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쓰기

창작과정의 마무리

by 이영선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창작과정을 길고 깊게 소통하고 싶으면서도, 전시장에 내어 놓을 안내문에는 작품에 대해 길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시장이라는 공간에 서서 글이나 문자에 집중하기보다는 시각적 감흥이 더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경험상, 전시장에서 나눠 준 브로셔를 유심히 읽으며 다니는 사람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나 또한 작품을 시각적으로는 기억하지만,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의 제목, 혹은 작품의 배경에 대해 거의 기억을 하지 않는 편이다. 시각적 이미지에 비해 귀찮고 지루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생각이나 창작과정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직관적이고 시각적인 감흥으로 충분히 작품이 전달되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예술은 만국 공통어가 아니며, 지적인 체계 (미국 인류학자의 말을 인용)'이므로 이면의 지식과 배경을 앎으로써 작품을 더 깊고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에도 동의하는 입장이다.


나는 작품이 맘에 들면 나중에 참조하기 위해 작가의 이름이 나온 곳만 사진으로 찍은 후, 집이나 전시장 근처 카페 등, 편안히 앉아 글을 읽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작가에 대한 자료를 핸드폰이나 컴퓨터 화면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전시장에서 글과 시각적인 것을 융합해 놓은 것이 흥미롭기는 힘든 것 같다. 그림책만 해도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오면 그림만 휙휙 넘기기가 쉽다. 그만큼 그림이나 시각적 이미지는 문자에 비해 강렬하다고 할 수 있다. 전시에 앞서 드로잉 창작과정을 브런치북으로 담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글이 중심이 되는 책이나, 글쓰기 앱 같은 곳에서는 시각적 이미지보다 글이 좀 더 강한 힘을 갖는다. 누군가가 전시를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글들이 일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오픈스튜디오 프로젝트는 별도의 안내문도 없이 매우 캐주얼한 형식으로 직관적인 감상과 작가와의 직접적인 대화로 이어가려고 했는데, 화가인 지인이 본인을 포함해서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 진지한 관람자도 있으니 간단한 작품안내문은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듣고 보니, 그것도 이해가 가는 입장이라 다음과 같이 매우 간단한 작품 안내문을 작성했다. 이로써 나의 창작과정은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작가노트


오랜 기간 일상의 삶 속에서 꽃과 나무, 자연의 색채를 관찰하고 이를 그려내고 싶었다. 자연의 소재란 가장 쉽게 접하면서도 매 순간 새로운 아름다움이 있기에 늘 내 시선을 끌었다. 드디어 작년부터 내 눈을 통해 저장되어 있던 자연의 이미지들이 손끝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자연의 일부로서,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자연을 표현해내고 싶었다.


나무와 꽃이 보이는 장소에 하얀 도화지 같이 비어있는 공간을 작업실로 갖고 싶었다. 우연히 현재의 작업실을 발견했을 때, 작업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간 꾹 참고 있던 얘기를 털어놓는 것 같았다. 공간이 나를 닮았다고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창 밖에 모과나무, 장미, 제라늄, 사피니아 꽃을 보며 올해의 전시를 준비했다. 꽃에 매일 물을 주면서 꽃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꽃과 나무와 같은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꽃과 나무처럼 나도 그저 ‘이영선’으로 잘 살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출판하고 싶었던 상상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림을 그려 넣고 싶었는데,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해마다 출간을 미루고 있었다. 올해 꽃과 나무를 그리면서 다섯 개의 이야기를 엮어서 모두를 위한 창작동화 <꽃과 나무로 만든 이야기>를 완성했다. 동화 속 이미지는 우연한 기회에 캔버스에 그린 아크릴화에 그래픽 작업을 입혀서 완성된 또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우연’의 결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핑크와 민트색의 결과물이 나와서 매우 흡족하다.


내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를 찾고 싶었다. 편안하면서도 자유로운 곳, 가장 나를 닮은 곳에서 내 작업을 자유롭게 펼쳐 놓는 오픈스튜디오 방식을 생각했다. 상품이 아닌 예술작품으로서, 작품이 가장 본질에 준하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곳이 작가가 직접 만든 작업실보다 더한 곳이 있을까? 작업의 과정, 작품을 만든 이,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작업의 결과물이 가장 본질적으로 존중받는 곳, 그리고 무용예술가이자 다원창작예술가인 작가의 정체성이 편집되지 않고 온전히 보이는 곳, 이곳에서 내 새 작품들의 첫 선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시는 단순히 그림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작가의 작업실 자체도 작품의 일환으로서, 작가의 출판물과 작업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전시의 내용에 포함이 된다. 그래서 전시는 <꽃과 나무로 만든 이야기>가 되었다. 작가의 시간과 공간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더불어 점점 확장되는 프로젝트가 되기를 바란다.

이전 12화작품을 내어놓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