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파비치에서의 첫 아침, 오늘도 어스름한 새벽 눈을 뜨자마자 해변으로 나갔다. 이른 시간이지만 해변에는 조용히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낚싯대로 바다낚시를 하는 현지인과 천천히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 나처럼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 여행객, 서로 뒤엉켜 뛰어노는 개들, 각자 고요히 아침을 느끼고 있었다.
리파비치의 고운 검은 모래들 너머로 일렁이는 은빛 바다는 일출이 다가올수록 붉게 물들어 갔고 뒤이어 붉은 태양이 떠올랐다. 풍경을 바라보는데 그 순간 모든 것이 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너무 좋은데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느낌. 아 너무 평화로운데 지금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따라 나온 남편에게 " 지금 너무 평화롭고 너무 좋은데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니 남편이 대답했다.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 뭘 하려고 하지 말고 -
너무 평화로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운데 나는 이렇게 완벽한 순간에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구나. 몸과 마음 둘 바를 모르던 나는 그냥 해변으로 다가가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바다를 느끼기 시작했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가만히 머물기로 했다. 그저 가만히. 그냥 바라보며 함께 머무르는 수밖에
이런 완벽한 순간에도 정작 할 수 있는 건 없구나. 그리고 이 순간도 그냥 지나가는구나.
누구나 완벽히 행복한 순간을 추구한다. 아침에 나는 너무 평온하고 아름답고 완벽한 순간을 만났지만,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잡을 수도 무언가를 할 수도 없이 그저 그 순간이 다가왔고. 그저 머물다가, 그저 지나갔다. 너무 평화로우면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평온과 행복의 순간도 결국 제로(0)였다.
완벽한 순간은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완벽을 그리며 무언가를 쫓아가는 게 과연 얼마 만큼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완벽한 행복에 가 닿으려 부단히 계속 애를 써야 하는 것일까? 행복은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의 것을 쫓는 것보다. 그것을 대하는 내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외부의 대상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영혼, 나의 신전을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아메드의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리파비치의 바닷속에 실망을 했지만 오전에 다시 바다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어제는 분명 바닷속이 뿌옇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산호의 세상이 펼쳐졌다. 오전의 바다가 더 투명하고 맑았다. 산호 군락이 있는 스폿이 있었다. 예쁜 산호들과 물고기들 사이를 구경하다가 물살이 출렁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남편이 다시 튜브를 타고 나를 구하러 왔다. 여태껏 남편이 크게 의지가 된다고 느끼지 못했었는데 , 물속에선 왜 이렇게 든든한 건지?
늘 남에게 기대기보다 혼자 이고 지고 짊어지고 이끌어 가려는 나의 성향은 그보다 덜 한 남편을 나약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냥 어지간하면 직접 내가 책임지고 다 하려고 했다. 하지만 물에서는 수영도 못하고 힘을 못쓰니 남편이 매번 구해주고 방향을 이끌어 줬다. 이 사람은 대체 튜브도 없이 맨몸으로 어떻게 계속 물에 떠있는 거야? 남편은 휘둥그레진 나를 끌고 유유히 해변으로 헤엄쳐갔다. 꼿꼿하던 내가 허물어지고 남편에게 심적으로 완전한 의지를 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묶는 숙소는 비교적 가격이 나가는 곳이라 마냥 편안할 거라고 안심했었는데, 도마뱀 한 마리가 들어오면서 마음을 졸이게 되었다. 원래 도마뱀은 천정이나 벽에만 붙어 사람 근처에는 오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어쩐지 이 도마뱀은 침대 위를 막 지나다니고 요란하게 휴지통이며 벽이며 부스럭 대는 소리를 냈다. 자다가 도마뱀이 내 몸을 지나다니는 건 결코 원치 않았다. 신경이 쓰이니 불을 끄고 잘 수가 없었다. 뜬 눈으로 도마뱀 감시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근처 길리 섬에는 상어가 나와 해변을 덮쳤다는 소식이 들렸다. 심란한 마음이다. 과연 바다에 계속 들어가도 되는 건가.. 세상에 상어라니. 아메드도 슬슬 떠나야 할 때가 온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