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녘
황혼 녘은 하루가 마지막 숨결을 내쉬는 순간이야. 해가 서서히 땅으로 내려앉으며, 하늘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붉고 주황빛으로 물들지. 바람마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세상은 고요와 그윽함 속으로 스며드는 시간이야. 그때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이 숨을 멈춘 듯한 착각이 들고, 내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왜 내게는 슬픔으로 다가올까.
나는 소행성 B612에 사는 어린 왕자를 사랑해. 바오바브나무도, 어린 왕자가 사랑한 한 송이 장미도, 다섯 번째 별에서 만난 오렌지빛 가스등에 불을 밝히는 점등인도. 어쩌면 나도 어둠을 밝히는 소명을 안고 태어난 점등인이었을지 몰라. 나는 어스름이 흩뿌려지는 황혼 녘의 색깔을 사랑해. 그러면 문득 어린 왕자가 그리워져. 그 시간의 빛은 유난히 부드러워, 벨벳처럼 포근하게 다가와 눈과 마음을 동시에 감싸주는 느낌이야.
어릴 적 집 앞 골목을 비추던 붉은 햇살, 창문 틈으로 스며들던 주황빛은 알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채워주곤 했어. 황혼 녘은 그리움이 가득한 애잔함과 평온함이 함께 깃든 시간이야. 낮의 분주함은 저 멀리 물러가고, 밤의 고요는 아직 다다르지 않았지만, 빛과 그림자가 맞닿아 있는 그 경계에서 마음속 감정들이 불현듯 솟아올라 말을 걸어와.
그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면,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아. 오늘의 아픔도, 힘듦도, 외로움도 곧 찾아올 밤 속에서 치유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하루가 저문다는 사실이 쓸쓸하기만 하지 않은 이유는, 이 시간에만 찾아오는 위안 덕분일 거야.
*우리의 삶도 경이로운 황혼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삶이기를 꿈꾸는 오늘이야.