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내어놓는 과정

오픈스튜디오 전시 프로젝트

by 이영선

나만의 공간과 시간에서 작품을 만들고 창의력을 불태우는 것은 나에게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내 안의 세계를 외부와 소통하는 과정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것도 창작, 혹은 작품활동의 일부라 볼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내면의 세계가 외부와 만나는 지점부터 외부의 시점이 그 과정에 유무형으로 개입되므로 자잘하고 예민한 갈등을 하게 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그리고 어떤 형태로 외부와 소통을 할까를 결정해 나가는 과정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순수하게 나와의 소통을 통해 외부의 개입이 없이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이 10중 3이라면 나머지 7에 해당하는 에너지는 작품을 내어놓는 것을 결정하고 준비하는데 소모되는 것 같다.


나는 반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각기 다른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작품을 내어놓는 과정에 늘 새로운 무언가를 기획하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것을 한다는 건 사실 스스로에게도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어떤 것에 익숙해진다는 건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은 주변에 불편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매번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태까지도 커다란 전시장, 공연장, 건물 로비, 소규모 갤러리, 야외, 스튜디오 등 매번 다양한 공간에서 크고 작은 작품 발표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그냥 내 작업실에서 '오픈스튜디오(작업실 전시)'의 조촐하고 편안한 형식으로 그간 준비한 작품을 내보이기로 결정했다.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누구보다도 나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있는 그대로', '되는대로'의 방향으로 나를 쥐고 있던 것들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외국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커다란 건물에 작가들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일정기간 작업을 하게 해주는 레지던시를 겸한 갤러리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레지던시 작업기간이 끝날 무렵 작가들의 작업 결과물을 작가가 있는 작업실을 공개해서 보여주는 오픈스튜디오 형식의 전시가 나름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도 저런 공간이 있었으면 했는데, 드디어 내 인생에도 작업실이 생긴 지금 그 바람을 현실화할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업실은 신성한 곳이고, 그곳을 방문한다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작업실 전시는 마치 딸기농장 체험을 가서 커다랗고 싱싱한 딸기를 직접 따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마트에서 선별해서 포장이 된 딸기를 사 먹는 편리함도 있겠지만, 갓 열린 딸기를 있는 그대로 처음 맛보게 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작업실에 있는 작가로서의 나를 보여주고 그 형식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전시발표를 기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이곳을 기성 갤러리처럼 뭔가 엄숙한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나를 억제하는 중이다. 이 전시는 단지 내가 작업한 드로잉들을 보여주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업실이라는 예술가의 특별한 공간을 통해 예술가와 작품을 통합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인데, 자꾸 형식을 갖추고 포장을 하려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내 스튜디오는 기성 갤러리의 모양새로도 그다지 흠잡을 곳은 없다. 그렇지만,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공간에 너무 많은 변화를 주거나 뻔한 공간처럼 보이는 것은 지양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도 수많은 창의적 옵션 혹은 아이디어들이 생겨나고,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은 행복하면서도 괴로운 과정이다.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들을 단 한 번의 시도에 모두 소진시켜 버릴 것처럼 자꾸 욕심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생각의 가지를 쳐내며 앞으로 그런 아이디어들을 분산시켜서 오픈스튜디오 전시 프로젝트의 시리즈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쳐낸 생각의 가지들은 식물의 가지를 짧게 다듬어 잘라서 보관을 했다가 삽목(올해 호박과 고추를 키우더니 이런 단어도 알게 되었다. 물론 호박과 고추는 다 사망했다)을 하듯이 두뇌 한편 어딘가에 잘 보관하는 중이다.


드디어 10월의 마지막 주, 그간 작업한 온갖 드로잉 조각과 새로 발행한 책을 가지고 오픈스튜디오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포스터 디자인 시안을 인쇄소로 보내고, 결정장애의 순간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이곳에 찾아올 사람은 사실 거의 없다. 지역 주민들은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작업실은 오래전부터 늘 '오픈스튜디오 전시 중'이었지만, 자주 찾아오는 잡상인과 사이비종교인들 때문에 지금은 유리창을 아예 벽돌모양 블록으로 다 막아버렸다. 나는 동화 <키다리아저씨>에 나오는 키다리아저씨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또한 동화에서 그러했듯이 이곳을 발견하는 아이의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나의 폼블록 담장을 허물어뜨려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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