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이든, 평면 작업이든 작품을 완성하고 다시 꺼내어 보면 매번 그것이 달라 보인다. 내 작품이긴 하지만, 매번 낯설고 형편없이 보였다가 대단히 강렬하게 보이기도 한다. 나는 가끔 이를 꺼내어 놓고 보는 것을 즐겨하는 편이다.
나는 공연예술작품들에서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주로 등장하므로 작품이 매번 달라 보이고, 한 번 완성한 그림이나 다른 평면 시각 예술 작품들은 일단 만들어 놓으면 언제 어디에 놓여도 작품 자체의 특성이 변함이 없이 인지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공연예술이 아닌 작품을 창작하는 시간이 쌓이고 전시를 몇 번 거치면서, 시각예술 작품도 살아있는 등장인물들처럼 나 스스로에게도 매번 볼 때마다 다르게 인지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 작품이 어떤 것이라고 규정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작품은 내가 만들었지만 내 손을 떠나면 독립적인 정체성과 생명을 가지고 홀로 존재하듯이,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한 번 좋아 보이거나, 형편없게 보이면 계속 그래야 처박아 놓든, 버리든 할 텐데 다시 꺼내어 보면 또 다른 말을 내게 거는 것과 같이 다르게 느껴져서 나는 이것들과 함께 더불어 살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동일 작품을 바라보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을 좋든 싫든 그 사람들의 자유로운 시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조금씩 갖게 되었다. 상대방이 어떤 것을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대상에 그렇게 평가를 받아야 할 어떤 절대적인 속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문맥, 조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과거, 현재, 경험 등 모든 다양한 요소들이 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요소들을 배제하고 완전히 중립적으로 어떤 것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을 볼 때 사람들이 말하고 평가하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생각, 생활환경, 사고의 과정, 삶의 여정 등을 더 나타내어준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을 여러 시간과 장소, 사람들 사이에서 전시와 공연을 통해 맞닥뜨릴 때, 혹은 그것이 작품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노출이 될 때, 우리는 긴장을 하게 된다. 상대의 반응이 제각각이고 그것이 예상 밖의 어떤 것이거나 부정적이라면, 우리는 부처가 아닌지라 상대의 인식에 휩쓸려 불쾌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깊이에의 강요>라는 소설에서 엿볼 수 있듯이 한 비평가의 아무 생각 없는 한 마디 평가는 한 예술가를 쓸데없는 파국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나도 최근까지는 내가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작품이 읽히고 엉뚱한 반응이 올 때에는, 그렇지 않은 곳에서의 매우 긍정적인 반응이 본질이고 그렇지 않은 부정적인 반응은 본질도 못 보는 무식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비난했었다. 그런데 10월에 있을 작업실 오픈스튜디오 전시를 기획하면서 수많은 드로잉을 펼쳤다가 다시 포개어 놓는 과정을 계속하면서, 심지어는 내 인식 안에서도 똑같은 작품이 다르게 보이는 것을 보고, 그런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 좀 더 확장된 이해와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앞뒤 문맥은 모르겠지만 흔히 알고 있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은 위와 비슷한 문맥으로 사실 상당히 어려운 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산'이라는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처음에는 나도 '산'이라는 어떤 중립적이고 왜곡되지 않는 명백한 본질이 있다는 말로 이를 이해했다. 그러나 지금은 말은 그럴듯하나, 이것이 그리 간단한 문장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산이라는 대상은 누구에게나 같은 산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세상은 복잡하고 묘미가 있는 것도 같다. 본질이 명백하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인지되는 것이라면 정치적 갈등 따위는 없어야 하고 같은 역사적 사건은 누가 적어도 똑같은 기록이어야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믿는 본질이 맞다고 믿는 만큼 상대가 믿는 내 관점의 틀린 믿음도 상대에게는 맞는 것일 수 있기에 우리는 영영 같은 역사를 살고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실’, ‘본질’,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 오랫동안 궁금해했고, 그런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있는 사물도 하나의 동일한 문장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