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저 맘에 안 들죠?
20191104
000에서 처음 일하는 날, 처음 치고는 꽤 좋았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솟아있던 어깨가 아직까지 아프다.
마지막에 마감하다 후추통을 깨긴 했지만..
00 씨가 조용히 다가와 괜찮으니 얼른 같이 치우자고 해줬고,
xx 씨가 자신도 그랬었다며 작아진 나를 위로했다.
착한 친구들.
20191109
일을 한 지 4일째
그래도 이름이 뭐냐 몇 살이냐 어디 사냐 물어봐주시는 셰프님 덕에 살 맛이 조금 났고,
집에서부터 들고 오신 듯한 보온병에 담긴 커피 한잔에 감사했다
새로운 일을 구할 힘이 생긴 걸까 다시 검트리랑 카페를 들어가 본다.
그러다 제주 일자리도 검색해본다.
그곳에 가면 내가 만족하는 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삶을 꾸릴 수 있을까.
얻은 것도 많을 텐데 잃은 것들에 초점이 맞춰지는 나날들.
잃은 것의 부피가 더 커서일까.
20191110
피곤한 채로 출근해서 그래도 즐겁게 퇴근했다.
역시 사람에 약한 나.
같이 서빙하는 00과도 몇 마디 나누고,
매니저님이 계산하는 법도 편안히 알려주시고,
마지막에는 xx셰프님이 해주신 맛난 카레에 밥도 먹었다.
갈 때 태워주시기까지...!
관계가 편해지니 조금 살맛이 난다.
머나먼 남의 나라에서 까만 유니폼에 짙은 청 앞치마를 두르고 비빔밥이 들은 돌솥과 고기 불판을 나르게 되었다. 처음엔 어째 식당 안에서 걸어 다니는 것조차 어색했다. 신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색한 걸음을 재촉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양 껏 찾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은 한번 움직여도 되는 일을 세네 번 움직여야 하는 '서투름'의 다른 말이었다. 양 껏은커녕 실수를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것이었겠지. 나의 경우에는 일을 배우는 것도 어렵지만, 일을 못해냈을 때 끼치는 민폐가 더 어렵다. 실수하지 않으려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하루 끝에는 어김없이 딱딱하게 솟은 어깨를 일당으로 받았다.
함께 서빙을 하는 친구들은 앳되어 보였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달인이 따로 없었다. 큰 사각 양은 쟁반에 정해진 찬 거리를 빠르게 착착 올리던 친구,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중에도 배달 포장까지 동시에 척척 해내던 친구, 손님이 북적여도 당황한 기색 없이 개나리반 통솔하듯 능숙하게 손님들을 이끌던 친구. 대체 얼마나 일했길래 이렇게 달인들인가 싶어 물으면,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고 길어도 6개월 남짓이었다. 에? 그것밖에 안됐는데? '여긴 내 손안에 있소이다'의 느낌이라고? 의아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 한 달을 채우며 끄덕거릴 수 있었다. 한 달이면 내 손으로 들어오는 일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턱을 들고 '에게~ 고거 가지고?' 하겠지만, 당시에는 고개도 못 들 정도로 작은 마음이 되던 처음.
사실 일보다는 사람이 관건이었다. 바쁘지 않을 때는 천사 같던 친구들도 바쁠 때는 한껏 써늘한 기운을 풍겼다. 그럴 때는 알아서 기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니 바쁠 때건 안 바쁠 때건 언제나 써늘한 친구도 있었다. 언젠가는 그 써늘한 기운에 북받쳐 "언니, 저 맘에 안 들죠?"를 외치고 싶었지만, 실제로 외치는 건 퇴근 후 일기장 속에서나 였다. 따지고 보면 언니는 나였지만, 한껏 여유로운 척하려다가도 쭈글거리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그걸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려나. 사람 만나는 게 일이었던 과거를 숨기고 싶을 정도로,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기 어렵던 시간. 미움받을 용기를 내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미움을 얻고 있다고 느껴지던 때. 사랑만 퍼주던 동료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던 밤. 그러다가도 힘내라는 눈빛, 토닥이는 말 한마디, 나눠 받은 커피 한 잔에 얼어붙은 맘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르르 녹았다.
그렇게 나는 출근 전에 과자, 초콜릿, 커피 등등을 가방에 주섬주섬 넣었다가 고마운 사람들의 옆구리에 쿡쿡 찔러 넣었다. 당장이라도 막힐 것 같던 내 숨을 트여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자 나의 생존 의지였다. 남들 두세 번 줄 때 언제나 써늘하던 친구에겐 큰맘 먹고 한번 주게 되었던 나는야 작은 마음 사람. 으휴. 키는 작아도 마음 씀씀이는 큰 사람이 되어야지, '나' 친구야?
한없이 쪼잔해지다가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순간을 자주 만났다. 마음이 치유되던 대부분의 순간은 손님들로부터 왔다. 쌈을 어설프게 싸 먹으면서도 눈을 뒤집고 콧소리로 한껏 내며 맛있음을 표현하던 그들. 김치전과 잡채, 코코팜 하나에도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던 얼굴을 도무지 잊을 수가 없다. 막걸리와 유리잔을 내놓으니 고개를 내저으며 진짜 막걸리 잔을 달라던 청년도 있었고, '사랑의 불시착'을 봤냐 물으며 눈에 하트를 내 걸던 할머니도 있었고,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수줍게 대화를 시도하던 소녀도 있었다. K-컬처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게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작지만 강한 나의 조국 덕분에 한번 더 웃음 짓던 기억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여느 친구들처럼 달인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한 커플 손님에게 들은 한마디 덕에 달인이 된 기분을 잠깐 누리던 날이 있었다.
"The best customer service I’ve ever had. I wish I could give you a tip."
(내 생애 최고의 서비스였어요. 팁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기본 팁 문화가 없는 호주인데도, 가진 게 카드밖에 없어 팁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던 손님. 그 말 한마디로 하루 일당이 팁이 되는 기분인 걸 그들은 알았을까. 잠깐의 눈빛과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그때. 누군가에겐 어리바리 신참인 웨이트리스, 누군가에겐 서비스의 달인인 웨이트리스. 그저 사람과 사랑에 굶주려 발이 부르트고, 신발 옆창이 다 떨어지도록 열심히 뛰어다니던 웨이트리스였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