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지 변호사 부부, 그리고 미국

by 이영선

나는 이 도시를 캔버스로 삼아 작품 한 점을 여행메이트로 하고, 나를 존재시키러 왔다. 내가 지나는 흔적이 모두 내 인생의 멋진 장면이 되길 바랐다. 인생의 여정을 채우는 여러 페이지의 화보처럼 그렇게 보내고 싶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이 여행의 작품이었다. 나는 그렇게 도시에 존재했다.


이 날은 내 작품은 스스로 알아서 일을 하도록 전시 장소에 내버려 두고, 나는 온 도시를 발로 누비는 중이었다. 내가 볼 것은 작품뿐만 아니라 도시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페스티벌의 일부는 아니었지만, 큰 뮤지엄의 호크니의 전시도 관람하고, 지역 아트센터 로비에서 진행되는 페스티벌 참가 예술가들의 전시도 찾았다.


페스티벌 기간 중에는 북적거리는 외부 아트프라이즈 전시와는 달리, 대형 뮤지엄 내부에는 방문객이 많이 없었다. 보통은 대형 전시관의 아우라에 비해 독립 예술기획이 밀리기 마련인데, 실제로 외부 페스티벌 전시는 어깨가 사방으로 부딪힐 정도로 붐볐던 반면 오히려 대형 뮤지엄 안에는 사람들이 없는 게 신기했다. 호크니의 전시도 훌륭한 전시였지만, 오히려 그런 기존의 형식이 상대적으로 재미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예술의 본질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개는 건물의 편의성과 웅장함, 있어 보이는 큐레이션과 작가의 네임벨류를 따라 일반 관객이 움직이기 마련인데, 페스티벌은 이에 충분히 대응 가능한 개성 있는 기획으로 도시의 관심을 오히려 압도적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건 기획자의 관점에서 매우 흥미롭고 희망적인 부분이었다.




뮤지엄 비디오 열람실에 한 무리의 관람객들이 모여있다가 이들이 내내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것을 느꼈다. 이후 뮤지엄을 나오려는데, 한 관람객이 내게 오더니 내가 페스티벌 작품들의 일부처럼 보인다(“You look like a living piece of the festival”)는 말을 하고 갔다. 신기하게 내가 희망하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타인에게도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도시라는 공간에서 춤추듯 존재하고 싶었는데, 나의 내면이 진정으로 삶을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한국에서도 가끔 서점에서 가만히 책을 읽고 있거나, 예전에 빙상장에서 혼자 스케이트를 타고 있으면 멀리서 누군가가 주시하고 있다가 내가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며 한 마디 건네고 가거나, 화장실까지 쫓아와서 누구한테 스케이트를 배웠냐고 묻고 가는 사람도 있긴 했다. 나는 그렇다고 소위 아이돌과 같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그런 외모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계속 바라보게 된다는 소리는 예전부터 많이 들었다. 미의 기준은 주관적이긴 하다. 쑥스럽지만 예쁘다는 소리도 듣긴 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는 중년의 여성들이었고, 그들에게 끌리는 뭔가 내게 있는가 싶었는데, 여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는 듯했다.


드보스센터라는 큰 공연장 내부 로비에서도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두 명의 여성이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어와서 같이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하며 전시를 관람했고, 다른 곳에 전시 중인 내 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들은 그곳에서 자꾸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다음 날은 아트마켓과 푸드트럭이 거리를 채우며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한껏 더하는 토요일이었는데, 북적거리는 한 아트샵 안에서 누군가 내 앞에서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며 옆에 있는 남편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눈앞에 반가운 얼굴이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전 날 드보스센터에서 만났던 두 여성 중의 한 명일 것이라는 기억을 불러내었다. 내가 얼굴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건들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다는 뜻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전 날 얘기했던 사람이 나라며, 한껏 신나 있었다. 그건 빈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스쳐가는 인연처럼 여겼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의 만남을 매우 진지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이들을 그저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여겼던 게 약간 반성이 되며, 나도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피드백과 답장을 하기로 했다.


피상적인 인간관계가 현대사회의 속성인 줄 알고, 많은 사람들과의 서운함 끝에 나도 그렇게 적응해가고 있었는데, 이러한 관계의 진지함과 순수성에 다시 원래의 나대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웅크리고 있던 내가 꽃잎처럼 조금씩 펼쳐지고 있는 듯 느껴졌다.


나는 이들과 함께 내 작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들은 내 작품을 좋아했다. 특히 조용한 남편에 비해 여성분이 매우 적극적이었다. 이후에도 그 여성은 지인들과 내 작품을 보러 갈 때마다 내가 없었다고 일부러 메일을 해주기도 했다. 전화로밍을 미리 하지 않은 게 약간 후회가 되었다. 전화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해서 데이터로밍만 했는데, 이들이 한국에서처럼 카카오톡을 쓸 일이 없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영선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춤추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통합창작예술가. 장르와 경계를 녹여내어 없던 세상을 만들고 확장하는 자. 그 세상의 이름은 이영선입니다.

11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7화예술가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