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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25. 2021

Ep.1_스물아홉, 일을 그만두고 호주로 떠났다.

3년 차 영어강사가 호주 워홀을 결심한  이유



좋아하던 곳에서 3 가까이 일을 했고, 그만둔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는  자주도 울었다. 이를 닦다 울컥해 벌게진 이 되어 칫솔질을 했고, 샤워를 하다가도 물소리에 기대 맘껏 엉엉 대기 일쑤였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주책없이 터지는 눈물을 몰래 치기도 다. 그만두고 싶으면서도 그만두기 싫었다.



" 너 한 달에 얼마 버는데? "



엄마의 질문에 답하려고 해도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미뤄두었던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들키고 난 후였다. 그때는 통장 잔고를 항상 걱정하는 처지였다. 작은 학원에서 영어 수업을 하던 나는 학생 수에 따라 월급을 받았다. 경기는 안 좋아지는 데다 영어 교육은 점점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추세였다. 점점 소박해지는 학생 수에 따라 수입 또한 소박해졌다. 학생 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생계가 왔다 갔다 하니 버텨온 마음에 점점 균열이 생겼다.



" 어디 가서 사무직으로 취직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 "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해나간다고 묵묵한 응원을 해오던 부모님은 딸의 앞날이 걱정되어 한숨 쉬듯 말을 던졌다.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속으로는 그 말에 끄덕거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현실을 생각하면 당장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생의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러나 쪼그라든 통장으로 구직활동에 나서는 것도, 그렇게 부모님께 손을 벌리게 되는 것도 겁이 났다. 어디서 뭘 할 수 있을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길에는 짙은 안개만이 자욱했다.



3년 차까지 이어진 처참한 성적표. 그저 나의 탓이었다. 순간순간 마음은 다했다고 했지만 열정 넘치는 어느 동료들처럼 치열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미래를 위해 이런저런 준비도 하고 여러 공부도 해야 했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빴다. 부족한 스스로를 탓하니 그곳은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하루 두세 시간의 통근 시간이 점점 더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몸과 맘을 다 써버린 듯했다. 그럼에도 끝을 바라보면 눈물이 먼저 나왔다. 일하기 이전에는 3년간 학생으로 있던 곳. 누구보다 나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쌓아 온 시간을 생각하면 끝을 마주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누군가에겐 의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곳은 나에겐 직장 그 이상이었다. 떠나는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사무치게 힘겨웠다.



그러다 생각한 방법은 멀리 떠나는 것이었다. 언젠가 해봐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외국 생활을 해보자고 맘을 굳힌 거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으니, 정든 곳을 떠나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방법은 왠지 먼 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머나먼 곳에서 지쳤던 맘을 털어버리고 새로이 시작해보자.


떠나기에 가장 쉽다고 생각한 경로는 워킹홀리데이였다. 주변에 가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그걸 대체 어떻게 신청하는지조차 잘 몰랐던 그때. 인터넷을 떠듬거리며 먼저 캐나다 워홀에 지원했다. 캐나다 사람들이 다정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은 탓이었다. 그러나 추첨식이라는 캐나다에서는 당최 연락이 없었고, 조급한 마음에 더는 기다리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별일 없으면 비자가 나온다는 호주의 문을 두드렸다.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 비자를 신청하고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2주 남짓. 작은 장난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쫄보인 내가 여행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살아보려 떠나는 것은 무척 두려운 일이었다.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인 것도 두려움에 한몫을 했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는 것도 떠나는 것도 그 때여야 했다. 왠지 두 번 다시 같은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두 눈을 꼭 감고 굳게 마음먹자 나 자신을 다독였다. 어떻게든 해나가야 한다고. 떠나면 어찌 되든 될 거라고.



시간은 밀도 있게, 그러나 야속하리만큼 빠르게도 흘렀다. 정신 차려보니 마지막 수업을 하는 날, 함께하던 학생들과 동료들로부터 케이크와 꽃, 편지 같은 마음을 전해받았다. 무엇보다 나의 마지막과 또 다른 시작을 꼭 안아주던 그들. 영영 보낼 수 없을 것 같던 그 순간들에 마지막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는 굳은 등을 보이며 뒤로 돌아서야 했다.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면 영영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제 남은 일은 지구 반대편을 향해 날아가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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