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며 트러블도 있었다. 사실 남편과 나는 <여보, 당신 사랑해요> 스타일의 살가운 느낌은 아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만큼 그동안 참 많이도 싸웠다. 내가 세모라면 남편은 동그라미였다. 다툴 때마다 서로 깎고 깎아가며 다른 모양으로 맞추어 나갔다. 그동안 서로 함께한 시간이 핑크빛 안락한 느낌이라기보다, 치열하게 돌을 세공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자기 성찰을 해보자면 남편에 대한 불만은 결국 나의 서운함에서 나왔다. 깊이 들여다보면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데 남편이 그런 것 같지 않을 때가 화가 나는 것이다. 거기에 남편이 너무 캐치가 잘되어 문제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 내 눈엔 남편 속이 빤히 다 들여다 보인다. 그럼 묻다가 따지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아메드에서 어느 하루는 계속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날은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다에도 가지 않고 쭉 숙소에서 쉬었다. 그렇게 계속 늘어지며 쉬고 있는데 남편은 함께 다른 걸 하고 싶었나 보다.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바다에서 가족이 다 같이 신나게 노는 것을 원했다. 그날은 내가 그린 그림과 그가 그린 그림이 달랐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다고, 힘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럴 리듬이 아니라고.. 하지만 다 같이 노는 그림을 잔뜩 그리고 있는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냥 쉬고만 있는 내가 못마땅했나 보다
남편이 못마땅해하며 틱틱- 불편한 기색을 비칠 때마다 나에게 날아와 부딪혔고 좋게 좋게를 넘어 결국 한소리를 하게 만들었다.
그날 저녁, 남편이 꼭 가보고 싶어한 식당에서 식사를 잘 마치고 기분 좋게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 피곤해 쉬고 싶다-” 라고 혼잣말하는 나에게 남편은 “아까 잤잖아.”라고 삐딱하게 말을 내뱉었다.
??
“왜 나는 피곤하면 안 돼? 나는 그냥 좀 하루 쉬면 안 돼?”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왔다.
사실 남편은 내가 힘들거나 아프거나, 에너지 없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모진 소리를 하는 사람이다. 다정하게 걱정하며 챙겨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된다. 남편은 내가 씩씩해야 안심하는 스타일이다. 내가 힘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그 모습을 보면 못마땅해한다. 그 모습에 나는 더 성질이 난다.
“나는 계속 뭘 해야 돼? 나는 기운 없으면 안 돼? 내가 로봇이야?”
보통 이럴 때는 이전의 서운한 감정들까지 소환되어 줄줄이 이어져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 좋은 곳에 여행을 와서, 이 좋은 아메드에서 싸움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틀어지려던 상황에서 , 결국 자기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으로 한 번 더 짚으며 그렇게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귀엽고 상큼한 나의 열한 살 딸도 이제 사춘기 초입에 접어들었는지 귀찮은 것이 많아졌다.
식당 가는 것도 귀찮아 잠옷에다 잠바만 겹쳐 입고 나오거나, 혼자 숙소에서 뒹굴대며 폰을 만지거나 영상을 찍으며 놀거나 한다. 물을 좋아하지만 바다에는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예쁜 바닷속을 보여주고 싶어 딸에게 몇 번이나 스노클링을 권유했지만 싫다고 주장하는 아이의 모습에 내 모습이 얼핏 비친다. 나도 바다에 들어가기 싫었었잖아. 다 귀찮은 날도 있었고.
정말로 귀찮아하는 아이의 마음, 있는 그대로의 아이의 마음을 본다. 이 세상에 아무리 더 좋은 무언가가 있다고 해도 지금 아이의 마음이 중요하지.
내 마음이 아닌, 다른 이의 마음을 듣는 일. 어렵지만 내 마음만큼이나 중요한일이 아닐까. 가족을 보며 배워간다.
어느덧 아메드의 여정이 끝나간다. 우리를 사로잡았던 아메드. 물 공포증을 이겨내고 오랜만에 만난 바다에서의 스노클링, 잊지 못할 물속 세상, 한적한 거리가 주었던 여유, 평온한 바다, 검고 고운 모래, 매일 단골처럼 드나들던 피플포인트 카페, 아마도 다시 오겠지? 언젠가 우리는 아메드에 다시 올 것이다. 그런 막연한 느낌이 든다. 떠나기가 아쉽다. 너무 평온하고 좋았던 만큼, 아쉬움이 크다.
마지막 아메드 아침의 일출을 본다. 검은 모래 위에서의 일출- 바다와 태양 앞에 앉아 명상을 한다. 파도소리와 드러나는 태양의 따뜻한 온기가 피부에 닿는다. 내가 비워지니 내가 곧 외부가 된다. 내가 내 앞의 바다가 되고 내가 저 태양이 된다.
바다와 태양이 말한다.
<나는 신이다_
나는 너에게도 있다>
저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면에 고요히 질문을 던지자
이내 <지금이 되어라>라는 내면의 메시지.
그저
지금이 되어라-
여행의 반이 지나고 있다. 이제 아메드를 떠나 고산지역 문둑으로 향한다. 아메드의 바다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발리에서의 모든 일출, 태양이 주는 따뜻하고 강렬한 빛의 에너지, 파노라마처럼 생각이 스쳐간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곳의 느낌처럼 돈에 구애받지 않는 우리만의 paradise를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