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에서 간호사로 살아가기
2024년 서울에서 방문간호사 활동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밥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돈을 벌어야 하니, 방문간호 업무하라고 해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경로당에서 만나는 어르신들과 골목을 드나들며 만나는 대상자들에게 많은 위로와 힘을 얻기도 했다.
집집마다 다니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면하는 것을 대상자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또, 간호사가 방문한다고 해서 처치를 딱히 해주거나 눈에 보이게 치료되는 것은 없기에, 더더욱 대상자들은 대면하기 싫어했다.
대면하기 싫어하는 대상자들을 설득하는 건 좀 곤욕스러웠다. 반면에 대면하기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도 곤욕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대상자에게 간단한 건강상담을 빙자한 잔소리와 파스를 나눠드리던 와중에 만난 장년의 남성은 혈당이 상당히 높았다.
식습관 개선, 운동 습관 개선 등을 교육하고, 병원진료를 권했지만, 며칠 뒤에 만난 대상자의 혈당은 기기에 수치가 뜨지 않을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아무리 병원진료를 권유해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결국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경제적인 이유라는 것을 파악했다. 대상자를 직접 인근 대학병원에 연계했다.
그 당시 의료파업으로 진료가 어려운 상태였으나, 주민센터 방문간호사인 내가 함께 동행하여 심각성을 알리고, 다행인지, 이전에 처방이 남아있는 진단검사가 있어서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대상자가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돈이었기에, 나는 필요한 부분의 의료비 지원 방안을 대학병원 사회복지사와 동주민센터 사회복지직 주임님과 논의하여 의료비를 연계하게 되었다.
이후 대상자는 검사 수치상에도 입원치료 필요로 하여 입원치료를 받았다. 퇴원 이후 대상자의 경제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사회복지직 계장님과 함께 방안을 모색했다.
또 나는 AI IoT기반의 건강관리 신사업에 대상자를 추천하여 건강관리를 진행하면서 대상자는 점점 삶의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연신 나를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할 때, 나름의 뿌듯함을 느꼈다.
최근에 들었던 소식은 내가 타 도시로 전출을 갔을 때, 나의 안위를 물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살렸다라기 보다는 그분이 나를 잊지 않고, 나의 안위를 묻는 그 따뜻함에 마음이 찡~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값진 일이라는 보람이 느껴져서 좋았다.
요즘은 직업이 대체로 연봉에 따라서 값을 쳐주는 느낌이기에 자존감이 많이 낮아지기도 했다.
그 기준에서는 내 월급은 작고 소중하다.
물론 알고 이 길을 선택했지만, 내부의 시선, 외부의 시선에 나는 많이 흔들렸다.
앞으로는 내가 하는 일이 때론 고되고 힘들지라도.. 값진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