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카페에 와서 잡지를 하나 빼들었다. 표지를 펼치자 늘 변치 않는 세계가 거기에 있다. 반짝이는 사람들. 매끈한 피부에 걸쳐지는 보석과 옷들. 문득 별 흥미가 느껴지지 않아 표지를 닫아버린다. 그 취향과 흐름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던 때도 있었다. 때로는 반발짝 앞서 조짐을 감지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 나에게 ‘퓨어’라는 단어에 걸맞은 한 장면이 떠오른다. 물속에서 버둥거리는 팔과 다리. 평영을 하는 중년의 여성. 몸짓은 어설프지만 나는 그 장면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잡지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매끄러운 피부는 아니었지만 그 까끌한 피부에 맺힌 진주 같은 물방울과 그녀가 끊임없이 일으키는 물보라에 새로 태어나는 진주들이. 아무 부끄러움 없이 노출되는 사타구니마저도.
나는 내가 울룩불룩한 감자포대같이 생겨서 내 흘러내리는 살을 라이크라 천 조각에 우그려 넣게 될지라도 부끄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수영을 사랑하는 한.
어떻게 이 물이라는 아름다운 매질 속에 내 순수한 의지를 전달할까. 물살을 거스르지 않고 가를 수 있을까. 장자에 나오는 백정처럼 어떻게 칼날을 무디게 하지 않고 살과 살의 틈을 가를까. 이것은 피도 냄새도 나지 않는 작업이라 더 좋을 따름이다.
지금도 블랙 드레스에 샤넬 목걸이를 걸고 앉아 무슨 소리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지난 취향이나 취미로 인해 생긴 부산물들은 여전히 내 삶에 남아있다. 그걸 싹 다 내어버리겠다는 생각은 없다. 단지 그것들은 스타일로 남았을 뿐이다. 스타일은 낡은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들일 땐 여전히 유용한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 잡지까지 찾아보며 학습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오히려 수영 카페를 매일 같이 공부하고 고민을 나누고 의견을 적는다. 나의 한 동작 한 동작이 보다 아름답고 편안하길 바라며. 결코 물과는 조그만 다툼도 하고 싶지 않다. 같이 흐르다 하나가 되는 날까지. 내 뼛가루가 그 거대한 생태계의 조그만 양분이 되는 날까지.
어깨가 아파서 오늘은 책을 읽을 참이지만(또한 이미 새벽에 한 타임 하고 왔지만) 나의 세계는 그곳에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서문 정도만 읽었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여 놀랐다. 그 세계에 가기 위해 눈을 손상한다고? 나도 아가미가 생긴다면 약간의 미친 짓을 하고라도 그 세계로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이 옷도 목걸이도 가방도 다 이 세계에 놓아두고. 발가벗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