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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pr 01. 2021

Ep.7_퍼스의 노바디, 구직 대작전(1)

과연 내 서류가 읽힐까. 그대로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먹고사는 고민은 어디에 있든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 기준에서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의 기준은 스스로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데 드는 비용을 다 감당하는 데 있다. 민증을 받았다고, 대학에 들어갔다고, 스무 살이 넘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건강보험료 정도는 내줘야, 아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것이지. 허허. 호주로 떠나오면서 건강보험료 내는 걸 잠시 멈춰야 했는데, 왠지 잠시라도 어른의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 홀가분했달까. 사실 해외에서 필요한 보험을 드느라 이미 목돈을 지불한 후였지만. 조삼모사일지언정, 기분이 다르다는 게 중요하다. 세상 사는 데 기분이 얼마나 중요한 지!



우선 채용 정보를 확인해야 했다. 워홀 선배들은 무조건 이력서를 들고 다니며 직접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우선은 이력서가 없으니 먼저 그곳의 생태를 둘러보자는 심산이었다. 운이 좋게도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호주 아주머니로부터 채용 사이트 정보를 얻었다. 어리바리하게 앉아있는 내가 궁금했는지 먼저 말을 걸던 아주머니. 강한 액센트에 결국 웃으며 알아듣는 척할 수밖에 없었지만, 먼 타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한 마음은 어떠한 해석 없이도 금세 알 수 있었다. 마음은 역시 마음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법. 그녀의 따땃한 마음을 든든히 먹고 사이트에 접속했다. 호주의 넘버원 채용사이트라는 '씩(seek)'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인디드(indeed)' 그리고 역시나 호주 만능 치트키, '검트리(Gumtree)'였다.



집을 처음 구 할 때와 비슷했다. 우선 괜찮아 보이는 공고를 발견하면 지도로 그곳의 위치를 파악했다. 뚜벅이인 내가 출퇴근할 수 있는 위치인가 가늠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몇 개의 공고를 보지도 못했는데도 하루가 갔다. 그러면 그다음 날 또 같은 자리에 앉아 탐색하기를 며칠, 몇 군데를 타깃으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쯤 내 분신과도 같았던 노트북을 식탁에 두고 앉아 매일같이 쓰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시작'했다고 하지만, 어휴 그때는 정말이지 앞이 까마득했다. 처음 한 문장을 쓰기까지 얼마나 허송세월을 보냈는지. 우리말로 이력서를 써본지도 꽤 되었던 데다 호주에서는 이력서를 어떤 형태로 만드는지에 대한 정보가 1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국가에서 이미 워홀 경험을 한 친구들의 조언을 통해 본인이 잘 드러나면서도 심플하게 적으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지금 보니 너무 당연한 말), 그 정보만으로 단숨에 쓰는 걸 시작하기에는 내가 돌다리를 너무너무너무 두드리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한번 건널 때마다 한 5번 이상은 두드리는 사람. 다른 말로는 쫄보.   



찾다 보니 이력서 템플릿을 선택해서 작성을 도와주는 영문 사이트가 있었다. 조금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아깝지 않았던 그때. 이곳에서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데 연료값 정도 내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을 그곳에 매달려있다 보면 내 힘으로 나오기 어려운 멋들어진 느낌의 이력서가 한두 장 나왔다. 그렇게 이력서 공장에서 뚝딱뚝딱 서류가 완성될 때마다 공고에 있는 메일 주소로 지원하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그 집에서의 일주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문자와 이메일 함은 숨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그러다 한 곳에서 면접을 보러 오겠냐는 문자가 왔다. 전에 머물던 호스텔 근처에 있는 카페였다. 옳다거니 하고 가는 방법을 찾고자 구글링을 하는데 뜨억 했다. 가게 후기에 일자리 면접을 본 사람이 써 놓은 글이 눈에 띄었다. 요약하면 세상 무례하고 성질 더러운 주인이라는 비난 가득한 글이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쫄보의 마음이 부웅 떴다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 공고를 보니 집에서도 좀 멀고 일이 끝나는 시간도 너무 늦어 보였다. "켈리가 밤에는 무조건 걸어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그렇게 처음이 될 뻔한 면접을 못, 아니 안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로는 쓴 메일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싶을 정도로 어디서도 연락이 없었다. 한껏 시무룩해졌지만, 야금야금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면 주저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카페 공략 이력서, 식당 공략 이력서 두 가지 버전을 다 몇 부씩 인쇄했다. 오랜만에 셔츠도 꺼내 입고, 깔끔한 서류파일도 장만해서는 쇼핑몰로 향했다. 사실 인사를 건네고 서류를 내면 되는 심플한 일이었지만 쫄보인 나에게는 탐색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맘에 닿는 곳부터 정해야 했다. 1층에는 주로 카페가 많았고, 2층은 식당이나 펍 위주였다. 여러 곳을 기웃거리다 커피도 한 잔 하며 잠복근무를 하는 형사처럼 지긋이 지켜보기도 했다. 그런다고 다 알 수 있겠느냐마는 조심스러운 내게는 필요한 의식이었다. 가야 할 곳이 정해지면 앞에 가서 해야 할 말들을 머릿속으로 수 없이 리허설했다.



이력서가 든 봉투는 점점 가벼워지는데, 마음에는 기대 대신 아쉬움이 차올랐다. 서류를 내는 순간에는 다들 바빠 보였고, 그 어떤 긍정적인 신호도 받지 못했다. 과연 내 서류가 읽힐까. 그대로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결국 나는 보여도 보이지 않는 노바디일 뿐인가. 오랜만에 을의 입장이 되니 처량한 마음을 달랠 방법을 몰랐다.



기운이 점점 떨어져 갔지만 2층에 올라 마지막으로 남은 서류를 다 돌리기로 했다. 햄버거 집의 소년이 내 서류를 발랄하게 받아서는 사장님을 불렀다. 미간이 근육질인 사장님이 나오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호주에서 일해본 적 있냐 물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호주에서 경험이 없지만 한국에서는 꽤 경험이 있다고 답했더니,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지금 당장 구하는 인력은 없지만 나중에 필요해지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발길을 돌려 나오려는데 그 발랄한 소년이 "행운을 빌게요!"라고 하며 싱그럽게 웃었다. 눈가가 잠시 촉촉해졌다. 삼대가 행복하렴, 친구야.



다음으로 간 가게에서는 한 소녀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는 내 앞에서 찬찬히 서류를 보았다. 그때 껏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한국 카페에서 일했었어요? 한국인 바리스타들 훌륭하던데~" 나이는 어려 보였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재주는 능숙해 보였다. 그곳에서도 당장 사람을 구하고 있지 않아서 나중에 필요할 때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나를 위아래로 훑던 햄버거 가게 사장님 앞에 있을 때와는 기분이 확연히 달랐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성숙도는 나이와 상관없음을 느낀다. 소녀와 소년 덕분에 너덜 해진 마음을 겨우 붙잡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곤 한숨을 푹 나왔다.



'아,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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