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시도 후에 얻은 것

창의적 무모함

by 이영선

2022년 여름, 출판물에 사진을 이미지로 쓰려던 계획이 여타 사정에 의해 어긋나고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친구가 "그냥 네가 그려"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 나는 그림을 그리던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잘 그리는 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주변 예술가들이 전부다 나보고 직접 그리라고 했다. 나는 "내가 어떻게 그려? 내가 피아노를 처음 쳐 보는 너를 보고 한 달 반 뒤에 피아노 콘서트를 하라고 하면 너는 할래?"라며 반박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친구들 말대로 나는 드로잉 개인전을 두 번이나 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120평 전시장을 꽉꽉 채우고도 남는 120개 이상의 작품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내 드로잉은 연필이나 유화 등의 기존 매체를 이용한 드로잉이 아니라, 무용 작업을 하면서 끄적인 것을 내 머릿속 상상대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재현해 낸 것이었다. 연필과 아크릴 물감을 약간 쓰기는 했지만, 그건 이미 완성되어 떠 있는 내 머릿속 이미지의 선과 색채를 따라 연필 한 두 자루와 아크릴 물감 몇 개로 색을 채워 넣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또 드로잉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어이없이 내 안의 모순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친구는 "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두 번이나 하고 그간 다른 기획 전시도 몇 번 했잖아. 그것도 그림이었잖아. 네 춤도 그림이라고 네 입으로 그랬잖아. 그런데 왜 못 그려? 그릴 수 있어. 맘대로 해 봐. 할 수 있어. 나는 할 수 없으니까 못하는 사람이지만, 너는 분명히 할 수 있으니까 해보라고 하는 거야." 친구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친구는 뭘 보고 그려보지도 않은 책의 삽화를 내가 그릴 수 있다고 자신하는지 몰랐지만, 야속하기도 하고 앞에 아무것도 안 보여서 정말로 무용실 바닥에서 아이처럼 며칠을 데굴데굴 굴렀다가 멍하니 앉았다가 하는 과정을 계속했다. 두렵기도 하고 출판을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누가 뭐 하라고 기한을 정해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내 글을 그 해에 꼭 책으로 완성하고 싶기도 했다.


삽화가를 찾아볼까도 했는데, 미술 작가 몇 명과 대화를 해 봐도 모두 나보고 직접 하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왜 그러는지 물으니, 내 머릿속 이미지가 뚜렷해서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내 머릿속에는 이미지들이 있지만, 나는 정말 삽화로 쓰이는 그런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어 못 그린다고 했는데도 그렇게 말해서 은근히 열이 받기도 했다. '돈 받고 그려주면 되는 건데 왜 내 작업만 싫다고 하는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며칠 동안 콜라주도 해보고 스케치도 해보고 했는데 그건 정말 피아노를 처음 접하는 사람한테 당장 한 달 반 이후에 예술에 전당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하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는 내가 화를 내고 머리에 땅을 박고 싶을 정도로 답답해하는데도 "네가 못하면 절대로 하라고 하지 않아. 네가 할 수 있으니까 하라고 하는 거야. 할 수 있어"라며 일관되게 말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고 있는데, 언젠가 안무가로 미국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머물던 장소의 건물을 끄적거렸던 연필 드로잉을 우연히 본 다른 친구가 그 그림의 느낌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올려 보았는데 또 다른 친구가 그 그림이 좋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그래서 그때의 느낌을 살려서 십여 년 전에 산 크레파스와 20년도 더 된 연필로 무언가를 끄적였는데, 그러다 보니 내 안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하루 종일 음악을 지휘하는 연주자처럼 연필을 휘두르며 그림을 그렸다. 나는 한 번 무언가에 몰입하면 그것을 쉬지 않고 계속하는 성향이 있는데, 정말 내 얼굴과 표정은 지휘를 하는 지휘자의 얼굴과 똑같이 보였을 거이다. 나는 몰입을 할 때 극도의 환희와 희열에 찬다. 내게 그림은 선의 연주였고 음의 리듬이었고 색채의 춤이었다. 나는 스스로 정말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달도 안 되어 책에 넣고도 남을 만큼의 많은 드로잉을 완성했다. 나는 내 드로잉을 친구에게 보여주었고, 친구는 좋다고 했다. 대단한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느낌과 개성이 묻어있는 드로잉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완성해놓고 보니, 내가 쓴 글에는 내가 쓴 드로잉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과거와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을 해낸 이후를 비교해 보면 무언가를 시도해보지 않으면 이후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보물과 같은 상황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불가능하다고 멈췄던 순간에 나를 한계선 너머로 밀어버린 친구에게 늘 감사한다. 친구는 이후로도 늘 그렇게 나를 한계선 너머로 밀어내고 있고, 나는 한계선을 맞닥뜨릴 때마다 그런 막막함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그 전후의 상황을 기억하려고 한다. 한계선 너머에 있는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의 놀라운 세계를 이후로도 계속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고 친구가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참에 BTS처럼 YSL 같은 걸 만들어 노래를 불러 앨범을 내면 어떨까 했더니, 그것만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또 하나 덧붙일 것은, 그 한계선을 넘는 것은 나 자신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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