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고산지역 문둑
아메드에 푹 빠졌던 우리들의 마음은 출국까지 아메드에 더 눌러 있고 싶었으나 그래도 발리에서 새로운 곳을 더 경험해 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평화로웠던 아메드를 뒤로하고 문둑으로 왔다. 문둑은 발리의 북부에 위치한 고산지역이다.
아메드에서 알게 된 택시 기사분과 문둑으로 가는 약속을 잡았다. 아메드에서 문둑은 3시간의 여정이다. 오랜만에 짐을 싸서 낯선 곳으로 이동하니 새롭게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굽이 굽이 산길을 오르는 문둑으로 향했다.
어른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거리이지만 아이들은 차를 오래 타는 걸 힘들어했다. 그냥 쭉 뻗은 길도 아니고 구불구불 오르는 길이라 더 힘들었을 것이다. 멀미가 심한 첫째는 힘들어 하다가 산을 올라가는 길 차에서 토하고 말았다. 첫째가 먼저 토했고, 뒤이어 둘째도 같이 토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해 봉지를 준비하고 있어서, 택시에 큰 피해를 끼치지는 않을 수 있었다. 차의 시트가 가죽도 아니었어서 정말 준비를 안 했다면 큰일 나고 죄송했을 뻔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중에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길에서 내려 아이 옷을 갈아입히고 수습을 했다. 얼떨결에 맨발로 내렸는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고 비를 맞으며, 분주히 정리를 했다. 내가 너무 무리한 일정을 잡았나 순간 속상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다. 너무도 죄송해서 기사 아저씨께는 사례금을 더 드렸다.
비를 맞으며 도착한 숙소의 뷰는 아름다웠으나 건물에 조금 가려져 있었고 여태껏 우리가 광활하게 보아온 뷰들에 비하면 조금은 답답한 느낌이었다. 맑았던 아메드에서 갑자기 추적추적 비 내리는 장소에 도착하니 더 낯선 느낌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토한 옷가지들과 밀린 빨래를 하고 지친 아이들을 위해 짜장밥부터 먹였다.
남편은 고생해서 온 문둑의 모습에 다소 실망한 눈치였다. 정말 투명한 사람이다. 조금만 맘에 안 들어도 저렇게 티가 나고야 만다. 또 투덜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침착하게 정돈을 하고 쉬기로 했다.
문둑은 바이크가 아니면 움직일 수가 없고 정보도 없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여기가 어디인지 더 알 수가 없었다. 주변에는 정말로 뭐가 없었고 게다가 비까지 내리니 오늘은 그냥 휴식 모드이다.
하지만 그 덕에 우리는 엄청난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할 것이 없으면 온전한 휴식을 얻는다. 근처 식당에 모여 앉아 음식을 기다리며 함께 카드게임을 했다. 못내 마음에 들지 않은 티를 내던 남편은 처음 찾은 식당의 드넓은 고산의 뷰와, 끝내주게 맛있는 요리를 먹더니, 너무 맛있다며 한번 더 시켜 먹었고 이제야 문둑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이 좋아 보이고 한껏 누그러져 보였다. 정말 투명한 사람..
여행을 할 때, 각국의 고산지대를 유독 좋아하던 나로서는 이 특유의 고산 공기와 습도, 온도가 마음에 들었다. 마치 인도의 다람살라를 떠올리게 하는 느낌이었다.
숙소 근처에는 다행히 지도에도 없는 작은 마트가 있었다. 마트라기보다는 구멍가게 느낌인데 문이 닫혀있기도 열려있기도 했다. 어쩌다 문이 닫혀있으면 아이들과 마트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밤에는 핸드폰 불빛을 비추며 하얗게 빛나는 별들 아래를 지나 구멍가게로 향했다.
문득, 조용한 문둑은 혼자 왔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혼자 배낭 여행하던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가족 여행도 좋지만 혼자 조용히 초록 풍경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사색을 해도 참 좋았겠다.
문둑에서의 유일한 일정은 근처의 폭포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다행히 숙소 주인이 직접 그린 지도를 주며 아이들 맞춤형 트래킹 코스를 짜주었다. 정글 같은 숲 속을 걸어 들어가서 폭포 두 개를 보고 오는 코스였다.
정글을 원하던 남편은 좋아했다. 그리고 폭포에 정수리 맞기 버켓리스트가 있었다며 더 좋아했다.
폭포는 한국에서 보던 폭포 그 이상이었다. 자연의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첫째가 폭포를 보고 나서는 힘들다 가기 싫다 칭얼대기 시작했다. 6살 동생도 멀쩡하게 걸어 다녔기에 엄살처럼 보이긴 했는데 등을 구부정하게 구부리며 한발 한발 옮기더니 못 걷겠다고 했다. 바닥에 주저 않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이제 사춘기가 찾아오는지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게 되는구나 싶으면서도 힘들다는 걸 어쩌나, 그럼 남편과 둘째만 보내고 첫째와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쉬기로 했다.
근데 또 어찌어찌 찡얼대더니 가겠다고 해서.. 뒤늦게 다시 두 번째 폭포로 향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길을 헤매고 있는 남편을 만났다. 식당에서 스무디를 마시고 좀 쉬다가 두 번째 폭포로 갔는데 이번에는 첫째가 화장실에 가고 싶단다. 큰일을 보고 싶단다. 아뿔싸 주변에 화장실은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려왔던 수많은 계단이 떠올랐다. 첫째에게 빨리 계단을 오르라고 다그쳤다. 올라가야 화장실이 있다고.. 남편이 천천히 폭포를 둘러보러 간 사이 우리는 허겁지겁 계단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엄청난 속도로.. 다른 사람들은 힘들어서 한 번에 오르지도 못하는 계단을 우리는 아이가 화장실이 급하다는 초인적인 힘으로 올랐다.
그렇게 허겁지겁 올라왔는데 막상 올라왔더니 재래식 화장실이라 들어가기 싫다고 한다. 네가 덜 급하구나. 진짜 급하면 화장실 가릴 틈이 없을 텐데.. 첫째의 변덕에 나까지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냥 비도 아니고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우산도 우비도 없었던 우리 식구는 그야말로 비를 쫄---딱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 상태로 트래킹을 하며 되돌아가야 했다. 정말 엄청난 비였다. 둘째를 막아줄 수도 없었고 주변은 야생이어서 우산을 구할 수도 없었다.
남편은 비를 피하는 곳에서 잠깐 쉬었다 가자고 했지만. 나는 빨리 이대로 집으로 가서 쉬는 게 더 낫다고 했다. 직감상 이건 한두 시간짜리 비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어제 식당에 두고온 숙소 우산이 생각났다.
" 당신이 빨리 뛰어가서 우산 들고 올래?"
물어봤지만 남편은 어떻게 그러냐고 마다를 했다.
“그럼 내가 갈게”
나는 즉시 우산을 가지러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비를 쫄딱 맞으며 한참을 달렸다. 큰 우산을 챙겨서 다시 가족을 향해 뛰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고 그렇게 만나서 한 우산을 사이좋게 쓰고 집으로 돌아왔다. 힘들다 못 가겠다 찡찡대던 첫째는 오히려 비를 쫄딱 맞으니 힘든 게 다 사라졌다고 하며 몇십 년이 지나도 지금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숙소에 와서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너구리 라면을 끓여 먹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거봐 집에 빨리 오는 게 나았지?"
그렇게 우리에게 문둑은 비를 쫄딱 맞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정말 잊지 못할 경험.
나는 사실 비 맞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게 많은 비를 쫄딱 맞을 수 있는 상황이 내심 좋았을는지도 모른다.
비 오는 고산지대 특유의 온도와 공기가 있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 눅눅한 날씨.
며칠째 널어놓은 빨래를 바라보며 그 모습이 오히려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