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이 중요한 게 아니다

2022년 드로잉 프로젝트

by 이영선

좋아하고 할 줄 아는 게 하나 더 늘어난 다음엔, 색채를 더 표현할 수 있는 커다란 캔버스에 색색의 물감으로 마음껏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2022년 하반기에 드로잉 프로젝트로 공모에 선정되어 진행하게 되었다. 그때도 당연히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내 안에 자리 잡은 풍경을 밖으로 꺼내놓고 싶은 것뿐이었다.


얼토당토 안 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나는 아크릴 물감은 원색 네다섯 가지로 면을 채우는 것 이외에는 거의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어디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대형캔버스를 포함해서 30개의 캔버스와 각종 드로잉 재료와 물감에 대한 재료비를 지원금으로 신청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작은 도시의 재단에서는 나의 호기로운 미술재료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여 주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리고 싶은 욕구가 가장 컸지만, 사실 그려본 적도 없는 재료 앞에서 두려움과 긴장감도 극대화되었다. 나는 두려울 때마다 마음속으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더 집중했다. 더 긴장이 되었던 것은 실제 작업 기간을 한 달도 주지 않은 채 재료비를 교부받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포기할까도 했지만 창작이라는 것이 꼭 실제 재료를 안착해서 작업하는 기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에 모든 연락과 사적인 일을 끊고 작업실에 쳐 박혀 작업에 몰입했다. 그리고, 나의 한계를 또 한 번 밀고 나아가고자 하는 바람이 컸다.


그런데, 작업실에 몰입의 시간을 만들어 놓았다고 또 창작의 작업이 바로 시작되는 것도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거의 3주 안에 기성 화가들도 힘든 30개의 크고 작은 캔버스와 스케치북을 다 채워 넣어 작품으로 만들어내야 하는데 나는 새 물감과 스케치북, 새 붓들을 앞에 놓고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그때에도 결국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그런데, 나 뭐 그려?"라고 대화를 시작하며 친구에게 무슨 용기를 주는 주문이라도 외워보라고 닦달을 했다. 친구는 "그때도 그랬는데 잘 해냈으니까,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뭐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하다가 못하면 프로젝트 안 해도 되는 거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어. 그러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뭐든 해봐"라고 말을 했다. 친구가 무슨 죄일까? 그렇지만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는 늘 그렇게 나의 든든한 영혼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가장 커다란 캔버스에 (나는 하필 왜 작은 것도 아니고 첫 시도로 50호짜리 대형 캔버스를 집어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토끼가 여러 마리라 캔버스가 커야 다 들어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핑크색 물감을 짜내었다. 조심조심 스케치도 없이 한 색의 물감으로 토끼 여러 마리를 그려냈다. 커다란 화면에 토끼들이 가득 차고 나니까 너무나 신이 났다. 나는 커다란 캔버스와 색채의 묘미에 빠져들어서 신이 나서 혼자 연습실에서 캔버스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팔딱거리며 뛰어다녔다. 참조로 말하자면 그건 내 세계에 사는 토끼라서 토끼인 줄 단번에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눈코입은 어디 있으며 저것들은 쥐가 아니냐고 묻는 나의 엄마와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겠다.


그리고 내 드로잉은 점점 더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붓이 캔버스 위를 지날 때 손에서 느껴지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그건 아마 낚시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손맛'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에 식감이 있듯이 캔버스 위를 지나는 붓에서 느껴지는 그런 독특한 질감이 있다. 그리고 생전 처음 써보는 이런저런 다양한 색채가 황홀하게 펼쳐지는 게 너무 신이 났다. 친구에게 그림이 완성될 때마다 사진을 보냈는데, "거 봐, 할 수 있잖아"라고 말하며 계속하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내게 부여된 3주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50호 크기의 캔버스 4개, 30호 4개, 12호 20개 정도의 분량과 온갖 스케치북 드로잉을 완성해 냈다. 작품의 완성은 분량과 꼭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10호짜리 캔버스 그림 하나를 10년에 완성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건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저 넓은 표면을 아무런 경험치도 없이 해낸 것에 대해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단순히 양적으로 무언가를 완성해 낸 것도 그렇지만, 내 안에서 이런 수많은 색채와 그림이 쏟아져 나올지는 몰랐다. 물론 내 안에 오랫동안 표현하고 싶은 자연의 대상은 있었지만 그걸 이런 모양과 색감으로 실제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몰랐건 것이었다. 뭘 그려본 적이 있어야 짐작이나 할 수 있지 않을까? 드로잉을 시작할 때는 정말 '무'의 상태였고 그냥 뭔가 하고픈 강력한 바람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따라 그린 것이었다.


결과물의 발표는 하지 않은 채로 있지만, 나는 작업을 하는 동안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웠고, 이후 이 그림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궁리 중이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은 아직까지는 말 그대로 내 과정을 응원하고, 지켜보고, 이를 실제로 보고 싶어 하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와 일부 지인들에게 보여주어 함께 즐기는 것 이상은 아니다. 온갖 잣대로 내 삶의 과정과 즐거움이 재단받고 멋대로 평가되는 것은 내가 나의 작품활동으로 인해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건 개한테나 주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잣대로 자신의 내면을 구석구석 뒤져본 적이 있는지에 대한 경험이고, 내 인생에 나를 중심으로 놓고 주체적으로 행복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업적을 칭송하고 다른 사람의 궤적을 모방해 본 적은 있으면서도 정작 내 안의 보물단지를 뒤져본 적이 있는가. 나의 소중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함께 즐거워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온전히 현재적으로 내 인생의 시간에 몰입해서 내 인생의 역사가 쓰이고 있는가. 도달할지도 안 할지도 모르는 결과에만 집착해서 과정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이런 생각들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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