말을 걸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매주 이런 모임을 이끄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다고 했더니,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홀로 떠나와 외로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고 했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단어와 문장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아도, 그가 했던 말이 외로움에 한껏 움츠러들어 있던 내게 온기를 양껏 뿜어 주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때는 꽤 깊은 감명을 받아 순간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였는데 지금은 어렴풋해져 버린 기억이 아쉬울 뿐이다.



모임의 마지막쯤에는 그 모임에 봉사해왔던 한 남자분이 이제는 멀리 떨어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브리또는 그가 참 많은 도움을 주고 떠난다며 함께 지내온 날들에 대한 감사함,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그가 나아가는 앞날에 축복을 고했다. 떠나는 그는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았다는 듯 울먹이며 오히려 감사함을 표현했다. 투어 내내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이라 쉬이 곁에 가지 못하고 멀치감치 떨어져 있었는데, 그가 울먹이는 모습에 내 눈물샘도 무장해제되었다. 마치 남의 결혼식에 가서 눈물을 훔치는 듯한 청승맞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 덕에 나는 그 교회를 다시 한번 더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저 자전거나 타러, 영어나 쓰러, 여가나 즐기러 간 모임이었지만, 끝나고 난 순간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오로지 따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받은 온기에 마음이 꽉 찬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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