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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pr 13. 2021

Ep.10_잊지 못할 굴튀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대접하는 사람이어야겠다고.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물었다. 하루키는 자기소개서를 쓰려고 하면 막막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굴튀김에 대해 쓰려고 하면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꼭 굴튀김일 필요는 없다고, 뭐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내려 가보라고. 굴튀김에 대해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거짓말처럼 생기고야 말았다. 호주의 그 한식당에서.



식당 오픈을 처음 해보는 날이었다. 어느 서비스직이나 비슷할 테지만, 오픈, 미들, 마감의 업무가 조금씩 다르다. 주로 마감을 하던 나는 처음으로 오픈 조에 투입되었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미리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물었는데, 이런저런 것을 설명해주며 그리 어려울 것은 없을 거란 답변을 주었다. 그렇다, 어려운 일은 없었다. 처음이라는 것이 언제나 정신없을 뿐.



먼저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의자를 내린다. 그리고 테이블에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수저통과 티슈, 소금과 후추를 각을 잡아 올려놓는다. 이른 아침부터 박박 닦인 불판을 착착 올려놓고, 고기를 구울 때 타지 않게 물을 조금씩 부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먼지 쌓인 테이블을 열심히 닦으면 오픈 준비의 반은 끝이 난다. 이렇게 하면 거진 1시간이 가는데, 나의 오픈 파트너는 밥을 짓고, 수저의 물기를 닦거나, 쌈을 닦아 접시에 미리 담아 세팅하는 등의 일을 했다. 그녀를 도와 함께 쌈과 장을 세팅한다. 그러다 보면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준비를 하면서 주문도 받고 서빙도 해야 한다. 멀티플레이의 향연. 아니 버벅버벅 렉이 걸려 잘 따라주지 않는 나의 정신과 신체의 향연.



후. 겨우 점심 러시까지 근무하고 이제 우리가 점심을 먹을 시간. 너무 정신이 없던 터라 브레이크 타임인 것도 잊은 채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혜진 씨, 밥 먹어요." 매니저님이 쉬는 시간이 왔음을 알리셨다. 그때서야 겨우 숨을 돌리며 앞치마를 벗었다. 호주는 근무시간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문화였다. 내가 시간도 오버해 열심히 일하면 다른 사람의 노동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격이 된다. 호주 내에 있는 한인 업체 중에는 그런 것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곳도 많다지만, 내가 일하던 곳은 비교적 잘 지켜지는 편이었다.



때마침 일부 주방 식구들과 쉬는 시간이 같아 함께 점심을 하게 되었다. 식사시간엔 이런저런 이유로 손님 상에 나가지 못한 것들을 먹기도 하는데 그날은 굴튀김이 상에 올라왔다. "굴튀김 좋아하니?" 셰프님이 물었다. 네, 아니오로 얘기하는 것이 왜인지 심심하게 느껴져 "없어서 못 먹죠~"라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셰프님이 굴튀김이 그득한 그릇을 내쪽으로 밀며 "그럼 이거 다 먹어"라고 했다. 이것이 웬 호의인가. 그저 안 먹어도 그만이었지만, 손님들이 그렇게들 시키는 인기 메뉴인 그 굴튀김을 모두 건네주는 그 마음이 중요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 이어진 말들에 분이 터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혼자 먹기는 마음이 그래서 "셰프님은 안 드세요?"라고 물었더니 "아 난 냉동굴은 안 먹어. 비리거든." 하며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해나가는 그.



아, 이것은 냉동 굴이었구나. 냉동 굴은 비리구나. 그래서 그 많은 냉동 굴은 내게 내밀었나. 그 말을 듣고 베어 물은 굴 한 입에 입안이 온통 비린 맛으로 가득 찼다. 이제까지 굴을 비리다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 굴은 정말 무지 매우 비렸다. 유통기한이 다 된 굴이었을까.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이었을까. 이런 걸 손님들이 그렇게나 많이 주문한다고?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유쾌하지 않은 맛과 기분 때문에 굴튀김에 자연스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다 먹어야 돼 이거, 의무야 의무"라며 농담투로 던지던 셰프님. 지금 생각해도 과거의 나를 뜯어말리고 싶지만, 나는 결국 그 굴튀김을 꾸역꾸역 다 먹고 말았다.



밥을 먹고 남은 시간에는 식당 안에서 쉬기도 하는데, 그날은 정말이지 그럴 기분이 아니어서 1층에 한 카페로 내려가 앉았다. 입안을 헹궈내기 위해 커피를 들이켜는데 비린내가 훅 올라왔다. 동시에 짜증과 서러움도 비린내에 함께 실려 왔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왜 적절하게 드러내지 못했을까. 아니 적어도 굴튀김이 비려서 먹고 싶지 않다고 거절은 할 수 있었을 텐데. 끝까지 농담조로 굴튀김을 먹으라 했던 그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내 탓이지, 뭐.' 


그렇게 마음먹었다.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는 연습을 하겠다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불쾌한 상황에서도 허허거리지 않겠다고. 남이 나에게 해서 기분 나쁠 일은 절대 나도 남에게 하지 않겠다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는 사람이어야겠다고. 굴튀김이 맛이 없어 옆으로 미는 사람이기보다, 언제나 너무 맛있어서 무언가를 나누는 사람이어야겠다고.

 



(공원 산책을 가다가 마주한 멋진 문구.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


거짓말처럼 무지개도 드리웠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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